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글을 쓴다. 글을 못쓸 정도로 바빴던 것은 분명 아니었지만, 굳이 핑계를 대자면 일상에 집중하느라 글을 쓸 엄두를 내지 못했다. 3월부터 시작된 휴직은 일상이 되었고, 아이는 어느덧 35주가 되었다. 별 일 없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고, 별 일 없는 하루가 요즘엔 너무나 감사하다. 휴직이 일상화되면서 나는 새로운 취미를 찾아야 했고, 호기롭게 24년 된 기타를 꺼내 들었다. 이제는 제조사조차 존재하지 않는 이 기타는 아버지 것이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 것이 아니다. 할아버지의 반대로 기타 줄 한번 만져보지 못하고 컸던 아버지는 자식에게서 그 한을 풀고자 하셨다. 그러나 그 마음과 달리 우리 삼 남매는 기타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기타는 그렇게 고향집에서 먼지만 쌓여갔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하던 나는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기타를 둘러매고 호기롭게 서울로 올라왔고, 그렇게 기타는 장소만 바뀐 채 다시금 먼지를 먹으며 세월을 보냈다. 신혼집으로 이사를 할 때 아내는 고장 난 밥통, 쓰지도 않는 유선 진공청소기, 그리고 이 기타를 버릴 것을 내게 요구했지만 나는 젊은 날의 아버지와, 젊은 날의 내가 생각나 도저히 버리지 못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베란다에 기타를 버려두었다.
24년만에 수술대에 놓인 세비아
그렇게 2020년, 무급휴직을 맞은 나는 문득 지금의 나와 먼지 쌓인 기타의 처지가 비슷하단 생각이 들었다. 재난 지원금으로 줄과 헤드머신은 갈고 이리저리 깎고 기름 쳤더니 어엿한 기타의 풍모를 보였다. 악기상 주인이 말하길 나무가 제 소리를 내는 데까지 길게는 100년이 걸린다며, 칠수록 소리가 좋아질 거라 했다. 사실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시간이 지나도 제 가치를 높인다는 말에 뭔가 뭉클하였다.
‘청춘’이라든가 ‘태양을 피하는 방법’ 등 비교적 쉽고 귀에 익숙한 곡들을 유튜브를 보며 서툴게 한 현씩 손가락으로 튕겨본다. 유튜브를 보며 악기를 배운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정작 내가 하게 줄은 몰랐다. “글로 사랑을 배웠다”는 우스갯소리를 하곤 했었는데 아마 내 아들 세대가 되면 영상으로 사랑을 배울 것만 같다. 아니 사랑 자체를 영상으로 대체하려나.
하루 = 24시간의 신화
기타를 가까이하다 보니 스치는 음악마저 특별해졌다. 쇼핑몰에서 기타 반주가 들릴 때면 나도 모르게 왼손가락을 꿈틀거린다. 그러면 여지없이 아내가 칠 줄도 모르면서 까분다고 면박을 주지만 내겐 이 또한 일상의 기쁨이다. 손가락에 굳은살이 박히듯 이런 사소한 기쁨이 겹겹이 박혀 행복이 될 것이라 믿는다.
한편 5월에 이어 6월에도 코딩 공부를 계속해 나가고 있다. 뚜렷한 목적이 없는 공부는 처음이라 학습 성과는 흐릿하지만 반대로 순전히 지적 호기심으로 시작한 공부다 보니 하나하나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크롤링 연습을 할 때는 회사 홈페이지에서 자료를 긁고 싶은데 내 마음대로 되질 않아 몇 날 며칠을 붙들고 씨름하기도 했다. 그러다 원하는 값이 리턴 값으로 올 때의 쾌감은 마치 배트에 공이 정확히 맞아 청명한 소리를 내며 뻗어가는 야구공을 바라보는 쾌감마저 들었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고 누구도 채점하지 않으면 오히려 더욱더 알고 싶고, 자기만족 또한 훨씬 크다. 어렸을 때 이런 환경 속에서 공부를 했다면 훨씬 다양한 세상을 만날 수 있었을 것 같아 괜스레 손해 본 느낌마저 든다. 내 아들은 그런 환경에서 클 수 있도록 해야겠다 다짐하지만 아들의 성적표를 받아 든 나를 상상하면 그 다짐을 과연 지킬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집단 지성의 끝판왕
기타와 마찬가지로 프로그래밍도 무료 사이트와 유튜브를 통해 배우고 있다. 특히 프로그래머들 사이에서는 구글이 선생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구글링을 통해 무엇이든 배울 수 있다.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탔다는 말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누구든 무료로 쓸 수 있고, 무료로 배울 수 있게 되다 보니 어느 때보다도 취미를 갖기 좋은 시대이다. 코로나 극복의 일환으로 이참에 정부 차원에서 1인 1취미를 권장해도 좋을 것 같다.
6월 들어 새롭게 취미가 된 것도 있다. 오랜 휴직으로 몸이 시들시들 곯아가는 것을 느끼고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가장 먼저 이삿날부터 베란다에 잠들어 있던 자전거를 꺼냈다. 필요한 장비들도 하나씩 다시 구매하고 집 근처에 두고도 몰랐던 개천을 달린다. 회사 입사하고 호기롭게 샀던 자전거가 아직까지 제 값을 해줘서 페달을 밟으면서도 기특해서 자꾸 웃음이 났다. 몸이 삐그덕거려서 오래 타지는 못하지만 길에 핀 꽃들을 폰으로 찍어 아내에게 보내면서 뿌듯함은 덤으로 얻는다.
계절은 여름인데 아내의 답은 늘 겨울이다.
막상 5주(혹은 그보다 이르게) 후에 아기가 태어나면 이 모든 계획과 일상이 소리도 없이 사라지겠지만, 그 전에는 최선을 다해서 나의 일상을 살아보자는 생각이다. 그래야 언젠가 아이가 크고, 다시금 나의 일상을 되찾을 때 방황하지 않고 길을 되돌아 올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