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에 발 찍고 오다.
여행이란 사람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가. 나는 장기 여행을 해본 적도 없고(이제는 할 수만 있다면 하고 싶다) 방콕 스타일이라 여행 자체를 즐기는 것이 쉽지 않은 사람이다. 이동의 불편함, 잠자리 불편함은 당연히 심리적 불안정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여행하는 기간에는 심리적 긴장감이 내 몸을 통제한다. 그래서 웬만해서는 아프지 않다. 문제는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의 일이다. 긴장감이 풀리고 심리적 안정감이 시작되면서 나의 신체는 이제는 아픈 거 시작되도 되겠지?라고 물으며 슬슬 본색을 드러낸다. 아프다는 것은 휴식이 필요하다는 신호며 자신의 몸상태에 신경을 쓰라는 신호다. 그리고 몸도 상황을 봐가면서 신호를 보낸다. 물론 몸과 정신의 균형이 깨지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다. 그래서 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후 계속 신체적 조짐이 좋지 않더니 일주일 후에 결국 몸살이 났다.
요새 인기 절정인 윤식당2가 스페인에서 개점한 걸 보니 연말과 연초에 걸쳐 잠깐 머문 스페인의 느낌이 새삼 다가온다.
마드리드에 도착해 똘레도, 세고비아, 바르셀로나를 거쳐 모나코에 잠깐 들렀다가 남프랑스 에제, 니스를 거치는 일정이다. 패키지 여행이라 가격은 비교적 저렴하지만 일정이 고되다. 열흘중 반 정도는 비행기와 차를 탄 것 같다.
단지 일주일 정도 외국에 머물렀을 뿐이데 한국에 돌아왔을 때의 느낌은 사뭇 다르다. 이 기간에 한국에 계속 있었다면 달라졌을 나라는 존재의 미묘한 차이가 발생한다. 사람은 같은 시공간을 동시에 경험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차이는 매우 주관적인 것에 그친다. 중요한 것은 나의 느낌이다. 내가 그렇게 느낀다는 것이 결국 내 세계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 일행은 세 명이라 나는 혼자 여행을 온 60대초반의 여자분과 방을 함께 쓰기로 했다. 여러가지 긴장감 때문에 7박을 호텔에서 하는 동안 연속으로 3시간 이상 잔 적이 없다. 그러니 낮에는늘 비몽사몽이었다. 그럼에도 스페인의 느낌을 한 가지라도 강력하게 느끼고 가려고 나름 노력했다. 차로 스쳐가면서 비슷한 느낌의 그래피티를 볼 수 있었다. 스페인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이 날 듯하다.
정열적이지만 역사적 질곡으로 억압과 분노를 경험해야 했던 나라. 스페인을 생각하면 자유분방함과 화려한 색상이 생각난다.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영화에서 시각을 압도하는 화려하고 원색적인 색상이 떠오른다. 혀가 말려들 것처럼 도르르르 빠르게 굴러가는 스패니쉬의 발음 역시 혼을 쏙 빼놓는다. 밖에 나와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는 스페인 사람들이야말로 정말 인간답게 사는 것 같다. 집안에 틀어박혀 인터넷의 가상세계 속에서 욕망을 채우는 우리와는 엄청나게 큰 차이가 있다.
여행의 의미는 내 생활을 낮설게 만드는 데에 있다. 거의 15년 전에 처음으로 유럽 여행을 약 15일간에 걸쳐 한 적이 있었는데 서울로 돌아왔을 때의 느낌은 정말 이상했다. 몇 개월도 아니고 고작 15일이었는데도 말이다. 15일간 꼭두새벽에 일어나 낯선 장소로 출발하는 일정이 벌써 몸에 밴 탓인지, 아침에 일어나면 아무도 재촉하지 않고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오히려 낯설었다.
패키지 여행에는 단점도 많지만 장점들도 있다. 며칠간에 됐든 함께 하는 구성원들과 매일, 그리고 하루종일 얼굴을 마주쳐야 하며 인솔자, 현지에서 살고 있는 투어가이드와 잘 사귀어야 한다. 지나치게 정을 쌓으면 나중에 힘들어질 수 있다. 여러가지 이유로 일정을 함께 하게된 구성원들을 보면 인간 만상을 보는 즐거움이 있다. 몇 번 마주치며 눈인사를 하고 몇 마디를 나누다 보면 어떤 사람인지 대충 감이 잡힌다. 그 중에는 정말 부러울만큼 너그럽고 인성이 좋은 사람들이 있고 굳이 왜 패키지 여행을 택했을까 싶게 까탈스럽고 대인기피증이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지나치게 달라붙어 여러가지 사적인 얘기를 늘어놓고 캐묻는 사람이 있다. 이런 군상은 크고 작은 어느 사회에나 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모이든 늘 평균적인 인간 군상을 만들어내기 마련이다.
특히 패키지 여행의 장점이라면 좋은 투어가이드와의 만남이다. 대부분의 투어가이드들은 경험이 많고 현지에 오래 산 사람들이라 어디서도 얻을 수 없는 귀한 정보와 기쁨을 선사한다. 이번 여행에서도 스페인에서 만났던 여장부 같은 투어가이드가 너무 매력적이라 스페인보다는 투어가이드의 목소리와 말투, 스토리 텔링에 더 매료됐다. 패키지 여행을 하면 투어가이드가 그 도시의 인상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 장점이자, 또한 단점이다. 이 또한 잘못된 주관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관이 올바른 법은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몇 달씩 여행을 하는 일은 쉽지 않기 때문에 아쉽지만 잠깐씩이라도 낯설음을 경험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야겠다. 익숙함에서는 자신에 대한 성찰이 나오지 않는다. 자꾸만 낯설게 만들기를 해야만 지금까지 나오지 않던 각도에서 자신의 삶을, 자신이라는 인간을, 주변 상황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낯선 여행객으로 가졌던 느낌이 예전의 익숙했던 내 생활과 부딪히면서 또 다른 느낌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2주일이 지난 지금도 그 느낌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해서 헤매고 있다.
가장 처음 방문했던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 앞에 서 있는 고야의 동상은 비둘기 똥을 뒤집어 쓰고 있어서 그 앞에서 사진을 찍다니 왠지 웃음이 나왔다. 고야 작품을 비롯해 벨라스케스의 유명작, <시녀들>, 보쉬의 <쾌락의 정원> 등이 소장되어 있다. 사진을 몇장 올린다.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이 빠졌는데 숨어 있는 환상의 궁전 같은 느낌 때문에 더욱 매력적이다. 그 안에서의 생활이 얼핏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한다.
스페인의 대표적인 음식, 빠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