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면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이 신기해지기 시작했다. 어젯밤 눈을 감을 때만 해도 잠이라는 죽음이 언제 나를 엄습할지 알 수 없었다. 잠이 드는 바로 그 순간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그냥 어떤 상태에 집중했던 어렴풋한 기억밖에는 없다. 잠에 집중하지 않으면 잠이 도망간다. 눈으로 밤을 새우는 고통이 따른다. 잠이란 민감한 놈이다. 아주 쎈 놈이다.
죽음이라는 영원한 잠에 들게 되는 순간도 그렇게 내가 눈치채지 못하게 슬쩍 오기를 기대한다. 어젯밤 잠에 빠질 때만 해도 아침에 저절로 눈이 떠지게 될 거라는 기대는 하지 못했다. 아침에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으면 잠에 들지도 않는다. 잠을 설치게 된다. 잠자리에 드는 순간만큼은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낮에 무슨 일이 있었든지, 아무리 화가 나고 열 받는 일이 있었을지라도 잠자리에 눕는 순간 모든 것을 망각하는 기적을 실행해야 한다. 오늘 밤 이 잠은 어떤 것과도 상관 없이 독립적인 고유성을 지닌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밤 이 잠은 내 인생에 있어서 작은 죽음이다. 죽는 사람이 이것 저것 걱정하고 기억할 필요가 있는가. 다 소용 없고 부질 없는 일이다. 죽는 사람에게는 그럴 의무도 권리도 없다. 만약 내일 아침에 깨어나게 된다면 그 때 살아서 일을 처리해야 의무가 다시 생겨나는 것이다. 아침에 살아나는 순간, 나는 과거와 연결된다. 그리고 어제의 나와는 미세하게 다르지만 연속성이 있는 나로 다시 태어난다.
그러나 잠을 자는 순간의 나는 그냥 시간과 공간을 벗어난 순수한 나이길 바란다. 그래서 잠을 자는 동안, 과거로부터 쌓인 때와 지꺼기가 조금씩 청소되기를 바란다. 그래야만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과거와 연결된 내가 됐을 때 현실과 싸울 에너지와 정신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사랑의 모양>에서 오프닝 씬은 샐리 호킨스가 물 속에서 잠을 자는 장면이다. 모든 세상이 물에 잠겨 있고 그 안에서 샐리 호킨스는 베개를 안고 둥둥 뜬 채 편안하게 잠자고 있다. 이 영화에서 물 속 세상은 샐리 호킨스가 꿈꾸는 사랑으로 가득 찬 세상이다. 말을 못 해도 느낌으로 전달되고 무엇이든지 이뤄지는 세상이다. 매일 밤 나는 그런 잠을 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