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그건 현실적인 조언이었을 뿐
프로젝트 100 하루 한 편 나만의 글(12) 2021.04.05
아침 출근길에 스치듯 마주친 어떤 이의 통화 소리가 내 귀에 꽂힌다. 아마 딸과의 통화일거라 생각되는 말들. 엄마들은 늘 저렇게 뭔가 하실 말들이 많으실까, 싶다가 아주 어렸을 때 우리 엄마가 나에게 해줬던 말들을 문득 떠올렸다. 생각해 보니 대부분은 나를 지지해 주고, 힘이 나게 해 주는 긍정적인 말들이었음을 생각한다. 어려서는 그 말들이 나에게 크게 관심이 없으셔서 그렇다는 것으로 치부해 버렸는데. 막상 이 나이가 되어 생각해 보니, 엄마는 내 나이의 나에게 해줄 말이 그렇게 많지 않으셨을 것 같았다. 세대도 너무 다르고, 하고싶은 것도 참 많았던, 항상 호기심도 많고 세상에 밝았던 반짝반짝한 고등학생이었던 나. 그런 나를 신기하게 보았을 엄마. 어떤 날은 집 앞 천가의 다리를 건너며 엄마한테 영화 찍는 동아리를 하고싶다고 했다. 그저 애들과 어울리며 놀기도 하고 뭔가 추억거리도 남길 겸 학생 때 할수있는 것을 해보고 싶어서 그렇다고 했는데 엄마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으셨다. 그냥 내가 하고싶다고 하는 것이 뭐든 해보라는 것을 그렇게 열어주신 것이었으려니. (그러나 속을 알 길이 없는 내멋대로의 고딩은 그냥 영화 동아리를 시작해버렸다. 그리고 단편영화를 찍는다고 시간을 엄청 보냈다. 내가 촬영 담당이었다. 나중에 나라에서 주는 무슨 상을 탔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오빠의 고3과 재수가 연이어 찾아오고 또 그 다음이 바로 나의 고3이었으니 엄마는 내가 뭐라고 쫑알거린들 내게는 관심이 적다고 생각했었다. 다 커서 들어보니 우리들 때문에 일하시느라 피곤한 와중에도 꿈많은 나의 말을 들어주고 뭘 더 해줘야할까 고민이 들었다고 하셨다. 나는 말이 앞서고, 엄마는 생각이 앞서고. 엄마는 마음은 천리를 앞서가는데 막상 말은 한 보 정도 나오는 분이셨다. 지금도 딱 그렇다. 하고싶은 말은 저 바다만큼 흘러가는데, 할 말은 딱 발 앞까지만 내놓는 분. 얼마전 나의 집 이삿날에 엄마 잔소리 좀 그만하라는 소리를 몇 번 했는지, 뭐라도 도와주려 이리저리 다니시는데 엄마, 아니야 엄마 이리와 엄마 가지마 소리만 연이어 외친 생각이 문득 나서 갑자기 너무 부끄럽고 죄송해졌다. 철없는 막내딸은 이제야 엄마의 그 모든 말이 그저 너무나 '현실적인' 조언임을 깨닫는다. 긍정도 부정도, 어떤 때는 세상에 이보다 쿨할 수 없는 냉정한 말도, 어떤 학자보다 현명한 말도 모두 현실적인 말들이었다. 이제는 그보다 많은 말이 더 나와도 좋으니 하고싶은 말 맘껏 하시라고 해야겠다. 생각해 보면 엄마의 말을 그렇게 많이 듣지도 않고있는데.. 우리가 엄마의 말을 얼마나 더 들을 수 있을지, 우린 아무도 알 수 없으니까. 갑자기 엄마가 너무 보고싶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