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앙이라는 이름의 추억의 포도주

by Yameh

마주앙이라는 와인이 있다. 사실 내 기억에는 와인이 아니라 포도주다.

80-90년대 초 즈음에 와인이라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리고 와인이 그렇게 대중화 되지도 않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와인은 포도주라고 불렸다.


그 시절에는 외국 와인이 거의 수입이 되지 않던 시절이라 와인의 대명사는 마주앙이었다.

오비맥주에서 나오는 포도주였다. 그 당시 마주앙이 레드와인, 화이트와인 같이 종류 별로 출시되었다.

그런데 내 기억에 내가 본 마주앙은 모두 붉은 색이었다. 그런데 최근 레드 와인들을 보면 짙은 거의 검붉은 색에 가까운 반면 마주앙은 선홍색에 가까운 가볍거나(?) 밝은 붉은 색이었다.

마주앙의 맛은 단맛이 강했다. 묵직하다고 하는 그런 맛은 전혀 없었고 단지 선홍색의 포도주 색깔이 말해주듯이 가벼운 느낌의 술술 넘어가는 달콤한 맛이었다.

다만 대부분의 술꾼들은 그 당시에 마주앙을 가까이 하지는 않았다.

과장을 좀 보태자면 캡틴큐나 나폴레옹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이 둘은 레벨을 달리하는 숙취계의 신계에 있다) 심한 숙취를 유발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래서 분위기를 낼 필요가 있을 때 아주 가끔 마시긴 하되 자주 먹지는 않는 그런 술이었다.

그런데 그 당시의 술들을 생각해보면 소주는 거의 30도에 육박하는 도수였고 막걸리도 지금과 같이 잘 걸러진 지평 막걸리가 아니어서 다른 술들도 심한 숙취를 만들긴 마찬가지였다.

크라운 맥주는 오줌맛이 난다는 (오줌을 먹어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일텐데 대부분 오줌맛이 나낟고 했다) 했고 그래서 그나마 오비맥주가 크라운 보다는 낫다고 했다. 그게 시간이 지나 크라운 맥주는 하이트 맥주가 되었다. 하이트 맥주가 되고 난 이후에는 오줌맛이 난다는 이야기는 사라졌던 것 같다.


내 기억에 마지막으로 마주앙을 마셔본 게 2003년 초 정도였던 것 같다.

그 당시에 하고 있던 프로젝트 오픈 이후 매일 밤낮으로 미친 듯이 안정화에 매달리고 있던 시기였고, 새벽 두세시 퇴근은 다반사였던 시절이었다.

몸이 힘들면 그 힘듦을 위로하거나 달래거나 잊으려고 술을 먹게 된다. 그래서 그 당시 새벽 두세시에 퇴근하면 꼭 한 잔씩 걸치면서 회사 욕을 하거나, 상사(팀장, 임원) 욕을 하곤 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맨 정신으로 다음 날 다시 마음을 다잡고 일하러 나오기 힘들었기 때문이리라.


하루는 새벽에 퇴근해서 귀가했는데 배가 고파 냉장고를 열었더니 난데없이 마주앙이 한 병 있었다. 우리집이 포도주를 먹는 집도 아니고 (그 때는 이미 아무도 포도주라고 하지 않고 그런 류의 술을 와인이라고 하기 시작했을 때였다) 마주앙이 이미 싸구려로 취급받던 시절이라 이런 게 우리 집에 있을 리가 없는데 매우 의아하게도 우리 집 냉장고에 난데없이 마주앙이 한 병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마주앙을 꺼내 그 자리에서 돌려 병을 땄다. 마주앙은 코르크 마개로 밀봉돼 있어 코르크 마개를 돌려빼야 하는 수고로움이 없는 그냥 소주 따듯 돌려 따는 방식이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소주 역시 예전에는 병따개가 있어야 딸 수 있었다. 옛날 영화나 드라마에 보면 소주를 이빨로 따는 장면이 가끔씩 나오는데 이런 이유였다. 즉, 돌려따는 소주가 나온지는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다.그런데도 30년이 넘었다. 오래되지 않은 것이 오래되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냥… 상대적인 것이다.


어쨌든 나는 그 새벽 세시 가까운 시간에 혼자서 마주앙을 마시기 시작했고 허기져 있는 상태에 마시는 마주앙의 달짝지근한 포도주 맛은 매우 좋았다. 처음에 그냥 한 잔 먹고 빨리 자야지 했으나 마주앙은 내가 한 잔만 마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마주앙은 내가 자기를 다 비워주기를 원했다. 나는 그런 마주앙의 요구에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그 요구를 들어주기로 했고, 그 자리에서 다 비워주었다.

거이 빈속에 가까운 상태에서 마주앙을 받아들이면 황홀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얼굴이 불게 변하면서 심장이 쿵쾅대고 혈류량이 빠르게 증가한다. 몸의 장기들은 몸 안으로 들어온 그 선홍색의 묽은 피같은 것을 진짜 내 피로 만들기 위해 빠르기 움직인다.

시간이 지나 급격한 피로가 몰려왔고 마주앙 한 병을 다 비운 나는 거실의 침대 소파에 쓰러져 그대로 잠들었다. 물론 여기서 뱃속의 무언가가 바깥 세상을 다시 보고 싶어 밖으로 굳이 나오거나 한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너무 피곤했고 그날 마주앙은 그냥 한 병의 붉은 수면제였다.


나는 그 다음 날 출근해야 할 시간에 일어나지 못했다. 그 당시에는 내가 새벽 세네시에 퇴근하든, 저녁 여섯시에 퇴근하든 출근 시간은 9시였다. 즉, 네시에 잠들면 적어도 8시에는 일어나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머니의 날카로운 외침에 눈떠보니 9시였다. 급하게 회사에 전화해 몸이 안 좋아 늦는다는 핑계를 대고 재빨리 출근을 위해 씻고 출근 준비를 했다. 그러고 잘 잡히지 않는 택시를 새치기를 하면서 타고 회사로 잽싸게 출근했다. 그 당시에는 카카오 택시도 없었고 그냥 서서 오기를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늦게 오더라도 그냥 내 앞에 있으면 그 사람이 타는 일이 일번적이었다.

택시를 타고 가면서 현실을 마주할 시간이 오고 있다는 걸 느꼈다. 아프다고 했는데 어제 마신 마주앙이 숙취를 유발해 심한 술냄새를 만들면 내가 한 말은 거짓말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런데 내가 들었던 마주앙은 숙취가 심하다 했는데 전혀 머리가 아프지도 않고 심지어 택시 기사분이 술이 덜 깬 상태로 술냄새를 아침까지 풍기는 승객에게 “어제 약주 과하셨나봐요”하는 농담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렇다. 나는 비록 늦게 일어났지만 뜻밖의 상쾌한 하루를 맞이했던 것이었다.

회사에서도 내가 혼자 마주앙을 마신 흔적을 발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날 퇴근해서 어머니에게 마주앙이 집에 왜 있었냐 물어보니 어느 모임에서 친구가 한 병 준 것인데 어머니 역시 마주앙에 대한 인식이 그다지 좋지 않아 그냥 냉장고에 넣어둔 것이었다고 한다.

나와 마주앙의 타이밍이 기가 막혔던 것이었다.


그 날 이후, 나는 모든 와인이라는 종류의 술을 마주앙과 비교하기 시작했고 와인이라는 단어가 널리 쓰이게 되었음에도 나는 여전히 와인을 포도주라 부르고 있다. 물론 막걸리를 번역해 라이스 와인이라고 하는데 그럼 이 기준에 의하면 쌀포도주라는 말도 안되는 말이 되긴 한다. 어쨌든 널리 쓰이는 와인은 포도를 발효해 만든 술 또는 곡물 또는 과일을 발효시켜 만든 술을 와인이라고 정의한다면 라이스 와인도 와인은 와인이다.

그래서 어찌 생각해보면 포도주라는 말이 와인이라는 말보다 포도를 발효 및 숙성시켜 만든 술이라는 말에 더 가까운 말인 것은 본질을 더 정확하게 표현하므로 그렇게 일컷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와인을 마시다 마주앙이 아직도 판매가 되는 지 문든 궁금해져 검색을 해보니 마주앙은 아직도 여전히 생산 중이며 레드와 화이트 와인 두 종류로 출시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오늘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마주앙이 미사주로 쓰여왔고 여전히 미사주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교황님이 한국 방문하셨을 때도 사용했으며 교황청이 공식 승인한 포도주다.

그런데 미사주로 공급되는 마주앙은 백포도주라고 한다. 예수님의 피는 붉은 색인데 왜 미사주에 사용되는 포도주가 백포도주라는 이야기를 듣고 혼자 피식 웃었다.


마주앙은 동양맥주(東洋麥酒)(현 OB맥주)에서 국산 2호 와인인 마주앙을 선보였고, 당시에는 국세청에서 술이름에 외래어 표기를 일절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여 '마주앉아 즐긴다'라는 뜻으로 마주앙이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이름마저 예쁘고 귀엽다.


요새 편의점에는 여러 종류의 와인들이 깔려있다.

다음에는 편의점에 가면 마주앙이 있는지 한 번 둘러보고 혹시 만나게 될 경우 2003년 초의 그 마주앙과 2026년의 마주앙이 같은 맛인지 한 번 비교해 보아야겠다. 물론, 싸구려라 취급받던 그 맛이면 시장에서 외면 받을테니 2003년의 그 맛과 그 색일리는 없겠지.

문든 떠오른 추억의 마주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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