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추억의 건물들
예전 회사 근처이자 집 근처에 동네와는 어울리지 않는 허름한 건물이 있다. 빠르게 개발되고 있는 동네에 전혀 걸맞지 않는 건물이다. 이 건물도 당연히 일층에는 여러 식당들이 있다. 동네에서 유명한 맛집도 있고, 나름 맛있는 팥빵 전문집도 있고, 분식집도 있다. 즉, 그냥 보통 지나가다 보면 보게되는 오래된 상가 건물이다.
그 건물에는 호프집이라 불리는 맥주집이 하나 있었다. 을지로도 아닌데 을지로 골뱅이라는 이름을 건 맥주집이다. 이 맥주집으로 말할 것 같으면 2000년대 초반 직장 생활을 할 때 회사 근처라 몰려가서 떠들썩하게 주거니 받거니 하던 집인데 아직도 그 위치에 그대로 장사를 하는 말하자면 오랜 시간을 버텨온 노포 아닌 노포 같은 곳이다. 6개월이 멀다하고 업종이 바뀌는 일이 허다한 이 곳에서 한 자리에서 20년 이상 장사를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데 그 어려운 일을 해낸 대단한(?) 곳이다. 그 시절 내가 자주 가던 맥주집이 두 개가 있었는데 하나는 춤추는 곰팡이라는 이상한 이름을 가진 대규모 맥주집이었고 또 하나는 을지로 골뱅이였다. 춤추는 곰팡이는 아마 맥주 효모를 의미하는 이름이 아닐까 즉, 생맥주 집임을 그런 식으로 표현한 것일 것이고 대형 매장이었다. 대형 매장은 대규모 손님을 받을 수 있고 경기가 좋을 때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경기가 안 좋아지면 매출이 급감하면서 높은 가게 운영비가 운영을 어렵게 만드는 점이 위험요소이다. 그렇듯이 춤추는 곰팡이는 내가 이직을 해 동네를 떠나있는 동안 사라졌다.
이직을 한 이후에도 가끔 이 동네에 올 일이 있으면 가끔씩 들르고 했던 곳이 을지로 골뱅이인데 전 직장이 이 동네로 이사를 온 이후로 동네에 익숙하지 않은 회사 동료들이 맥주집을 문의하면 항상 소개해 준 곳이 을지로 골뱅이였다. 을지로 골뱅이는 부부 두 분이 운영하는데 여자 사장님은 사교성이 좋고 음식 솜씨가 좋아 직접 주방에서 음식을 하시면서 안쪽 매장을 담당했고 사장님은 무뚝뚝하면서 손님들에게 인기가 좋아 바깥쪽 매장을 담당하셨다. 아이러니하게 가끔 손님과 맥주 한 잔씩 하시는 여자 사장님과 달리 남자 사장님은 술을 전혀 드시지 못하시고 담배도 태우시지 않아서 서빙을 하실 때 아니면 주로 텔레비전을 시청하시거나 나가서 바람을 쐬고 계시는 적이 많았다.
이름에서 풍기듯 골뱅이를 주로 하는 맥주집일 것 같으나 사실 동네 호프집이 그렇듯 골뱅이만 전문으로 하지는 않고 소주, 맥주 주종에 관계없이 곁들일 수 있는 여러 가지 메뉴들이 있었다. 즉, 골뱅이, 치킨, 뻔데기탕, 라면, 계란말이, 두부김치, 오뎅탕 등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메뉴들이 다 있었다. 그게 을지로에 있는 골뱅이 전문 맥주집과는 차이가 있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냥 동네 맥주집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골뱅이와 치킨, 라면, 뻔데기탕은 누가 먹어도 탄성을 내지를 정도로 경지에 오른 곳이었다.
최근에는 많이 들르지 못했는데 그런 와중에 건물 노후로 인해 건물 철거 및 새로운 건물 건축이 확정돼 그 건물에 있던 여러 식당들이 문을 닫고 다른 곳으로 이전을 하거나 아니면 이전을 준비 중이었다. 최종 철거되기 전에 꼭 한 번 들러 마지막을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저께 지인과 약속이 있어 찾아갔더니 이미 철수하고 말았다. 어디로 간다는 안내도 안 붙어있어 다시 찾아가거나 근황을 문의하고 싶어도 확인할 방법이 없게 돼 버렸다. 너무 늦은 것이다. 너무 아쉬운 마음에 철거라는 표지를 붙인 앞에 서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아쉬움을 넘어 슬펐다.
사실 그냥 건물 재개발에 따른 이전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 곳에 오랜 추억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은 단순하게 자주 가던 가게가 없어졌다는 것 이상의 서운함, 슬픔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물론 나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그 공간에서 맥주, 소주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했던 수많은 이야기들, 회사에 실적이 어떠하고, 누가 누구랑 사귀고, 어떤 노래방이 좋고, 누가 회사를 그만 두고 이직을 했고, 회사 미래가 어떻게 되고, 어떻게 하면 회사가 더 잘 될 수 있을까, 이런 고민들을 나누고 같이 기뻐도 하고 슬퍼도 하고 웃고 울던 추억의 공간이 사라진 것이니 슬픈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내가 그 골뱅이 집에서 만났던 사람들도 시대 별로 다른 사람들이었고 그들도 나름 그 골뱅이 집에 대한 기억들을 가지고 있겠지만, 사라지는 모습을 옆에서 보는 나로서는 그냥 맥주만 마시고 떠나간 사람들과는 다른 감정을 가지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일 것이다.
사장님 내외가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골뱅이 집을 열고 시작하실 수도 있고, 20년 이상 운영하시면서 이제는 좀 휴식을 가지실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어찌됐든 건강하게 잘 지내시면 좋겠고, 어디선가에서 다시 볼 일이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