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학교를 찾았다. 살인적인 전셋값에 밀리고 밀려 경기도까지 이르자 모교를 찾는 일은 고향길만큼이나 각오가 필요하다. 내 모교이자 아내의 모교이기도 한 이 대학에 아내는 대학원을 등록했다. 코로나 때문이라고 해야 할지 코로나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만삭의 아내는 여태껏 온라인으로 대학원 수업을 들어왔고, 오늘은 면접 이후 처음으로 강의실에서 수업이 열렸다.
아내를 학교에 내려주고 근처 영화관에 들러 킬링타임용 영화를 한 편 보고 나자 점심시간이 다 되어 있었다. 문득 신입생 때 자주 찾던 백반집이 생각났다. 남자 동기들 대여섯 명이 우르르 한 방에 들어가서 제육볶음, 오징어볶음, 계란찜 등 갖가지를 시켜놓고 밥을 두세 공기씩 먹던 집이었다. 그러나 그 집은 전역하고 보니 이미 없어졌고, 그 후로 학교를 찾을 때마다 그 자리엔 새로운 가게가 들어섰다. 그리고 덩달아 그 밥집에 대해 추억할 친구들도 하나 둘 없어졌기에 이제는 그저 혼자만의 신화처럼 남게 되었다.
그래도 법대 뒤쪽에는 고시원이며 하숙집들이 남아 있는 까닭에 백반집이 몇 개 눈에 띄었다. 문대 출신인 내게 법대 후문 쪽 식당은 모두 새로웠고, 딱히 맛집을 기대하지 않았기에 가장 가까운 식당의 문을 열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테이블 가득 손님들이 식사 중이었다. 한눈에 봐도 고시생 혹은 자취생들이었다. 웃긴 건 생긴 모양새가 하나같이 십여 년 전 친구들 모습을 하고 있었다. 푸석푸석한 얼굴에 헬스로 몸만 빵빵하게 불려서는 이름 모를 브랜드의 츄리닝 팬츠에 쪼리를 신은 남학생, 보는 이가 어질어질해질 정도의 똘똘이 스머프 안경에 늘어난 티셔츠 그리고 아무렇게나 묶은 머리의 여학생은 너무나 친숙했다. 옆 자리에서는 고향에서 부모님이 올라오신 모양으로 맞은편에 홀로 앉은 아들에게 연신 많이 먹으라 일렀다. 그렇게 혼자서 사람 구경하고 있는데 주문한 제육쌈밥이 나왔다.
아침을 대충 때우고 나온 터라 배가 고팠던지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남은 반찬을 집어 먹고 있을 때였다.
"밥 좀 더 드려?"
주인처럼 보이는 할머니가 내게 물었다. 할머니라고는 하지만 이제는 엄마 뻘 정도 되는 사람들이 할머니고 할아버지다.
"아... 아니요..."
학생 때였다면 고민할 필요도 없이 더 달라고 밥그릇을 내밀었을 테지만 나는 주인 할머니의 그 물음에 순간 머리가 복잡해졌다. 우선은 너무나 의외의 상황에 놀란 탓이었다. 밥 좀 더 먹을 거냐는 질문을 마지막으로 받아 본 게 언제인지조차 생각이 나질 않는다. 당연히 1인 1메뉴에 공깃밥은 별도 혹은 추가가 아니던가. 그러한 이유로 나도 모르게 메뉴판에서 '공깃밥 추가'를 빠르게 훑어보았지만 다행히 그런 메뉴는 없었다. 그다음으로는 몸이 망설였다. 밥 한 공기 더 먹으면 뱃살은 몇 공기가 될까? 이 이상 더 먹으면 내가 소화할 수 있을까? 어제저녁에 먹은 것도 아침 내내 소화가 안되었던지 위아래로 북북하던데... 할머니는 쉽게 돌아서지 않고 다시 물었다.
"그럼 반 공기 더 드릴까?"
그제야 나는 할머니께 부탁드린다며 밥그릇을 내밀었다. 할머니는 예상대로 한 공기에 가까운 반 공기를 들고 돌아오셨다. 남은 제육 양념에 밥을 비벼 남김없이 먹었다. 위가 빵빵해지며 경고성 메시지가 머리로 날아들었지만 무시한 채 꾸역꾸역 입으로 밀어 넣었다. 왠지 이 밥은 남겨서는 안 될 것만 같았다.
계산을 하고 나오는데 터질듯한 배와는 달리 마음 한 켠이 헛헛했다. 비단 학교 앞 백반집 가격이 예상보다 비싸서만은 아니었다. 밥 세 공기 먹던 나는 어디 가고 밥 한 공기에도 망설이는 내가 여기에 있나 싶어서, 그 많던 백반집 아주머니들과 그 백반집에 드나들던 학생들은 전부 어디에서 무얼 먹고사나 싶어서 괜히 학교 쪽으로 목을 빼고 올려다보았다. 그리도 들어가고 싶던 대학은, 그리도 자랑스럽던 나의 모교는, 어쩐지 처음 보는 건물마냥 차갑고 낯설고 지나치게 거대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