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늑대의 시간
[생후 20일] 신생아의 잠 못 이루는 밤
"밤이 되었습니다. 마피아는 조용히 고개를 들어주세요."
아들이 고개를 든다. 울부짖는다. 먹이를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음은 더욱 커져간다. 마치 늑대의 울음소리와 닮았다. 아이를 안고 한참 동안 골반을 씰룩거려 보지만 아이는 몸을 배배 꼬며 다시금 울음을 터뜨린다. 2시간이 지나 수유 텀이 다시 돌아왔다. 이번엔 제발 먹고 바로 잠들어라. 헛된 기대를 또 한 번 걸어본다.
"아침이 되었습니다. 모두 고개를 들어주세요."
어젯밤 시민 아빠가 죽었다. 하얗게 밤을 지새웠더니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물속에 오래 있다 나온 것처럼 행동이 생각을 따라가지 못한다. 평생 울부짖을 것 같던 아이는 순한 강아지처럼 쌔근쌔근 잠들었다. 더러 배냇짓하느라 웃기도 한다. 어젯밤에는 어디 던져버릴까 고민하던 내가 따라 웃고 있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이 놈은 늑대인가 개인가. 오늘로 아이를 조리원에서 데려온 지 일주일. 개와 늑대의 시간을 넘나들며 아빠는 조금씩 말라가고 있다.
첫날 새로운 환경 때문에 잠을 설쳤을 거라는 추측과 달리 아이는 며칠이 지나도록 밤에 통잠을 이루지 못한다.(첫날 집에 왔다 난리를 경험한 장인 장모님은 억울할 뿐이다.) 짧으면 30분, 길면 3시간 간격으로 쪽잠을 잔다. 차라리 수유 텀에 깨면 부랴부랴 분유라도 탈 일인데 잠든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다시 울부짖을 땐 사고가 정지된다. 이대로 당하고만 살 수는 없다. 하는 일이 시스템 계통이다 보니 모든 버그는 디버깅이 가능하다고 믿는 주의다. 아이가 밤에 잠들지 않는 것도 분명 원인이 있고 해결책이 있을 거라 확신했다. 유튜브를 보고 아래와 같이 가설을 세웠다.
1. 졸림
2. 배고픔
3. 빨기 본능
4. 온도/습도
5. 기저귀 교체
6. 심리적 불안감
7. 소화 불량 또는 배앓이
8. 성장통 또는 영아산통
육아는 속도전이다. 아이가 자다 깨서 울면 멘탈을 붙잡고 재빨리 위의 8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해야 한다. 8 음계처럼 각 상황에 맞는 울음소리가 있을 수 있지만 아빠는 아쉽게도 절대음감보다는 막귀에 가깝다. 어떤 영상을 보면 "에~", "네~", "이에~" 등으로 구분한다는데 실제로 닥쳐보면 그럴 새도 없고, 초반에만 구분이 가능하지 결국은 "으아아아아앙" 으로 귀결된다. 그래서 아기 울음소리 어플을 돌려보면 늘 우리 아이는 '배고픔' 상태이다. 그리고 그 말인즉슨 "아빠 너는 잠 다 잤다"는 말이다. 통곡 이전에 상황을 수습해야만 한다. 아기 울음소리를 판별하는 AI가 나왔다는데, 그보다는 인간의 새끼도 태어나자마자 송아지나 망아지처럼 10분 안에 걷거나 말할 수 있도록 하는 개발이 시급하다. 그렇게만 된다면 출생률도 올라가고 가정의 화목과 국가 발전에도 도움이 될 테다.
(아빠가) 죽거나 혹은 (아들이) 잠들거나
가끔은 영장류답게 도구를 쓰기도 한다. 육아는 템빨(아이템)이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진 않지만 적어도 아내는 '국민 템'이라면 무조건 신뢰한다. 그래서 우리는 의도치 않게 맥시멀 라이프를 살고 있다. 걔 중에는 역류방지 쿠션처럼 우리 아이를 어떤 것에서도 방지해주지 못한 물건도 있다. 그러나 쪽쪽이(공갈 꼭지)처럼 잠시 동안 아빠가 멘탈을 가다듬을 수 있도록 울음을 멈춰주는 요술 반지도 있다. 쪽쪽이의 약빨이 떨어져 가자 아내는 바운서를 주문했다. 적어도 바운서가 배달될 때까지 그녀는 기대를 담보로 고통의 시간을 버텨낼 게다.
집에 들어올 때마다 아내의 박스 장벽을 뚫어야 했다.
아이를 안는 법, 수유하는 법, 트림시키는 법, 목욕시키는 법, 재우는 법에 이르기까지 육아는 모두 배워야 안다. 때문에 부모는 절대 게으를 수 없는 직업이다. 아침잠이 많아 여행 가서도 늦잠을 자던 아내가 새벽녘부터 아이를 안고 집안을 서성거리는 걸 보니, 아이 하나가 참 여럿 가르친다 싶다. 반면에 갓 태어난 아이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누구는 마찬가지다. 그저 우는 것 밖에 할 줄 모르던 아이가 부모와 주변의 도움으로 사람이 되고, 한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과정은 내가 겪었음에도 아쉽게 기억하지 못하는 추억이다. 그래서 아이를 키우며 그 추억을 되돌아보라고 신은 우리에게 늑대인지 개인지를 보냈나 보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고은 - 그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