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면산을 올랐다. 정확하게 말해서 소망탑까지 올라갔다.
원래는 산을 오를 생각은 없었고 일상적인 산책으로 예술의 전당까지 갔다가 교대를 들러 집으로 돌아오는 전형적인 루트를 생각하고 점심 식사 이후 걷기 시작했다.
날씨는 쌀쌀했고 (아주 살을 에이듯이 추운 건 아니었다) 예술의 전당 쪽으로 걸어가다가 문득 지금 우면산은 눈도 애매하고 온 상태라 노면이 그렇게 미끄럽지는 않을 거라는 (다행히 나는 트레일 러닝화를 신고 있었다. 나는 트레일 러닝화를 사랑하고 오늘은 알트라 올림푸스 6를 신고 산책 중이었다) 생각에 이 정도면 소망탑도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마음먹고 운동하러 나가겠다고 생각하면 보통 나는 이어폰을 두고 나간다.
그런데 오늘은 운동을 하러 가는 건 아니고 그냥 단순하게 산책을 하러 나간다 생각하고 나간 관계로 이어폰을 끼고 나갔다.
나는 보통 산책을 할 때 셔플로 아무 음악 (내가 좋아하는 아무 음악)이나 틀어놓고 가는 편이고 산책을 할 때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듣는 것(Listening)이 아니고 음악이 들리는 것을 인지하는 (Hearing) 정도로 항상 틀어놓는 습관이 있다.
우면산 입구에서 우연히 나온 곡은 Herb Alpert의 "Tijuana Taxi"였다. 음악을 이것저것 많이 들으신 음악 애호가 분이시라면 알 수 있는 음악이다.
Herb Alpert는 미국의 트럼펫 연주자이고 Tajuana Brass라는 밴드를 이끄는 리더시다.
멕시코적인 정서의 음악을 60-70년대에 많이 만드신 분이다. 이 분을 몰라도 이 분이 만드신 "Rise"나 "Tijuana Taxi"는 분명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친근한 음악일 것이다. 이 분도 어느덧 나이가 90에 가까워졌다. 35년생이니까.. 올해 벌써 91세시다.
내가 Herb Alpert를 처음 접한 게 84년인가 그랬으니 그때는 팔팔 하게 활동하실 나이셨다. 내가 이 분을 처음 알게 된 게 40년이 넘었다니... 나도 같이 늙어가나 보다. 어쨌든 여전히 살아계시고 아직도 트럼펫 연주를 하신다.
말이 길어졌는데 어쨌든 중요한 건 오랜만에 Tajuana Taxi를 듣고 옛날 생각을 잠깐 했는데 Youtube Music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Herb Alpert 다음에 나오는 곡으로 Lyle Mays의 "Eberhard"를 선택한 것이다.
내가 정말 사랑하는 곡이다.
Dream Theater의 앨범 중에 "Images and Words"라는 앨범이 있다.
이미지와 말은 서로 상호호환이 가능하다. 이미지를 떠올리면 그 이미지를 묘사할 수 있는 말이 떠오른다.
단어를 가지고 이미지를 표현하면 그 말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다.
심지어는 AI가 그 말을 듣고 이미지를 생성할 수도 있다.
그런데... 소리를 듣고 이미지를 떠올리는 건? 매우 어렵다.
물론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소리는 소리이고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 "Eberhard"라는 곡은 좀 다르다.
이 "Eberhard"라는 곡은 소리로 구성돼 있는데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
자, 한 번 들어보자.
https://youtu.be/BylqOtOIMdE?si=xQyEAc-gr6fgIRRf
나에게 이 곡은 소리를 듣고 이미지를 강제로 떠올리게 만드는 마법의 음악이다.
이 곡은 원래 내가 사랑하는 재즈 피아니스트인 Lyle Mays가 그의 유작으로 만든 음악이다.
Lyle Mays는 2020년인가... 코로나가 한창 창궐하려고 하던 시기에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내가 사랑하는 Lyle Mays가 더 이상 세상에 없다니... 나는 너무 슬펐다.
2002년 Pat Metheny의 Speaking Of Now 콘서트에 온 Lyle Mays를 LG 아트센터 앞의 스타벅스에서 만나 사인도 받고 심지어 너무 기뻐 포옹도 했었던 그가 세상을 등졌다는 이야기는.. 하늘이 무너지는 뉴스였다.
이제는 더 이상 Lyle의 새로운 음악을 못 듣는 건가, 하는 Tom Petty와 Prince가 사망했을 때 보다 더 큰 상실감을 안겨다 주었다.
이 "Eberfard"라는 곡은 ECM 레이블의 Eberhard Weber라는 베이스 연주자에게 헌정하기 위해 만든 곡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곡은 Eberhard Weber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게 아니라, 새로운 상상력을 자극한다.
쉽게 말해 Eberhard Weber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그 곡의 전개가 주는 느낌을 따라가다 보면 이 안에 탄생, 성장, Glamour(우리말로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Glory, 영광?) 그리고 쇠퇴, 죽음을 다 담고 있다. 쉽게 말해 인간의 사계절, 또는 만물의 사계절을 표현한 느낌이 든다.
죽음을 예감한 그가 그의 인생을 회고하면서 만든 곡일까...
물론 나만의 느낌일 수 일수도 있다.
처음 시작하는 낮은 음은 새로 태어나는 아이의 느낌이 난다.
그 아이가 성장하고, 성숙하는 과정을 음악으로 표현한다. 물론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아이가 성장하면서 겪는 슬픔, 기쁜, 발전, 인정... 이 모든 것이 소리로 표현돼 있다.
절정으로 가면서 점점 소리는 고조되고 클라이맥스를 지나고 점점 잦아드는 소리는 인생 최고의 날을 경험한 어떤 멋진 영화배우나 음악가의 희열을 느껴진다.
그의 기쁨, 슬픔, 사랑, 그리고 정적... 이 모든 것이 이 음악에 들어있는 것 같다.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러기에는 그 느낌이 너무 명확하다.
마치 "너의 인생은 이럴 거야. 그러니까 거의 찬란한 날을 준비하고 찬란할 때 그 이후도 준비하는 게 좋을 거야"라는 이야기를 Lyle이 나에게 하는 것 간다.
이 곡에는 희로애락,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이 들어 있는 것 같다.
내가 지난 번 Chick Corea Elektric Band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내가 실제로 손을 잡아본 나의 영웅들 중 한 명이 Lyle Mays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Chick Corea의 Akoustic Band)
그렇다. 그는 나의 영웅이다.
피아노를 오래 쳤고 전공을 할까 심각하게 고민했던 그리고 피아노를 포기하고 다른 길을 택했던 나에게 한줄기 빛과 같았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흠모해 왔고 그의 솔로 앨범을 하도 들어서 그의 곡 제목이 무엇인지는 말하지 못해도 이건 Lyle의 음악이야, 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아는 수준에 도달했다.
얼마 전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친구가 Slink를 듣고 "와.. 이 음악 죽인다... 뭐지?"
나는 아무 생각 없이 "Slink 지. Lyle Mays.."라고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난데없이 Youtube Music에 "Slink"가 요새 엄청 나온다.
1987인가 1986인가 나왔던 이 구닥다리 음악이 요새 왜 갑자기 뜻밖에 Main Street에서 나오는 지는 모르겠다.
그 시절에는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Lyle Mays의 솔로 앨범에 있는 곡인데.
그런데 더 이상한 건 친구의 반응이다.
"너는 이거 어떻게 아는 거야?"
이 질문에는 답하기 매우 어렵다.
내가 이 곡을 88년부터 알았다고 하면 이 친구가 믿을까? 한 번도 음악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는데?
아니면 그냥 알아. (I Just Know, I don't know why I know this song. I think I know about Lyle Mays much more than Meredith Brooks)라고 말하는 게 나을 끼?
모를 일이다.
어쨌든 몇 안 되는 나의 우상 중의 한 분이다.
그리고 정말 나를 Pat Metheny와 Pat Metheny Group으로 이끌어 준 분임에는 틀림없다.
Pat Metheny의 'Mas Alla(Beyond)"를 들으면 와... 이 분은 정말 훌륭한 분이구나.
Sounds and Words가 무슨 말인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 주는 양반이다.
내가 Lyle을 만났을 때 (2002년 스타벅스), 나는 그때 사인을 받을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아 그때 스벅 직원에게 냅킨과 볼펜을 빌려달라고 해서 Lyle에게 사인을 받고 Hugging을 했던 기억이 난다.
좀 더 늦게 왔으면 아마도 그와 같이 찍은 사진이 있을 뻔했다.
그런데... 그 시절에는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전이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건, 사진으로 남지 않은 기억이 더 강렬하다는 것이다.
나와 나눴던 짧은 대화, 그가 그 냅킨에 사인했던 그의 모습, 사인하면서 왜 나를 좋아하냐고 했던 질문, 사랑해 줘서 고맙다는 이야기, 한국에 올 때마다 (1995년의 콘서트에도 갔었다.) 한국 사람들이 왜 나를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그의 솔직한 대화, 하지만 한국에 오면 최선을 다하기 위해 정말 긴장하게 된다는 그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내 귓가에 아직도 맴돈다.
지금 시대 기준으로는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등진 미친 천재, Lyle Mays....
그는 오늘 Youtub Music 덕분에 다시 한번 그와 기억을 떠올리고 그가 만든 불멸의 Sounds and Words인 "Eberhard"를 오늘 하루 종일 들었다.
다시 한번 나의 Lyle에게 감사를 전하며, 그곳에서도 항상 심금을 울리는 음악을 계속 만들어 주기 바란다.
I Love You, L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