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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 재스민 Nov 09. 2017

리빙 보이 인 뉴욕

-욕망과 결핍은 드러나게 돼있다

출생의 비밀을 이렇게 달달하게 그려내도 되나.

그리고 드러난 뒤에도 이렇게 잠잠해도 되나. 리빙보이인 뉴욕은 이상한 영화다. 


출생의 비밀은 한국 드라마가 목숨 거는 가장 큰 키워드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육백만불의 사나이처럼 뛰어난 청력을 가지고 있어서 모든 정보를 남의 이야기를 엿들으면서 확보하고 탐정 못지 않게 상황을 추리하고 분석해서 다음 전략을 짠다. 결말은 악인의 몰락과 그동안 서러움 받아왔던 피해자의 부활이다. 


리빙 보이 인 뉴욕 밑에 깔린 큰 비밀 역시 출생의 비밀이다. 그리고 그 비밀은 맨 마지막에 밝혀지면서 지금까지 우연이라고 생각됐던 것이 다 연결돼있었다는 걸 알게된다. 그런데 이 영화의 특이한 점은 여기는 악인과 선인도 없으며 비밀의 노출이 누구도 불행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탓을 하지 않으며 도리어 위선과 가면의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게 된다. 


아버지와 아들이 한 여자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보기에 편한 설정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서사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되는 경우는 없다. <데미지>에서는 아들의 죽음과 아버지의 사회적 죽음으로 끝난다. 아버지와 아들이 한 여자를 소유한다는 것은 근친상간의느낌을 준다. 그래서 욕망의 끝은 죽음으로 끝난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비록 생물학적인 아버지와 아들 관계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사실적인 부자관계였던 두 사람이 한 여자와 잠자리를 함으로써 이뤄지는 유사 근친상간적 관계는 도리어 가면을 벗는 계기를 제공한다. 그래서 두 사람 사이 뿐만 아니라 관계된 모든 인물 간의 위장됐던 관계들이 정직한 얼굴을 드러낸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신들의 욕망에 충실한 사람들이다. 아버지도 아들도 그 사이에 낀 여성도 그냥 끌리는 대로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다. 그리고 어떤 변명도 하지 않는다. 사실 그게 당연한 일이다. 누구에게 끌리는 것에, 섹스를 하고 싶다는 것에 상대방이 납득할만한 이유를 달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유는 자신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소설가가 애초에 애매한 관계를 맺게 된 것 역시 서로에게 부족한 것을 채우고자 했던 욕망 때문이었다. 그것은 설명될 수 있는 욕망이다. 그것은 사회라는 문화적 공간 안에서 안주하기 위해 만들어진 욕망이라서 설명이 가능하다. 그러나 어머니가 소설가 토마스에게 끌렸던 이유는 명확하게 설명될 수 없다. 사랑의 욕망은 설명될 수 있는 욕망이 아니다.  


그렇지만 등장인물들은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어머니와 소설가는 자신의 욕망을 알아차렸지만 욕망을 포기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만든 욕망의 결실을  보는 것으로 결핍의 공간을 메우고 산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가, 제랄드에게 토마스는 뉴욕에서 유일하게 살아 있는 소년인 것이다. 그리고 그가 글을 쓰도록 작동시키는 동력 역시 토마스니까.

뉴욕에서 유일하게 살아있는 소년, 토마스는 결국 죽어 있던 모두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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