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일요일 오후의 두려움과 공포
어릴 적, 그러니까 중고등학교 시절은 휴일이 짧았다.
그때는 일주일 동안의 수업이 파하는 토요일 오후 부터가 휴일의 시작이었다.
토요일 오후부터 시작한 휴일에는 대부분 학생들이 그랬듯이 친구들과 잡담하며 소일하기, 시험기간에는 공부하기, FM 라디오를 통해 음악 듣기, 시내에 나가서 백판 (해적판 LP) 구경하기, 명화극장 보기 등이 내가 겪었던 휴일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일요일이 되면 교회에 가는 친구들도 있고, 늦잠자는 친구들도 있었다. 일요일 아침에는 만화영화를 주로 했는데 예를 들면 은하철도 999, 천년여왕 같은 일본 애니메이션들을 일요일 아침에 방영했다.
주말의 절정은 일요일 점심 시간을 지나 드디어 김광한 선생님이 등판해 빌보드 차트를 소개해 주던 오후 2시에 절정에 다른다. 이번 주 빌보드 1위는 누구일까를 두고 친구들과 내기를 하기도 했는데, 빌보드 Top 40를 소개해주는 그 시간에 그 당시 미국의 차트를 휩쓸던 음악들을 몰아서 들을 수 있는 시간이라 다른 재미있는 것을 포기하더라도, 그 시간만큼은 라디오 앞에서 음악을 들었다.
그렇게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리면 시그널 음악이 바뀌면서 4시의 응접실 식의 이름을 가진 라디오 프로그램을 헀다. 지방에서는 오후 4시는 중앙 방송을 끊고 주로 지역 로컬 프로그램을 하는 시간이라 갑자기 시간이 지나갔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다른 날과 일요일의 차이는 빌보드 40를 하냐마냐 의 차이라 빌보드 40 이후에 듣는 4시 프로그램의 시그널을 듣는 느낌은 더 달랐으며, 사실 매우 큰 정신적 타격감을 주었다.
즉, 주말이 끝나가는구나, 내일은 학교를 가야하는 구나, 아직도 하지 않은 숙제가 많이 남았구나, 하는 현실자각적 인식을 깨어나게 했던 것이다.
그럼 그때부터는 갑자기 주말에 생각하던 온갖 잡생각, 잡담은 스러지면서 갑자기 월요일을 위한 준비에 돌입한다. 그러고 세네시간 월요일을 준비하는 바쁜 시간이 지나가면 다시 안도의 시간이 다가온다. 물론 세네시간의 결과물이 월요일을 준비하는데 만족할 만한 시간일때 말이다. 그게 아니면 악몽이 계속 되기도 한다. 어쨌든 그 안도의 시간이 다시오면 정말 얼마 남지 않은 주말의 시간이 다시 다가오고 남은 시간을 다 하지 못한 잡담과 잡생각으로 채우면서 황인용 선생이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고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렇게 나의 주말은 지나갔다.
나이가 들어서 생각해 보면 그런 긴장감이 좋을 때도 가끔 있다. 이제는 일요일 오후 네시가 됐다고 해서 그런 현실자각의 시간이 찾아오지도 않고 집중력이 불타오를 필요도 많이 없어서 아쉽기도 하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