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과 간통의 경계짓기로 안희정 살리기?

by 이화정

강간 대신 간통으로 설정되면 안 희정에게 살 길이 생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갑자기 간통 운운하는 댓글로 도배되기 시작했고 미묘한 경계짓기로 안 희정을 보호하려 한다. 김지은이 피해자가 아닐 수도 있다면서 검찰이 철저히 조사해주기를 바란다는 댓글이 수두룩하게 달렸다.

분명히 거절의 뜻을 밝혔는데도 상대방은 계속 듣지 않았고 그래서 성관계로 이어졌다면 그것을 피해가 아니고 간통이라고 불러야 하는가.


설사 그렇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성폭력보다 간통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어떤 의미에서는 맞는 이야기다. 적어도 서로의 의사가 반영돼있으니까. 폭력과 부도덕 중에 어떤 게 나은가 저울질하는 것 역시 매우 우스꽝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문제는 안 희정의 경우에 결과적으로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는 점이다. 도덕적이고 깨끗한 이미지를 자산으로 부상했고 여성의 평등한 권리를 주장했던 안 희정의 경우에는 이미 토대가 완전히 무너졌다고 봐야 한다. 산산조각난 크리스탈이다. 다시 붙일 수가 없다. 간통이었다고 해서 산산조각난 유리가 두 조각으로 바뀌지 않는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은 여자의 복수니, 누군가의 조작에 의한 음모니 하는 말을 해봤자 안 희정은 되살아나지 않는다.


대신 미투 운동을 대하는 남자들의 사고 방식이 아직도 구시대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증명해주는 것만 재확인될 뿐이다. 성폭력이라는 개념 설정도 이제 달라졌고 확대됐음을 알지 못한다. 특히 권력자와의 강압적인 관계에서 강제성이라는 의미 역시 다른 시각으로 조명되어야만 한다. 중요한 것은 한쪽에서는 분명히 원치 않았던 성관계였다는 점이다. 강제가 아니었다는 것은 권력자만의 일방적인 생각이었다는 점이다.


실망하는 사람들이 많을지도 모르겠는데 기차는 이미 출발했고 거꾸로 가는 일은 없다. 김기덕, 조재현, 이윤택, 남궁연, 한만삼 신부 모두 철저하게 추궁당하고 죄를 물어야 한다. 그리고 이 수많은 사건이 어떻게 해결되는지 추이를 끝까지 지켜봐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도 산 목숨이 아닌 여성들을 구할 수가 없다. 모두가 누군가의 딸이다. 언제가는 가해자 자신의 딸일 수도 있다.

가해자의 갑작스런 출현에도 김지은이 꿋꿋하게 조사에 임했다는 기사에서 굳이 꿋꿋하게라는 단어를 씀으로써 노리고자 하는 효과는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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