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운전을 한다니
오늘의 일기.
사실 지금 전기차 구매를 신청해 놓고 고민하고 있다. 마치 이상형월드컵처럼. 내연차냐 전기차냐, 신차냐 중고차냐, 작은 차냐 좀 큰 차냐.. 처음 타는 인생 첫 차, 어떤 차로 할 것인가를 두고 아주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오전에 성수에서 미니 전기차로 운전 연습을 한 시간 반 하고 왔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물론 작년에도 운전 연수를 했지만, 오랜만에 연수 겸 시승을 하니 다시 기분이 이상했다. 내가 운전을 한다.
내가 오늘 타고 온 전기차는 스스로 에너지를 환원하는 회생제동 기능이 있다. 내가 엑셀에서 발을 떼도 스르륵 차가 멈추는 것이 제일 신기하다. 브레이크등에 점등도 된다고 한다. 신기하네.. 브레이크를 밟지 않아도 되다보니, 그 감을 슬슬 익히는 시간이 되었다. 그렇게 하다보니 재미는 있는데, 운전을 잘못 배우는 것 같아 한편 걱정이 되기도 한다. 아무튼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감도 익히고 차도 익히고.. 정말로 이 차를 내가 사서 타고 다닌다면, 생각하면서 긴장 반 재미 반 느끼며 한 시간 반을 돌아봤다.
난 사실 사람들이 아는 것보다 훨씬 많이, 정말 수도 없이 많은 고민을 했다. 중고차로도 많은 차종을 고민했었는데, 사실 차를 잘 모르는 입장에서는 걱정이 앞서는 건 어쩔 수 없다. 또 중고차를 사서 계속 수리하느라 비용과 에너지를 쓰는 사람들을 많이 봤던 터라, 어설프게 내연차 중고 사서 고생하느니 신차로. 또 기왕이면 유지비 적고 고장날 부품 자체가 적은 전기차로 시작하는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 전기차로 방향을 정했다.
그치만 그것도 재산을 늘리는 거라, 차를 한 대 마련하는 데 생각할 것이 너무 많다. 서비스, 부품 수리, 비용, 감가상각, 세금, 보험 등등.. 그 뿐인가. 오로지 운전을 잘 못하는 내 자신 걱정이 제일 컸다. 그런데 오늘 오며가며 만난 택시 기사님 두 분이 나의 걱정을 모두 날려주었다. 갈 때 만난 기사님은, 아이오닉 개인택시를 마련한 지 10일 되신 분. (전기차 시승하러 가면서 운전연수 하러 간다고 하니) 전기차로 영업을 하시지만 너무 만족하셔서, 충전 환경부터 카드, 구매에 든 비용과 프로세스, 일상생활까지 이런 저런 전기차 라이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성수까지 가는 30분동안 얼마나 많은 대화와 공감을 나누었는지. 기사님 뒤를 보고 얘기 못하셨지만 아주 열성적으로 많은 정보를 알려주셨다. 기사님 이야기에 공감도 많이 되었다. 그 와중에 가장 와 닿은 말은 사실 이것이었다. "나는 이제 이게 마지막 차일 것 같은데, 내가 타보고 싶었던 전기차 타보려고. 이걸로 했어요." 내가 타고 싶은 것. 언제가 마지막일지 모르는, 나에게 주어진 기회.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기. 나이가 꽤 지긋하신 기사님에게서 갑자기 힌트를 탁! 얻은 느낌. 내리면서 감사 인사를 드렸다. 또 운전에 대헤서도 너무 겁먹지 말라고 쿨한 조언 해주셨다. "내가 가려는 대로만 잘 가면 되요. 앞에만 잘 보고." 특별히 남들을 너무 신경쓰지 말라는 말씀. 이건 평소에도 그렇지. 갑자기 또 무릎 탁. "다른 사람들 말 신경쓰지 마세요. 중고차로 꼭 시작할 필요 없어요. 언제 어디서 고장날지 모르는 것보다는, 새 차로 아무 걱정없이 시작하는 게 훨씬 낫지." 히히 네. 딱 그 말이 듣고 싶었어요, 기사님!
그리고 시승을 하러 가서 시승을 잘 마치고, 딜러님과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집에 오려는데 길도 잘 모르고 해서 다시 택시를 탔다. 돌아오며 오늘 차를 시승 운전해 보고 오는 길이다, 그런데 운전을 잘 못해서 차를 사는 것에 걱정이 크다, 그런 말씀을 드렸더니. 이 기사님도 무릎 탁 하는 조언을 많이 해주셨다. "내가 가는 방향 잘 보고 쭉 가면 되요. 누가 와서 박으면 박으라고 해. 그냥 신경쓰지 말고, 내 갈길만 잘 가면 아무 문제가 일어나지 않아요. 천천히 가면 돼요. 초보라고 써 붙이고. 그러면 주변에서 생각보다 크게 건드리지 않아요. 못된 놈들 열에 한 둘은 꼭 못되게 구는데. 그 정도 말고는 그러지 않으니, 너무 겁 먹지 말고 시작해요." 네! 기사님. 너무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시라는 말을 꼭 붙였다.
차를 산다고 생각하는 것도, 차를 잘 운전해서 다니는 것도, 모든 문제에 겁만 먹고 있었던 나의 모습에 갑자기 닫힌 문 하나를 확 열어주신 것 같았던 기사님 두 분. 그 덕인지 실제 운전은 생각했던 것보다 어줍잖지만 아주 못하지는 않는구나 싶은 수준인 것으로, 재확인했다. 방향이나 길을 잘 볼 줄 알면 더 좋겠지만, 아직 거기까지는.. 차차 좋아지겠지.
집보다 차가 더 선택이 힘들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집은 생각보다 힘든 선택이 아니었는데, 차는 움직이는 재산이라 그런지 더 생각할 것이 많아 선택이 어렵다. 그렇지만 기사님들 말씀에 용기를 얻어 내 선택에 후회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 보려고 한다. 하고 싶은 선택을 신중하게 했으면, 씩씩하게 나아가 보는 것도 필요하다. 항상 겁에 질려있어서는, 나 자신도 내 인생도 더 나아가지 못한다. 나아가는 것에는 도전이 항상 필요하다.
가고 싶은 곳에 가고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만큼 쓰이는 나의 발과 방어막이 되어줄 수단. 그 수단을 움직이고 잘 관리하고, 재산으로 운영하는 것은 온전한 나의 능력과 에너지를 쓴다. 잘 할 수 있겠지, 걱정이 크지만. 내가 나를 믿어줘야지 누가 나를 믿어주겠나. 또 이렇게 큰 선택 하나에 내 맘대로 점을 찍는다.
*오늘은 정신이 없어 사진도 못 찍었다.
다음 주에 또 가면 타고서 사진 찍어야지.
내가 타고 온 차는 아래 사진의 친구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