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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Jun 16. 2022

명품을 소비하지 않아요

싫어하지도 않지만 좋아하지도 않는, 그런 세계 



나와 살아온 세계가 다른 사람과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는 것을 전에는 무척 피곤해 했지만 지금은 곧잘 하는 편이다. 대화가 얽히고 섞일 수록 더욱 그 대화 속에서 파고들어서 듣고, 묻고, 또 나도 답을 하고, 생각해 본다. 그건 뭘까, 왜 그럴까, 생각하는 바를 얘기도 해보고. 그렇게 이런 저런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과는 두세시간은 너끈히 지나간다. 


오늘은 숱한 주제중에 어쩌다가 명품과 교육 이야기가 지나갔다. 그 중 명품 이야기는, 최근 내가 알게 된 한남동의 어느 빈티지 명품 취급 숍이 운영하는 블로그를 알게 되어서다. 






나는 사실 명품을 좋아하지도 않고 싫어하지도 않는다. 싫지도 좋지도 않은 그것은, 그냥 나로부터 먼 세계의 사람들이 소비한다는 그 계급 본능 보다는, '나와 어울리는 것을 찾지 못해서'가 아마 제일 딱 맞는 이유 1순위인 것 같다. 한참 모든 2030 여성들이 루이비통 스피디백 같은 것을 모두가 들고 다닐 때도, 나는 그 풍토(라고 해야할까)에 전혀 적응하지 못하고 공감도 하지 못했다. 물건의 가치는 모든 물건이 쓰이는 만큼 갖는다고 생각하기에, 가품이 아니기만 하면 크게 상관은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또 생각해보니 그들이 늘 매일같이 그 가방을 들고 다니는 것을 보니, 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착장과도 어울리지 않고, 옛날 명품백은 가죽이 상당히 무겁고 두꺼워서 오랫동안 들고 다니기는 피로감이 컸었다. 그런데도 저렇게 좋아하고 매일 모시고 다닌다니.. 참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다. (밀라논나 할머니는 이제 힘드셔서 무거운 가죽가방 못 든다고 가벼운 가방이 좋다고 하시는데, 할머니 저는 30대 초반부터 가벼운 가방만 들었어요...)


내가 좋아하는 특정 브랜드가 있지 않아서 내 친구들이 생일에 가방을 사 준 적이 있는데 좀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꽤 줘야하는 어떤 브랜드였는데. 여하간 그 때는 연령도 어릴 때고 그런 소비를 해서 사준 친구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웠다. 무엇보다 친구들이 내가 보지도 않았으나 내가 딱 좋아할 가방을 사줬던 것이 감동적이었다. 크로스 끈이 있고, 포켓이 양 옆에 달렸고, 크로스 끈을 떼면 귀엽게 들 수도 있는 사각형 백. 우연히 집에 물이 스며 가방이 망가진 때에 집주인에게 화난 강아지처럼 왕왕 화를 냈던 기억이 난다. 친구들이 어떻게 사준 가방인데.. 아주 속이 상했더랬다. 그 시기에 비싸고 예쁜 백이란 것은 나에게 그런 존재였다. 쓸모있고 예쁘고 나에게 어울리는 건데 친구들이 사준 좋은 가방.


그 뒤로도 일부 몇 개의 브랜드에 관심은 가져보았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소비해서 가지고 다니기에는, 내 착장 스타일이 요일마다 중구난방이고 내가 즐겨입는 어떤 룩이나 분위기에 정착을 못 했다. 어울린다고 생각이 들지 않았다. 요즘서야 4-5년 전에도 산 옷을 이리저리 잘 활용할 정도로 대강은 못나지 않게 입고는 다니는데(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 전에는.. 잘 모르겠다. 그 시기부터 지금까지 명품을 소비하는 것 자체에 휩쓸려다니지 않은 것은 나 자신이 잘했다고 생각한다. 혹은 지금처럼 아주 다양한 브랜드와 꽤나 자주 쏟아지는 신상품 정보가 많지 않아, 좁은 세계에 광적으로 몰입하는 풍토를 보자하니 공감이 더 안 된 것도 있을 거다.


그렇게 미각을 잃은 사람처럼 명품과는 인연이 없나봐, 하고 쭉 살다가. 최근 3-4년 사이 망원동의 탁월한 어떤 가죽 공방 스튜디오 덕분에 가죽의 매력과 디테일의 세계에 빠져 몇 개를 소비했다. 이제 이런 제작 가방에 정착하는 게 나에게는 맞는 것 같다, 고 선언하기도 했다. (실제로 그 3-4년 전부터 기성품 가방이나 옷의 디자인을 무제한 탐색하는 일을 그만뒀다) 다들 실용적이고 아름다운 제품들이다. 유용하면서 아름다운 제품이라니, 나는 사실 조금 만들고 비싸게 팔고 구하는 것 자체에 열을 올려야 하는 그것들보다는, 나에게 착 맞고 너무나 유용하고 심지어 아름다운, 그 가치에 푸욱 빠진 것 같다. 



오늘은 오랜만에 명품을 소비하진 않지만 블로그에 올려진 빈티지 가방들과 룩에 어울리게 잘도 찍은 사진들을 보면서, 역시 어울리는 것, 본인에게 잘 어울리는 것을 적재 적시에 소비하는 것, 그것을 잘 활용하는 것... 그것이 제일 중요한 것 아니냐는 생각으로 매듭지었다. 무엇을 사도 본인 것이 아닌 것 같은 가방을 들고 다녀서 도대체 어떤 자랑을 할 수 있을까. 그랬다가는 샤넬백을 머리 위에 모시고 다니는 전철의 출근길 여성1이 되고 마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한다. 자기 자신이 좋아하는 룩, 어울리는 룩, 그래서 기분을 내고 싶을 때 하고 싶은 착장, 평소에도 가볍게 함께하고 싶은 아이템, 그런 것들이 결국은 내 곁에 오래 남는다. 관리해가며 아껴 쓰고 시간이 훌쩍 지나면 그렇게 빈티지가 된다. 



세월이 지나도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명품은 무엇이든 그 가치만큼 많은 노력과 신경을 기울여 만들어지고, 관리되어 소비자들 품으로 찾아간다. 그 값어치를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 소비하고, 기꺼이 즐겁게 자주 활용하고, 함께 즐거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기왕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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