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에서 발견한 당황하고 작아지는 내 모습
낯선 곳에서 무척 당황하고 작아진 나
병원을 수도없이 이리저리 들락거리며 치료도 받고, 병원비도 무진장 써댔지만 실제로 큰 병원을 간 경험은 인생에 한 번 밖에 없는 것 같다. 내가 교통사고로 무릎 수술을 받아야 했을 때, 그리고 아부지가 매우 위중하셨을 때. 공교롭게 같은 병원이었네. 그것도 모두 대전에서였으니, 나는 서울에서 큰 병원에서 진료를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가는 날이 왔다. 미리 마음의 준비를 조금 하긴 했지만, 생각보다 크고 당황스러운 곳. 모든 사람이 분주하고, 모든 것이 낯설고 잘 몰라서 두렵고 그러니 편하지는 않은 곳에서. 나는 갑자기 매우 작아진 것 같았다. 엄청 큰 백화점에 처음 갔을 때처럼 주저하면서.
거기서 발견한 나의 어떤 모습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 때의 작아진 모습이, 당황해서 종종거리고 두리번 거리는 나의 모습이, 딱 엄마가 당황했을 때랑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럴까, 나는 엄마가 그렇게 종종 '처음 마주하는 것들' 앞에서 긴장해서 당황하는 것을 왜 그러는지 걱정하는 입장이었는데. 나도 같은 모습이네, 싶으니 헛웃음이 난다. 뭐 얼마나 다를 줄 알았니.
그게 사실 나의 자아일까
갑자기 거기서 그렇게 혼자 서서 당황하고 작아진 나의 모습을 지금 다시 가만히 들여다보자니, 그냥 그게 내 자아 같았다. 크나큰 세상 앞에 작고 약한 나의 존재. 무거운 짐들을 어깨에 메고, 강한 척 하면서 씩씩하게 걸어들어왔지만, 사실은 아주 약한 존재. 누가 말도 걸기 전에 공간의 중압감과 처음 겪는 낯선 불편함에 시무룩해져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외롭고 슬프기까지 했다. (이건 약의 부작용이다) 감성을 한껏 터뜨리며 진료실을 향했지만, 이것저것 먼저 해야하는 복잡한 프로세스 앞에 감성은 또 훌렁 날아갔다. 시키는 대로 척척 예진도 하고, 검사도 받고, 진료준비도 끝나고. 그제야 좀 안정이 됐다. 그제야 주변이 보였다. 많은 사람, 분주한 사람들, 각자의 대화들, 바쁜 발걸음들, 질문하고 답하고 전하고 설명하는 소리들까지. 주변이 보이고 들리니, 나 자신도 한결 안정되고 어깨가 펴졌다. 작아진 나에서 적응한 나로 조금 올라오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두려운 건 짧았지만, 아무튼 시간이 필요했다. 그 때 깨달았다. 아, 이건 진짜 나구나. 사람들은 좀 이상하게 듣기도 하지만, 나는 낯을 좀 가리는 외향형 사람이다. 진짜로 처음부터 쌩짜로 모든 사람과 다 잘 친해지지도 못하고, 특히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바글거리면 더 그렇다. 모두가 같은 경험을 하는 페스티벌 같은 곳에서는 주눅들지 않으나, 나만 아는 것이 없는 이런 특수한 공간에서라면 아주 작아지는 나로 돌아가버린다. 어떻게 보면 좀 바보같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한데. 천생 사회적인 사람도 이런 구석이 있다. 이상하지만. 모두 각자의 개성이겠거니 하는 식으로 덮어버리고 싶다. 그러려니. 그런 사람이겠거니.
이렇게 오늘도 또 나의 모습 하나를 발견하고 간다.
또 계속 발견할 모습들이 기다려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