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눈팅만 하던 인스타그램에 처음으로 포스트를 올렸다. 사진 한 장, 글 한 줄. 무척 간편하고 간소했지만, 더없이 고민되고, 허전했다. 특성상 긴 글을 쓸 수 없는 미디어다 보니 사진 한 장에 의미를 꾹꾹 눌러 담아야 했고, 글은 거들 뿐이었다. 내가 왜 오랜 시간 눈팅만 했었는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의식의 흐름대로 주저리주저리 쓰고 싶은 충동을 인스타그램은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평소엔 그런 욕구가 일지 않는데 지독히도 외롭거나, 괴롭거나, 또는 인생의 큰 고비를 넘을 때 나는 한 번씩 어디가 됐든 글을 토해내고픈 욕망의 휩싸인다. 그리고 그럴 땐 여지없이 일기장을 꺼낸다.
그간의 일기장들로 덮히지 않는 판도라의 상자
돌이켜보면 내 일기의 시작은 2005년 지독히도 고요했던 지방의 한 독서실이었다. 당시 고3이었던 나는 TV 소리가 밤새 끊이지 않는 집 대신 독서실에서 새벽녘까지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실장마저 퇴근한 새벽, 혼자만의 독서실에서 라디오 주파수에 의존하며 외로움을 삭일 수 있었던 것은 일기 덕분이었다. 당시 일기장의 주된 주제는 같은 독서실을 다니던 여고생에 대한 연정, 대학에 대한 욕망, 집에 대한 반항심이었으니 매일매일 드라마 한 편이 쓰였다. 어느 날은 내 일기를 몰래 읽은 친구 놈이 네 일기 읽는 재미에 독서실 나온다며 더 자주 써달라고 성화를 부렸다. 아마도 그게 누군가에게 보여준 나의 첫 번째 글이었던 듯하다. 아쉽게도 그때 일기장은 졸업을 앞두고 어딘가로 사라져 버려 지금은 찾아볼 수 없지만 원래 어린 날의 기억이라는 것 자체가 사라지게 마련이니까 그냥 그러려니 한다.
또다시 대서사시가 시작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수능에 참패했고, 서울에서 다시금 수험생 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대학을 다니며 수험생 생활을 동반했기에 물리적 외로움에서 군중 속의 외로움으로 그 결만 달라졌을 뿐이었다. 거의 매일 한 페이지 넘게 일기를 썼던 것 같은데 그중 가장 기억나는 일기는 학교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날 쓴 일기 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중앙도서관에서 전공 수업 복습과 수능 준비를 병행하던 나는 왜 그렇게 졸린지 계속 꾸벅꾸벅 졸았다. 그래서 '봄은 바람에서 오는 것도 아니고, 꽃에서 오는 것도 아니며, 춘곤에서 온다.'라고 썼던 기억이 있다. 글로써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걸 그 시절 가장 크게 공감했던 것 같다. 다행히 그때 일기장은 남아있어 지독히 괴롭거나 슬픈 날에는 한 번씩 찾아본다. 미니홈피류의 오글거리는 문구들이 가득하지만 내 생에 가장 파이팅이 넘쳤던 시절이 글자 획마다 오롯이 박혀있다.
재수생 시절 쓰던 일기장. 이제는 기억처럼 바스라진다.
제3부는 군에서 쓰였다. 2008년 9월 9일 지금은 없어진 춘천 102 보충대에 입소하자 서슬 퍼런 조교는 '수양록'이라는 A4용지 크기의 책자를 주고 강제적으로 일기를 쓰게 하였다. 나를 제외한 모두는 기합을 받는 것마냥 연필을 붙들고 낑낑댔지만, 나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간이었다. 안 그래도 글로 남기고 싶어 근질근질했는데 대놓고 글 쓸 시간까지 주다니 군대라는 곳은 생각보다 감성이 있는 곳이구나 싶었다. (물론 그렇지 않음은 이후 1년 10개월 동안 뼈저리게 깨우치게 된다.) 자대에 배치받고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군에는 밤 10시 이후 병사의 학습 등을 이유로 한두 시간씩 취침을 대신하는 '연등'이라는 것이 있는데 대부분은 당직 사관의 허락하에 'TV 연등'을 하지 본래 이유로 연등을 하는 병사는 거의 없었다. 당직 사관 또한 형식적으로 "연등할 사람?"하고 물었던 것인데 거기다 대고 이등병인 내가 손을 들어버렸다. 분대장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고, 내 위의 선임들은 싸늘하게 굳었다. 그렇게 맹랑하게 시작된 나의 연등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계속되었고, 전역 전날까지 이어졌다. 아들이 스무 살이 되고, 우리가 그때까지도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면 그 시절 일기장을 아들에게 건네주고 싶다. (과연 아들이 읽으려 들까 싶다만)
강한 친구 육군의 수양록
아니, 안 짧아
나는 왜 일기를 쓰는 걸까? 돈이 되는 글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보여줄 글도 아닌데 나는 왜 그토록 오랜 시간 일기를 쓰는 걸까? 나름의 이유를 찾았다. 먼저 일기는 추억을 담는다. 사진을 찍는 것과 비슷하다. 사진이 그 날, 그 장소, 그 사람을 기록한다면 일기는 그 날의 이야기, 분위기, 감정을 기록한다. 가끔 오래전 사진을 꺼내보며 웃음 짓는 것처럼 먼지 묻은 일기장을 꺼내 읽어보며 지난날을 회상한다. 그 일기장 안에는 재수생의 독기가 담겨있고, 군인의 버킷리스트가 담겨있으며, 이제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친구들이 숨 쉬고 있다. 또 일기는 감정의 정화조 역할을 한다. 다른 글들처럼 조회수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또한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나만의 영역. 그 안에서 나는 울고, 웃고, 또다시 일어 설 힘을 받는다. 일기장을 펴기 전의 내 감정과 일기장을 덮을 때의 그것이 같지 않다. 수능, 취업, 결혼 그리고 출산을 앞두고 누구에게 말도 못 하고 혼자서 끙끙대던 숱한 일들을 일기장에 토해낸다. 그러면 녀석은 해결책을 주진 못해도 묵묵히 들어준다.
판도라의 상자에서 몇 개 꺼내 본 일기장
요새는 SNS나 '씀', '브런치' 같은 글쓰기 앱이 많아지다 보니 자연스레 펜을 들고 글을 쓸 일이 적어졌다. 그래도 신입사원 때는 한 달에 한 번씩은 쓰던 일기장을 어느 날 펴 봤더니 9개월이나 밀려 있었고, 바로 그해 만나던 사람과 지금 살고 있다. 돌아보니 그 시절엔 글을 쓸 시간마저 아까웠던 것 같다. 그리고 결혼 2년 차, 이제는 육아일기를 쓰고 있다. 아내의 입덧과 먹덧, 아이의 태동과 성장을 기록하며 나는 묵묵히 출산을 기다린다. 언젠가 아이와 일기장을 다시 펴 볼 날을 기다리며.
P.S. 혹시 지금 연인 혹은 남편(아내)의 일기장을 펴보려 한다면 그러지 말기를 권한다. 그 글들이 지금의 그 사람을 만든 것은 맞지만, 글 속에 등장하는 사람 대신 이제는 당신이 그의 곁에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