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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Apr 03. 2021

미뤄뒀던 일을 갑자기 하는 버릇

비 오는 날에 분갈이 숙제를 다 해치운 날

프로젝트 100 하루 한 편 나만의 글 (11) 2021.04.03


꽤나 많은 식물들과 한 집에 살고 있다. 양육하는 사람이나 동물은 없지만, 끊임없이 관찰하고 사소한 환경들을 신경 써서 챙기는 식물은 꽤 많이 있다. 아직 집사로서는 좀 부족하지만, 어쨌든 나와 한 집에서 살아가는 식물들은, 관엽식물부터 다육식물, 선인장, 고사리류, 최근에는 아프리카 식물까지 다종 다양하게 어우러져서 살아가고 있다.



이것도 욕심의 일종인데 그 자체로도 멋지지만 공간에도 멋지게 어울리는 식물들이 참 많다. 그중에서도 키우기도 수월하고, 내 공간에서 다른 식물들과 함께 관리하기도 좋고, 또 보기도 예쁘고 멋진, 혹은 멋지게 키우면 좋을 식물들을 골라 집에 데려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과정이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이 대개 아주 빠르게 일어나고, 집에 데려와서 관리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아예 새로운 일이 된다. 모든 식물은 보이지 않지만 뿌리부터 잎까지 매일 조금씩 자란다. 말도 못 하고 소리도 내지 못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환경이 식물 본연에 맞는지부터 현재 상태까지 온몸으로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다종의 식물을 키우는 집사들은 별 일이 없어도 부지런히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 세심하게 관찰하고, 다음에 해 줄 것이 무엇인지 체크해 둔다. 시간이 나면 날 때마다 그 일들을 해결해 자라는 데 문제가 없도록 해 주어야, 다시 그 식물을 관찰하며 초록의 생명으로부터 에너지를 얻는 사람으로서 집사가 행복하다.

 



오늘 나에게 그 일은 분갈이였다. 겨울에 들여온 고사리류 식물과 한껏 집이 좁아진 식물들, 서로 화분을 교체하여 윈윈 효과를 얻은 친구도 있다.


분갈이를 할 친구들을 골라 자리를 잡았을 때.
7개째 분갈이를 했을 때 잠시 쉬는 중

고사리류 식물들을 먼저 화분 분갈이, 흙갈이를 해 주었다. 각기 다른 곳에서 온 친구들인데 털어보니 흙이 다들 축축한 흙이다. 마치 머드와도 같은 상태.. 어쩐지 잎 상태가 신통치 않았는데, 그건 마른 게 아니라 과습이었다. 더피 고사리, 후마타 고사리, 보스턴 고사리 이렇게 세 종류는 대표적인 실내 관상용 고사리과 식물이다. 주로 따뜻하고 습한 동남아 지역에서 아무것도 안 해도 무성하게 잘 자란다. 4계절이 뚜렷한 우리는 화분과 환경, 흙을 제때 잘 맞춰주어야 멋지고 무성한 잎을 볼 수 있다. 한데 내 집의 친구들은 플분 안에서 잘못된 흙 속에서 물을 늘 가두고 살았다. 플분에 있던 흙을 털고, 마사를 적당히 블렌딩해 주었다. 그리고 밑에 배수층도 넉넉히 깔아주었다. 고사리과 세 친구와 무늬 아이비도 이렇게 해 주었다. 계획에는 없었으나, 화분이 남아 갑자기 해결된 아이비의 집 이사. 늘어지는 종이라 길고 폭도 좋은 화분에 넣어주었는데, 더 풍성하게 잘 자랐으면 좋겠다.



오늘 하나 더 얻은 인사이트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다 믿으면 안된다' 였다. 식물을 잘 키우고 예쁜 화분을 취급하는 어느 편집숍을 통해 식물을 여럿 입양했었는데, 그중 나뭇가지 끝에 통통한 작은 잎장이 매달리는 형태의 귀여운 코틸레돈속 아프리카 식물이 있었다. 하얀 토분에 심겨 있던 녀석. 필요한 것이 원래 그 화분이 아니었는데, 아스파라거스 나누스를 옮겨 심을 화분을 어떤 녀석으로 할지 매의 눈으로 스캔하던 중, 그 녀석이 딱 눈에 띄었다. 앗. 이거다 하고, 이전에 다른 화분이 죽어서 남겨놨던 유약분 (다육식물은 보통 물을 자주 주지 않기 때문에 유약분에 심고 물을 아껴서 관리한다)에 심어주면 되겠다 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화분에 있던 다른 아프리카 식물(역시 코틸레돈 속) 이 죽어서 그 화분이 생긴 거였다. 미안.. )  그렇게 해서 서로 집을 맞교환한 형태로 두 친구에게 집을 찾아주어 쾌재를 불렀다. 그런데 흙을 갈아주려고 아스파라거스와 아프리카 식물 각각을 기존 화분에서 꺼냈을 때, 정말 깜짝 놀랐다. 둘 다 흙이 너무 수분이 많은 나머지 머드보다 질척였다. 어쩐지 아스파라거스 잎은 계속 아래쪽이 누렇게 뜨고 있었고, 아프리카 식물은 잎을 계속 후드득 떨궜다. (다육 식물은 과습 하면 잎을 떨구면서 티를 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돌연사한다. 장마철에 흔히 겪는 일이다) 통풍이 부족해서인가 하고 요즘 시시때때로 베란다 창을 열어주기 바빴는데, 그게 원인이 아니었다니. 나는 분명 이 아프리카 식물이 이 토분에 심겨 있는 것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구입했고, 심지어 택배로 배송받았다. 그런데 이게 제대로 심겨 있는 것이 아니었다니.. 믿었던 사장님께 실망이 확 커지기도 했다. 게다가 아스파라거스는... 꽤 많이 학습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갈길이 멀구나 싶었다. 이걸 놓치다니.. 매일 보면서도 몰랐다니. 여하튼 꼼꼼히 물도 잘 빠지고 공기도 잘 통하도록, 두 친구 모두 분갈이를 마치고. 촉촉이 비 구경도 시켜주었다. 빗물은 식물에게 영양제라고 해서, 조금씩 골고루 비를 맞혀주었는데. 좋아하는지 어쩐지 다들 말이 없어서 모르겠다. 얼마나 어떻게 자랄지는 며칠 뒤를 기대해 봐야겠다.

이녀석들이다. 왼쪽 아스파라거스 나누스, 오른쪽 코틸레돈속 아프리카 식물



식물은 주인의 발걸음 소리와 빗물 소리를 들으며 자란다고 했다. 그만큼 돌보는 사람이 얼마나 자주 찾고,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는지가 식물이 잘 자라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물 주기 좋은 환경, 빛도 잘 들고 바람도 잘 드는 환경이면 더할 나위 없지만 역시 최고는 집사의 '관심' 아닐까. 오늘은 유난히 관심이 부족했던 요즘의 일상을 돌아보며 요즘 잘 못 챙겨줘서 미안하다는 소리를 연신 했다. 어쨌든 잘해줄게, 쑥쑥 커 보자. 너네들도 나도.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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