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떠오르는 옛 음악에 대한 기억들
예전 또는 지금도 한국을 대표하는 성우 분들이 몇 분 계신다.
배한성 선생, 양지운 선생, 박일 선생, 김종성 선생 정도가 내 세대의 사람들이 많이 아는 대표적인 성우 분들이시다. 물론 송도순 선생, 장유진 선생 같은 여자 성우분도 계시지만 일단 오늘은 남자 성우 분들 중 배한성 선생이 진행하던 ‘밤하늘의 멜로디’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순전히 기억에 의존해 쓰는 것이라 사실 관계나 순서가 안 맞을 수도 있다. 어쨌든 내가 느낀 나만의 기억이다. 중학교 1학년이 되니 초등학교 (당시 국민학교) 때와는 다른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고 늦게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구조였다. 그러해서 방과후 낮에는 놀더라도 저녁 식사 이후 시간은 어쨌든 공부를 해야 했다. 저녁 식사하고 TV 프로그램 좀 보다보면 어느덧 9시에 가까워진다. 그럼 불현듯 현실자각이 시작되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한다. 물론 저녁 먹고 바로 공부를 한 친구도 많겠지만 적어도 나는 시험기간 이전에는 항상 9시 전후로 공부를 시작했던 것 같다.
라디오를 튼다. 물론 FM이다. AM은 음질때문에 거의 듣지 않았던 것 같고 스테레오로 새로운 음악들을 특히 팝송을 많이 들을 수 있는 FM을 들었다. 서울이 아닌 지방의 FM을 들으면 지역 방송국에서 제작하는 라디오 프로와 중앙방송의 녹음분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한다. 그 당시 왜 중앙에서 라이브 방송을 직접 틀지않고 지방에서는 2주 정도 전의 녹음 분을 방송했는 지는 알 수 없다. 아마 그런 기술적 어려움이 있거나 했을 것이다. 그런 연유로 라디오 프로그램에 음악 신청하는 엽서를 보낼 때는 항상 2주도 전에 미리 보내놔야 그 중에 선정돼서 2주 후에 방송을 탈까 말까한다. 어쨌든 그러했는데 KBS FM 기준으로 8-10시는 황인용 선생이 진행하는 영팝스, 10-11시는 김세원 선생이 진행하는 김세원의 영화음악실, 11시에서 새벽 한 시는 배한성 선생이 진행하는 밤하늘의 멜로디 순이었다. 전영혁 선생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8시 영팝스에서 전영혁 선생이 인지도를 얻은 이후라 나중에 정규 프로그램으로 편성되고 장수하긴 했지만 말이다.
당신 MBC는 지역 방송 위주였고 또 동시간대 진행을 하던 박원웅 선생이나 이종환 선생의 선곡보다는 KBS가 더 앞서 나가는 면이 있어서 MBC는 잘 안 들은게 사실이다. 그리고 김기덕 선생이 진행하던 오후 2시에는 지방 방송국 자체 제작한 프로그램이 나오는 시간이었는데, 놀랍게도 당시 히트 팝송을 위주로 선곡해서 방송하는 이기는 했다. 물론 그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분이 SBS 창립 당시 아나운서로 유명했던 신중섭 선생이었다. 신중섭 선생은 그 당시 대구에서 나름 인기있는 아나운서이자 라디오 DJ, 심지어는 지역 방송국에서 제작하는 드라마에 출연하는 탤런트이기도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원래 배한성 선생이 진행했던 밤하늘의 멜로디는 동양방송의 프로그램이었는데 언론 통폐합 이후 KBS에서 계속 이어서 제작한 것 같다. 동양방송 시절의 밤하늘의 멜로디는 내가 초등학교 시절이기도 하고 동양방송을 지방에서 접할 수도 없어서 알 수는 없다. 어쨌든 내가 저녁 공부를 시작하면 주로 듣는 프로그램이 김세원의 영화음악실과 배한성의 밤하늘의 멜로디였다. 두 분다 모두 성우 출신이시지만 김세원 선생이 진행하신 프로그램은 영화음악에 국한되다 보니 아무래도 새로운 음악을 접하기는 배한성 선생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듣는 게 나았던 게 사실이다. 최신 곡 소개 기준으로 보면 김광한 선생의 두시의 팝스, 황인용 선생의 영팝스가 제일 앞서 나갔지만 라디오를 집중적으로 들을 수 있는 시간에 방송되는 배한성 선생의 밤하늘의 멜로디가 제일 시간적으로 나에게는 나은 프로그램이었다. 더 궁금한 건 주말 오후 2시에 김광한 선생이 진행하는 두시의 팝스 들으면 됐으니까.
어쨌든 밤하늘의 멜로디를 들으면서 공부를 하다보면 자정을 넘어 깊은 밤을 향해 간다. 해야할 공부나 숙제도 얼추 끝나고 졸음이 밀려오는 시간인데 정말 졸려서 더 이상 못 들을 상태이거나, 꼭 다시 듣고 싶은 음악이 나올 기대감이 있으면 카세트로 라디오 방송을 녹음을 한다. 그러고 그렇게 다음 날을 맞이한다.
라디오를 듣다가 무심코 녹음한 테이프를 듣다 보면 가끔 평생을 듣고 있는 노래들이 녹음돼 있는 경우가 있다. 또, 한번씩 소설이나 청취자 사연을 각색해서 라디오 극으로 틀어줄 때가 있었는데 그것도 가끔 들을만 하다. 그때 알게 돼 평생을 듣고 있는 곡 중에 하나다 Eagles의 Lyin’ Eyes이다. 제목을 그대로 읽으면 ‘라인 아이즈’라 가사를 모를때는 Line Eyes인 줄 알았다. 선으로 된 눈이면 찢어진 눈이라는 뜻인가? 뭔 노래지? 근데 노래는 기가 막히게 좋은 노래네. 근데 이글스 다른 노래랑은 느낌도 다르네? 정도만 알았다가 나이가 들어서 다시 듣고서야 거짓말 하는 눈이고 컨트리 음악부터 시작한 밴드라는 것을 알고 그제서야 그 음악이 왜 다른 음악들과 느낌이 다른지 이해하게 됐다. 또, 라디오 극으로 각색해서 들려준 것 중에 나다니엘 호손의 ‘주홍글씨’가 있었던 것 같다. 어쨌든 중학교 1학년때 남들은 모르는 세상을 라디오를 통해 알게 됐고 그때 알게 된 것들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하니 그때 라디오를 흡인력 있는 진행으로 많은 것을 알게해 준 배한성 선생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결국 밤하늘의 멜로디로 그 이후 장수하지는 못했다. 84년이후인가 개편 때 폐지가 돼서 더 이상 배한성 선생이 진행하는 밤하늘의 멜로디를 들을 수는 없었다. 그 때도 아쉬웠고 지금도 아쉽다. 하지만 배한성 선생이 나에게 알려준 이글스의 Lyin’ Eyes와 호손의 ‘주홍글씨’는 아직도 나와 함께 하고 있다.
배한성 선생의 근황에 대해 최근에는 듣지 못했는데 어느덧 70대 중반에 접어드셨을 것 같다. 부디 건강하게 잘 계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