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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 재스민 Aug 28. 2017

뒤늦게 본 실락원 감상평

사라진 시대의 느낌과 반복의 역사

  1997년에 개봉했던 일본 영화로 파워풀한 작품에 주로 출연한 야쿠쇼 코지와 불륜 전문배우처럼 느껴지는 쿠로키 히토미의 몸연기가 그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을 것 같다. 야쿠쇼 코지는 악마성과 인자함 양면을 다 갖춘 얼굴을 하고 있는 배우로 <우나기>에서 연기한 양가적인 캐릭터가 잘 어울린다. 쿠로키 히토미는 2005년에 발표했던 인상적인 영화 <도쿄타워>에서도 유부녀로 20살 차이나는 지인의 아들과 불륜에 빠지는 연기를 아름답게 소화해냈던 배우다. <실락원>에서보다 세련된 연기를 선보여 같은 배우인지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우리나라에서도 1998년에 이영하와 심혜진을 주인공으로 한 같은 주제의 동명 영화를 상영했나본데 보지는 못했다. 이름만 들어도 일본 배우들만큼의 저력이 느껴지지 않아서 딱히 찾아보고 싶진 않다.

  

   <실락원>은 주인공의 얼굴과 행동에 과잉적으로 초점을 맞추는 카메라 렌즈 때문에 1990년대 영화에서 느껴지는 촌스러움이 있지만 섹스씬을 아름답게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특히 마지막 씬에서 독약이 든 와인을 입에서 입으로 부어 전달하는 모습은 투명하고 아름다운 와인색과 함께 죽음까지도 유혹적으로 만들어버리는 영상미를 보여주고 있다. 두 사람이 맛보는 섹스의 쾌락은 너무 커서 죽음의 문턱까지 갈 수밖에 없다. 자신만의 것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섹스를 할 때 타인과 자신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의 상태가 된다. 쿠로키 히토미는 "이제 당신의 피부가 당신 것인지 내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아"라고 말한다. 두 사람은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을 상황에 처했지만 그 이유만으로는 굳이 죽음을 택할 이유는 없어보이는데도 죽음을 택한다. 두 사람의 태도는 이미 사회적인 비난을 초월한 것으로 보이는데도 말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비밀스런 연애가 공개됐음에도 그다지 흩뜨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수용한다. 세상의 어떤 가치나 틀도 그들에게는 무의미해보인다. 두 사람이 동시에 어떤 균열도 없이 그런 경지에 오르게 됐다.

  심지어 죽음 이후에도 타인으로 인해 두 육체가 떨어질 것을 방지하기 위해 주도면밀한 죽음의 설계까지 해놓고 마지막 밤을 맞이한다. 엔딩 컷에서 자막으로 올라오는 사망보고서의 극히 사무적인 글자 밑에서 섬뜩함과 비정함, 그리고 기괴함 따위의 감정들이 동시에 느껴진다.


  <실락원>은 인간이 추구해야 할 지상 최대의 목표는 죽음까지도 넘겨볼 수 있는 쾌락인 주이상스라고 말하는 듯하다. <실락원>에는 평생 몸과 마음과 정신을 바쳐 직장에 희생한 가장들의 슬픈 인생을 강조하는 씬들의 반복을 삽입하고 있다. 그것은 정사 씬의 반복과 비슷하다. 둘 다 제 정신인 상태는 아니다. 자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의 체제 속에서 함몰돼 자신을 잊을 것인지, 주이상스로 나아갈 것인지에 대한 선택은 극과 극 같지만 둘 다 자신을 희생해야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평생을 바쳐 희생한 직장 생활은 종국에는 개인에게 어떤 보상도 해주지 않는다. 과로로 병을 얻거나, 시스템에 걸림이 될 경우, 한직으로 내몰린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대부분은 그쪽을 택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는 편이 술자리에서 푸념거리라도 내뱉으며 서로에게 위안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가정과 직장을 지켜야지"라는 말로 포장한다. 진정한 사랑이라고 믿는 대상을 발견한 주인공을 부럽다고 하면서도 진정으로 부러워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현실을 알지 못하는 철없는 행동이며 사회로부터 스스로 왕따를 부르는 정신나간 행동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원작인 책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영화로 미뤄보았을 때 작가는 폐쇄적인 일본 사회의 벗어나기 힘든 궤도를 비난하면서도 그길을 벗어나는 길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양립불가능성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실락원>은 2017년인 지금 시점에서 봤을 때 남녀관계에 있어서 순수라고 지칭하는 것이나 관계의 지나친 집착과 몰두로 인해 촌스러워보이기도 하지만 주인공이 영화 속에서 남녀의 결합이란 원시시대나 현대나 특별한 변화가 없이 늘 반복된다는 대사처럼 단순명료한 것이면서도 문명과 문화 속에서 사는 이상 자신의 욕망이나 욕구를 만족시키면서 지상 최고의 행복을 누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점에서 죽음까지도 두려워하지 않는 남녀 관계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강한 매혹을 느낀다.  꿈꾸면서도 실천이 불가능한 일이기에 이런 관계에 대한 관심은 늘 끊이지 않고 서사화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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