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한국형 AI의 집은 어디인가

한국형 AI를 위한 소버린 클라우드에 대한 생각

by Yameh

"AI는 우리에게 기회입니다. 그러나 그 기회를 어디에 둘 것인가는 선택입니다."


요즘 정부와 기업은 너도나도 '한국형 AI'에 대한 비전을 이야기한다.

네이버는 HyperCLOVA X를, KT는 Microsoft와 함께 AI 클라우드 전략을, SK는 AWS와 손잡고 AI 전용존(AI Zone)을 만들겠다고 한다.

대통령 직속의 AI 위원회도 생겼고, 국가 GPU 1만 대 확보 계획도 언론에 등장하고 있다.

이쯤 되면 질문이 하나 남는다.

"그 AI는 어디에 올라갈 것인가?"


한국형 AI, 왜 필요한가?

우리는 미국처럼 글로벌 플랫폼을 가진 나라가 아니다.

하지만 한국에는 강력한 제조업 기반과 복잡한 행정 시스템, 금융/의료/교육 등 디지털 전환이 빠른 산업들이 있다.

우리가 만들 AI는 단순히 영어로 말 잘하는 챗봇이 아니라, 공장을 자동화하고, 관세 리스크를 계산하고, 한국어 문서를 요약하고, 국내 고객 응대를 자연어로 처리하는 AI여야 한다.

즉, 한국형 AI는 '한국의 맥락'을 학습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한국 안에 있는, 한국적인 데이터에서 시작된다.


데이터가 중요하다면, 통제권은 누구에게 있어야 할까?

AI를 잘 만들기 위해 GPU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AI는 GPU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진짜 중요한 것은 데이터이다.

그런데 이 데이터는 대부분 의료, 금융, 제조, 공공 문서처럼 매우 민감하고 복잡한 한국 고유의 데이터다.

이 데이터를 AI가 학습하고 실시간으로 활용한다면, 그 데이터는 물리적으로도, 법적으로도 한국 안에 있어야 한다.

여기서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소버린 클라우드(Sovereign Cloud)'이다.


소버린 클라우드란 무엇인가?

많은 이들이 '국산 클라우드', '한국형 데이터센터'라는 말로 쉽게 이해하지만, 소버린 클라우드의 본질은 훨씬 더 깊다.

그것은 데이터가 물리적으로 한국에 있고, 해외 법률에 통제되지 않으며, 운영 주체가 외부가 아닌 국내에 있고, 법적 분쟁 시 한국 법원의 관할권 안에 있는 일종의 '디지털 주권 인프라'이다.

유럽은 이미 GAIA-X 같은 구조로 이를 실험하고 있고, 프랑스는 Orange와 Capgemini, 독일은 SAP와 MS가 공동 설계에 나섰다.

한국도 KT와 MS가 공동으로 'Secure Public Cloud'를 만들겠다고 발표했고, 네이버, NHN, 삼성 SDS도 소버린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갈 길이 멀다.


그런데, 소버린 클라우드로 충분한가?

지금까지 우리는 "왜 소버린 클라우드인가"를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다음 질문은 이것이다.

"지금의 소버린 클라우드로 충분한가?"

AI는 말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GPU 수천수만 장, 초고속 네트워크, 냉각 설계, 대용량 분산 학습, MLOps 자동화 체계...

AI는 엄청난 인프라 성능을 요구한다.

데이터 주권만으로는 부족하다.

성능이 없으면, 아무도 그 클라우드를 선택하지 않는다.

국산 클라우드에 AI를 올리자고 말하면서, 결국 AI 모델은 외산을 쓰고,

인프라도 퍼블릭 클라우드로 갈아타는 현실이 반복될 수 있다.


기술이 아니라, 설계다 - 제도는 보호를 위한 것이다

지금 한국의 AI 전략은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 흐름 속에 빠져 있는 논의가 있다.

바로 그 AI를 뒷받침할 법적, 제도적 기반이다.

GPU, 모델, 파라미터, API 성능에 대한 담론이 넘쳐난다.

하지만 정작 그 AI가 어떤 데이터를 다루고, 그 데이터의 통제권은 누구에게 있으며,

어떤 제도 아래 안전하게 운영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설계가 없는 듯하다.

소버린 클라우드는 기술의 집합이 아니다. 그것은 제도로 설계된 기술 구조이다.

AI의 발전을 막기 위한 규제가 아니라,

AI가 주권 안에서, 안전하게, 책임 있게 활용되기 위한 보호 장치로서의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

서버의 위치보다 중요한 것은, 그 위에 올라간 데이터와 서비스가 어떤 법과 책임 구조 안에 있느냐다.


결론 - 진짜 AI 주권을 원한다면

한국형 AI를 원한다면, 그 AI가 누구의 데이터를 학습하고, 누구의 통제 아래 있는지부터 설계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할 소버린 클라우드는 단순한 '데이터센터'가 아니라 법과 기술과 성능이 함께 설계된 전략 인프라여야 한다.

지금 우리는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AI를 키우자'는 말은 많지만, 그 AI가 어디에, 어떤 구조 안에, 누구의 법 아래 놓일지에 대한 고민은 부족하다.

AI 주권은 GPU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설계된 제도로 완성된다.


AI를 키우자면서, 그 AI가 자라날 '집'은 외국계 클라우드에 의존하는 구조.

소버린 클라우드라는 말은 잇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할 제도는 비어있는 상태.

'국산 AI'라는 말이 공허하지 않으려면, 기술만이 아니라 제도도 함께 준비되어야 한다.



한국형 AI의 집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그 집을 어떻게 지을지, 어떤 기준과 구조 위에 세울지, 지금이 논의할 적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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