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이 필요했던 날, 공간의 힘을 느끼다
프로젝트 100 하루 한 편 나만의 글(5) 2021.03.26
3월의 마지막 금요일. 아침부터 일을 치렀다. 요거트에 꿀을 한 숟가락 타먹고 싶었을 뿐인데. 꿀을 꺼내다가 포도씨유가 든 500미리 유리병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그대로 박살난 병... 갑자기 내 멘탈도 박살이 났다. 곱게 토스트 굽고 딸기를 잘라 올리고, 커피를 내리다가 그대로 모든 것이 정지. 내 멘탈 알 길이 없는 기름 500미리는 그대로 강처럼 흘러 주방을 쭉 채워내려가고 있었다. 얼른 키친타올을 끄집어내 닦고 닦고 또 닦고. 기름을 수습하고 나니 미끄덩한 타일이 나를 까꿍 하고 쳐다봤다. 미치겠다. 재택근무지만 일 시작할 시간은 타이밍 놓친지 오래. 커피고 물이고 공복에 바닥 청소 하드트레이닝을 시작으로 하루가 시작됐다. 기름에 절여진 매트와 언제 젖었는지 발끝이 젖어 계속 고양이처럼 발자국을 남기는 양말도, 함께 세탁기 안으로. 그들이 돌아가는 것을 보고 나서야 다 식은 커피를 원샷 드링킹 하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오늘, 시작부터 빡센데. 할 일도 많은데. 어우야.
어제 회식 때문에 하려다 못한 일을 후두둑 진척시키고 나서야, 어디 다른데 가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마침 친한 언니들의 공간 위에 회의실이 있으니 여기 와서 해도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주저없이 씻고 나섰다. 오후 나절만 집중해서 버텨보자. 오로지 그 생각 뿐이었다.
할 일이 적지는 않지만 왠지 시험대에 올라있는 듯한 느낌이 많이 들어, 내내 긴장해서 사는 날들의 연속. 능력자들과 일하는 것은 역시 쉽지 않다. 뱁새는 오늘도 손도 눈도 머리도 바쁘다.
여튼 그렇게 멀리 이동해서 넓은 책상이 있는 회의실을 단독으로 쓰게 됐다. 좀 작을 거라 생각했던 책상이 10인 회의실 규모로 큰 책상인 것, 창이 딱 하나 볕이 드는 쪽으로 나 있는 것, 책상 대비 공간이 크게 남지 않는 것도 집중하기 좋은 공간인 느낌이었다. 의자도 높이가 좋고, 책상 나무도 어두운 색상이라 정말 딱, 내 모니터에만 집중하기가 좋았다. 역시 공간을 생각하는 분들이 만든 곳이라 회의실마저도.. 회사생활을 나름 하면서 숱한 회의실을 만났지만 이렇게 집중이 잘 되는 공간은 처음이었다.
덕분에 박살난 멘탈도 이어붙이고 몰입도 잘 되어 하려던 일들도 다 잘 마무리했고, 생각보다 빨리 일이 끝나니 갑자기 훅 피로감이 찾아왔다. 이상하게도... 아침에는 그렇게 아무것도 안 될 것 같은 상태였는데, 그 공간 하나를 만나 갑자기 모든 일에 집중이 잘 되고 일사천리로 일을 끝내게 됐다. 답을 거의 정해놓고 정리만 하게 된 것도 있지만, 집에서 했으면 그조차도 잘 끝났을까 싶은. 공간 덕분에 집중이 잘 되어서인지, 문서 정리도 깔끔하게 되어서 너무 신기했다. 앞으로 종종 가고싶다고 생각될 정도로.. 관계자 덕분에 편히 쓰게 되었지만 눈치보여서 자주 가지는 못할 것 같지만.
집중을 만들어 주는 공간의 힘.
공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