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t의 시대, 질문은 Slow에서 나온다
요즘 우리는 질문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질문하는 척'만 한다.
무언가를 검색하고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AI에게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그런데 그 대부분의 질문에는 본질이 없다.
대부분의 질문은 사실 정보 요청에 가깝다.
'그거 어디서 사?", "언제야?", "어떻게 하는 거야?"
그 안에서 생각의 방향을 바꾸는 힘, 의심하고 들여다보는 시선, 사유의 열쇠로서의 질문은 없다.
진짜 질문이 사라진 것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질문하지 않게 되었을까?
어릴 적엔 세상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았다.
그 시절을 생각해 보면 "왜"라는 질문이 가장 많았다.
"왜 빛보다 빨리 움직일 수 없을까?", "왜 지구는 회전하는 거지?", "왜 지진이 발생하는 거지?"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우리는 점점 '정답만 말하는 법'을 배우고, '질문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아니 질문하는 것을 꺼려하고 질문하는 사람을 비웃고 배척하는 문화에 스며들며, 우리는 질문하지 않는 것을 미덕처럼 여기기 시작한다.
학교는 정답을 말하는 공간이었고, 사회는 속도와 효율을 요구했다.
천천히 생각하는 시간은 사치가 되었고, 질문은 점점 불필요한 요소로 간주되었다.
철학이 사라진 것이다.
이 흐름을 날카롭게 설명해 준 사람이 있다.
행동 경제학자이자 심리학자인 다니엘 카너먼은 그의 저서 "Thinking Fast and Slow"에서 인간의 사고 시스템을 두 가지로 나눈다.
- 시스템 1: 빠르고 직관적이며 자동적인 사고. 그렇지만 오류와 편향에 취약하다.
- 시스템 2: 느리고 논리적이며 숙고적이지만 에너지가 필요하고 게으른 경향이 있다.
우리는 대부분 시스템 1로 작동한다. 광고를 보고 충동적으로 물건을 사고, 피드에 올라온 뉴스만 훑어보고 판단을 내린다. 마치 모든 걸 다 알고 이해했다는 듯이.
하지만 질문은 시스템 2에서만 가능하다.
느리고, 복잡하고, 피곤한 그 시스템이 아니면 '질문'은 나오지 않는다.
질문은 불편한 것이다. 그래서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불편함을 회피하고, 자연스럽게 더 쉬운 길을 선택한다.
지금의 시대는 시스템 1을 찬양한다. 속도와 반응, 직관과 자동화.
알고리즘은 질문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푸시 알림, 타임라인, 짧은 영상, 15초 만에 소비되는 정보들...
우리는 모든 것에 '빨리 답하기'를 원하고, 그 어떤 질문도 오래 붙잡아두지 않는다.
그래서 질문은 사라졌다. 질문하지 않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개인의 태도가 아니라 사회의 구조이자 기술의 발전에 따른 환경 변화에 따른 부산물이다.
그럼에도 느린 사유와 그 사유에서 나오는 질문은 중요하다.
이것은 사회와 기술이 발전해도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그 느린 사유와 질문이야말로, 사회와 기술을 진짜로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