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과 낮은 다르다.
술 마시는 밤은 완전 다르다.

혼술하는 밤의 주절거림

by 이화정

어떤 이유에서인지 잠이 오지 않는 밤이 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쓰는 처방이 있다. 집에 가득 쌓인 와인 마시기. 해마다 설날 선물로, 구정 선물로 와인이 들어온다. 작년에 저렴한 가격의 와인 셀러를 구입했기 때문에 나는 잽싸게 와인을 와인 셀러에 저장한다. 적은 용량의 와인 셀러가 꽉 차 있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면서도 저걸 언제 다 소비하나라는 의무감이 든다.


그 와인이 정말 필요한 날이 있다. 오늘이 그날이다. 잠자리에서 뒤척이는 것만큼 괴로운 일이 없기에 나는 과감히 이불을 박차고 일어난다. 그리고 와인냉장고에서 손에 닿는 대로 한병을 꺼낸다. 와인을 잔에 따를 때 나는 소리가 명쾌하고 발랄하고 신선하다. 그 소리는 글자로 표현하기 불가능하다. 콸콸콸이라고 할 수도 없고 딸딸딸 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졸졸졸 이라고 할 수는 더군다나 없다. 투명한 듯한 붉은 색 역시 매우 매혹적이다. 와인 색만큼 매혹적인 색깔은 없다.


한 두잔을 마시니 서서히 감각이 둔해진다. 오늘은 네 잔까지 갔다. 더 이상 마시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왔다.수십년간의 알콜 섭취 경력 덕분에 생긴 명확한 판단 기준이다. 내가 술이 세지 않다는 것은 숱한 괴로운 경험으로 알고 있다. 여기까지. 나는 와인 뚜껑을 막고 공기를 뺀 뒤 와인 셀러에 다시 넣어놨다. 잠이 슬슬 온다. 참 효과가 좋다. 이 순간 여러가지 상념들이 생겨난다. 내일 아침 잠에서 깨어나면 결코 건져낼 수 없는 것들이다. 글을 쓰는 순간에도 벌써 반은 날라간 것 같다.


생각과 느낌은 전광석처럼 나타났다 사라진다. 그것을 기록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임을 알면서도 나는 늘 붙들려고 노력한다. 운전석에 앉았을 때도 그런 감이 와서 얼른 휴대폰의 메모 앱에 단어 하나를 저장해놓은 적도 있다. 하지만 나중에 봤을 때 왜 내가 그런 단어를 입력했는지 알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술이 취했을 때의 느낌은 일단 좋다. 모든 것이 사랑스러워보인다. 나의 평범한 일상도. 곁에 놓인 책들도. 집안 풍경도. 이유란 없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라고 오지랖 넓은 생각까지 한다. 음주 경험이 많은 사람은 알 것이다. 이런 일시적인 느낌에 속아서 무슨 행동을 저지르면 반드시 후회한다는 것을. 예를 들면 옛 애인에게 전화나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거나, 옆에 앉은 사람에게 지나친 친근함을 표현한다든가, 등등.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집에서 조용히 술을 마신다. 그것도 아주 가끔 잠이 오지 않을 때만.


범죄에 해당하는 행위를 해놓고 술에 취해 이성을 잃었느니 하는 변명은 이제 그만들 좀 했으면 좋겠다. 웃기는 변명이기 때문이다. 술을 처음 마시는 것도 아니고 한두번 마셔본 것도 아니면서 그렇게 자신의 한계를 몰랐단 말인가.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상습적으로 방치하는 것은 그것을 즐기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심신미약이라는 말도 안 되는 단어로 결코 상황을 이해하거나 정상참작해서는 안 된다.


알코올에 책임을 돌리는 것, 비겁한 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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