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세는 카리스마녀인가보다
-파워게임의 중심에 있는 냉혹한 여성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생각보다 짧아서 다 보고 났더니 바로 다음 드라마, <블랙의 신부>로 넘어가길래 생각없이 재생을 누르고 봤다가 날밤 샜다. 다 보고 나니 허무하다. 추천하고 싶지 않은 드라마로 소개한다.
<블랙의 신부>는 상위 1프로? 아니면 0.1프로? (숫자 개념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안에 드는 최상류 재혼 정보회사를 중심으로 돈이 권력인 시대에 얽힌 욕망을 추적한다. 개인사 때문에 이미 사랑을 믿지 않은 사람들이 신뢰하는 것은 오직 재력이다. 사랑은 언제라도 변하지만 재력은 변하지 않는 가장 강한 권력이다.
재력이 조단위인 남성이 꼭대기에 있고 여성들은 그와 결혼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이것은 마치 임금의 성은을 받기 위해 암투를 벌이는 사극과 비슷하다. 다른 점이라면 여성들 역시 각자 전문직을 가지고 있고 경제적으로 아쉬울 게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왜 그렇게 최고의 부를 가진 남자와 결혼하지 못해 안달일까. 그들에게 부는 단지 풍요로운 삶을 누리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권력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돈으로 안 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클리셰 투성인 이 드라마를 중단하지 못했던 이유는 이 드라마가 복수서사이기 때문이다. 복수서사에 한번 말려들면 끝까지 봐야한다. 나쁜 놈이 처벌받는 꼴을 꼭 봐야 직성이 풀리니까. 그래서 복수서사는 늘 건재하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두 대형 로펌의 대표는 모두 여성이다. 두 드라마에서 카리스마는 여성들에게 있다. 최고 결혼정보회사 '렉스'의 대표 역시 여성이다. 대표를 맡은 뮤지컬 배우, 차지연의 카리스마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드라마에서 여성의 카리스마는 남성과는 다르다. 상냥하고 예의바르고 절대로 흥분하지 않는다. 조근조근 논리있고 감성을 자극하는 말솜씨로 자근자근 상대를 밟아준다.
청순가련형 여성이 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던 시절이 있었다. 70년대 80년대 멜로 드라마의 여주인공은 강력한 가부장제 사회에서 피해자의 입장에 있는데도 결코 세상을 원망하지 않고 그저 눈물만 펑펑 흘리는 탓에 보는 관객의 눈물샘을 후벼팠다. 독한 년은 비난과 응징의 대상이지, 결코 공감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공부를 너무 잘해도 일을 너무 잘해도 그런 년은 독한 년이 된다.
이 드라마의 여주인공들은 예전에 독한 년들과는 달리, 정말로 지독하게 독하다. 남성들이 오히려 그 밑에서 갈팡질팡한다. 남성은 좌절감에 자살하지만 여성에게 포기란 없다. 곧 죽어도 이를 갈면서 이제 시작이야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론은 착한 여자의 승리로 끝난다. 아쉬울 게 없는 멋지고 시크한 두 남성이 조건이 특별히 뛰어나지 않지만 진실되고 착한 여성에게 마음이 흔들리고 동시에 사랑한다. 현대판 캔디 버전은 여전하다.
게다가 착함의 근거는 모성이다. 자식을 위해서는 못할 게 없다는 주장에 사람들은 대개 수긍한다. 이것도 클리셰다.
세상을 둘러보면 그렇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자식보다 자신이 먼저인 엄마도 있고 잘 나가는 딸을 질투하는 엄마도 있다.
딸을 꼭 재벌가에 시집보내는 게 그렇게 목숨을 걸만큼 중요한 것인지, 충분히 풍요롭게 사는데도 꼭 재벌 남편을 갖는 게 그렇게 모든 것을 다 던질만큼 중요한 일인지, 내게는 별 설득력이 없어보인다.
자신이 다 파괴되더라도 복수하는 게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도 공감이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