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은 알았으나 잊었던 것들
집의 의미
주말에는 집에 다녀왔다. 정확히는 부모님이 살고 계신 고향 집. 지금 내가 사는 집도 집인데. 친구는 '나도 집이야'라고 하는 내 말에서 내가 대전이라고 눈치채었으니. 우리에게 '집'이란 어떤 의미일까. 그 순간 문득 아, 하고 깨달았다. 뭐가 끓는지 딸랑딸랑 소리를 내는 냄비, 엄마의 분주한 발걸음이 있고 따뜻한 서향 빛이 가득 들어오는 지금 우리 집. 가만히 내버려둬도 쑥쑥 크는 정글같은 식물들. 가만히 보면 모르는 식물도 척척 잘 키우는 엄마야말로 척척박사. 척척박사 엄마표 백숙은 언제 먹어도 맛있다.
몸을 움직이면 기분이 좋지
이른 저녁을 먹고 엄마에게 나가자, 나가자 설득해 잠깐 걷고 운동도 하러 나섰다. 집 근처의 어느 공원. 엄마는 크로스컨트리 기구를 무척 좋아했다. 너무 과격하게 움직이셔서 허리 다칠까 걱정될 정도.. 체어풀 이라는 기구는 앉아서 다리를 밀고 팔을 당기며 온몸으로 체중을 느껴야 하는 기구. 내가 팔 힘이 약해 부들거리자 엄마가 깔깔거리고 좋아했다. 젊은 것이 힘이 없습니다... 분명히 내가 명색이 근돼인데, 근육 다 어디로 숨었는지.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져 뛰어 들어오는 발걸음에는 우리끼리의 가벼운 추억도 뭍혀 들어왔다. 언젠가 기억 날.
해 본 것, 아는 것, 자신있게 해 보기. 기분 끌어올리기.
오늘 퇴근 후에는 집 앞의 공원에 나서 실컷 걸으려고 들어갔는데, 엊그제 보았던 크로스컨트리 기구가 눈에 들어온다. 이거, 엄마랑 같이 했던 거다, 나 이거 할 줄 알아. 눈으로 알아보고 자신감 있게 올라선다. 귀에는 트와이스의 노래를 하나 틀어본다. 왠지 흥이 난다. 휘적휘적 신나게 저으며 몇 분을 움직인다. 약간 땀이 나고. 공원 길을 돌던 분들도 하나둘 내 옆의 기구들로 들어온다. 같이 움직여요! 왠지 더 기분이 좋다. 실컷 휘젓고 자리를 비워준다. 공원 길을 따라 빠르게 걸으며 만보 채우기를 해 본다. 특별할 것도 없고, 날마다 힘이 들어도, 어떻게든 기운을 내서 기분을 올려보려고 애쓰는 엄마가 생각나, 나도 조금 더 기운내 움직여본다. 기분을 올려보자. 별 대단한 것 없이, 보름달 아래 운동도 하고 기분을 올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앞으로도 이렇게 하자. 힘 날 일 없어도 만들어보자. 나중에도 이 사소한 점 같은 기억들이 우리를 다시 움직이게 해 줄거야. 뭔가 혹시 모를 대단한 일이 일상을 채워줄거란 꿈과 착각은 이제 없지만, 사소한 일들로 늘 내가 스스로 행복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은 꼭 지니고 있어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