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
좋아하는 배우, 아네트 베닝이 주연한 최신 영화 제목이기도 하다. 아직 보지 못했다. 제목부터 관심을 끈다. 일부러 영화평이나 리뷰를 읽지 않고 있다. 선입견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이 세상에 사랑이라는 말이 그렇게나 많은 것은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반증이기도 하다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사랑이 명확한 것이라면, 그리고 사랑이 손에 잡히는 것이라면 사람들은 사랑에 대해 입을 다물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확실한 것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이야기할 필요성을 못 느끼기 때문이다.
아직 영화를 보지는 않았지만 제목이 마음에 든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목이 터지게 외치는 것은 실은 사랑이라기보다는 사랑이라고 믿는 것이기 때문이다.
너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 말하는 본인도 듣는 상대도 그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너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에도 공허감이 느껴진다. 내 의도가 정확하게 전달됐는지 자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착각에 함께 빠지자는 유혹이기도 하다. 나혼자 빠지기는 억울하니까. 누군가는 그 신호에 응답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부담스러워하며 꽁무니를 빼기도 한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는 두고두고 회자되는 명대사가 두 개 나온다.
이영애의 대사 "라면 먹고 갈래?"와 유지태의 대사,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다.
<봄날은 간다>는 사랑이라는 착각의 시작과 현실자각으로 끝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한 남자, 상우의 사랑이야기다.
사랑이 변하는 것을 알았다고 해서, 현실자각을 했다고 해서 상우는 앞으로 사랑에 빠지지 않을까. 아니, 내 생각에 상우는 더 열심히 사랑을 찾아다녔을 것 같다.
실제는 환상과 비교가 되지 않을만큼 초라하다.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경이로운 소설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단편소설 <검은 집>에 나오는 검은 집과 같은 게 아닐까. 지루한 일상이 반복되는 한 마을에 있는 검은 집은 그 자체로는 아무 것도 아니다. 하지만 검은 집을 대상으로 그 마을 젊은이들의 환상이 투사됐을 때, 엄청난 의미가 생긴다.
문제는 그 환상이 내게 삶을 살아갈 에너지를 주느냐, 아니면 나의 삶을 갉아먹느냐인데, 그것을 판단하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판단이 내려졌다고 해도 판단대로 실행하기도 쉽지 않다.
인간의 심리란 파도 파도 끝이 보이지 않은 구덩이와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