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는 실전이다

[생후 2주]조리원을 퇴소하다

by 제이선

조리원 퇴소 전날 아빠는 할 일이 많았다. 가장 먼저 젖병을 소독해야 했는데 간단해 보였던 젖병 소독 순서는 실제로 다음과 같았다.

1. 새로 산 열탕 소독용 냄비를 식용유로 닦아서 연마제를 제거한다.
2. 냄비를 세척한다.
3. 냄비에 구연산을 넣고 끓인다.
4. 냄비를 다시 세척한다.
5. 젖병 세척용 솔과 열탕 소독 집게 등을 젖병 세척용 세제로 세척한다.
6. 젖병 세척용 솔과 세제로 젖병을 세척한다.
7. 냄비에 물을 끓인다.
8. 젖병 부품을 모두 넣어 1분간 소독한다.
연마제를 제거하는 연마 중


다음으로 당근 마켓에서 봐 둔 수유 쿠션을 받으러 판매자 집에 방문한다. 받아온 수유 쿠션과 조리원에서 쓴 손수건, 선물 받은 옷들을 세탁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이 맞이 집 대청소를 실시한다. (화장실 곰팡이 제거가 정점이었다.) 하루를 이틀처럼 살고 조리원에 다시 들러 아이 얼굴을 보고 집에 돌아오니 어느덧 10시가 되었다.

오늘 밤에는 치킨이라도 시켜먹어야 한단다. 회사 친한 형님 말이 내일이면 새로운 세계가 시작될 것이니 오늘 밤은 너만을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 한단다. 치킨 대신 먹다 남은 냉동 피자와 먹다 남은 소주병을 꺼냈다. 보고 싶던 넷플릭스 영화도 틀어놓고 혼자서 조용히 총각 파티하듯 밤을 지새웠다. 아이가 온다고 이 생활을 못할 것 같지 않았다. 아이가 잠들고 난 다음 보고 싶은 영화도 보고 술도 한잔하면 되지 왜들 호들갑인지 싶었다. (몇 시간도 채 되지 않아 그 생각은 판타지일 뿐이라는 걸 알았다.)

(아빠)사냥의 시간


결전의 조리원 퇴소일이 되었다. 그간 정들었던 조리원 직원분들이랑 아쉬운 작별을 하고 아이를 태우고 집에 돌아왔다. 예상외로 아이는 한 번도 깨지 않았고 집에 돌아와서도 한참을 잤다. 덕분에 밀린 설거지를 하고, 아내는 짐을 정리했다. 아이가 깨기 직전 점심을 해 먹었고, 그릇을 비우자마자 아이에게 분유를 먹였다. 너무나도 순조로웠다. 합이 딱딱 맞았다. 이 정도면 육아할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 육아 초보 아빠의 자만이었다.

아이 분유를 먹이고 있는데 코로나로 면회를 못했던 장인 장모님이 어렵게 올라오셨다. 집안의 첫 손주인 아들을 보고 기뻐서 어쩔 줄 몰라하셨다. 파도타기 하듯 아이는 나에게서 장모님에게로, 장모님에게서 장인어른에게로 옮겨갔다. 그러다 별안간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가슴에 대고 안고, 어깨에 걸쳐 안고, 조리원에서 하듯이 "옹야 옹야"하면서 등을 쓰다듬기도 하고, 흔들흔들하기도 하고 그간 학습했던 모든 초식들을 써보아도 먹히지 않았다. 아이의 울음소리는 엉덩이에 눌린 TV 리모컨 볼륨처럼 커져만 갔다. 어른들은 당황하셨고, 사실은 내가 더 당황했다. 등줄기에서 땀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모유를 먹어도 그때뿐이고 분유를 먹여도 몇 입 먹지 않고 입을 닫고 다시 울었다. 어른들을 거실에 벌세우고, 나와 아내는 안방에서 사투를 계속했다. 약간의 소강상태가 되자 장인 장모님은 멀찍이 떨어져서 아이가 잠든 모습만 보시다가 일어나셨다. (장인어른은 애 깬다며 장모님이 웃지도 못하게 하셨다.)

두 분이 가시고 아이는 또다시 울기 시작했고, 온몸이 시뻘게지고, 목이 쉴 정도로 울음소리가 사악해졌다. 체온을 재봐도 별 특이점이 없고, 밥도 먹었고, 기저귀도 깨끗한데 너는 도대체 왜 우는 거니?

아들님아, 아빠가 대체 뭘 잘못한 거니?!


이러다가 애 목이 쉴 것만 같아 입을 막듯 젖을 물렸다. 그런데 웬걸 젖을 한 두 번 빨더니 금방 잠이 들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순간 내 속에서 숱한 감정의 꽃들이 피어났다.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허무하고, 놀리는 것 같아 화도 나지만 애한테 미안하고, 무엇보다 기꺼이 젖을 내준 아내한테 고마웠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밥을 먹고 졸린데 잘 수 없어 짜증이 난 모양이다. 졸린데 잠 못 자는 게 그렇게 악을 쓰고 울 일인가 싶었는데, 그날 밤을 지새우고 나니 나도 그만 울고 싶더라.

밤중 수유 타이밍을 놓칠까 알람을 맞춰야 하나 고민했는데 기우였다. 아이는 3시간이 지나면 으레 끙끙거렸고, 나는 신기하게도 그 소리에 자동적으로 눈이 떠졌다. 10시에 한번, 1시에 한번, 4시에 한번, 7시에 또 한 번. 군 복무할 때 행정 계원이 이런 식으로 내 경계 근무를 짰다면 흡연실로 조용히 불러냈을 것이다. 물을 데우고, 분유를 타고, 젖병을 씻고 하는 일이 처음에는 조심스럽다가 어느 순간 기계처럼 손이 움직였다. 다행스러운 것은 아이가 내 어깨에 기대면 바로 트림을 해준다는 것이다. 34년 만에 처음으로 좁은 어깨가 고마운 순간이다.

혼돈의 카오스 : 아빠의 참회 시간


아이를 겨우겨우 재우고 다시 침대에 누워 오늘 아이는 왜 그랬을까 생각해봤다. 환경이 바뀌면 겁먹고 불안한 건 어른인 나도 마찬가지인데, 이제 막 태어난 너는 오죽할까. 매일 살던 집이고, 자주 보던 사람들이어서 아이 생각을 못했다. 아이에게는 모든 것이 처음인데.


생각의 끝이 자연스레 내 어린 시절로 이어졌다. 아이를 낳으면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게 된다는 말이 이제야 이해가 된다. 태어나고 얼마 안돼 시골 할머니 댁에서 자란 나는 금요일 밤마다 도시의 부모님 댁으로, 그리고 일요일 밤이 되면 다시 할머니 댁으로 옮겨졌다. 늙은 나이에 나를 키워준 할머니에게도, 울면서 나를 떼어내야 했던 엄마에게도 참 모진 시절이었다. 한편으로는 어린 날의 나는 또 얼마나 힘들었을까 상상해본다. 3시간 간격으로 우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밭에서 일하시던 할머니가 과연 3시간마다 내 분유를 어떻게 탔을까 싶기도 하고, 지금은 에어컨을 하루 종일 켜 두는데, 에어컨 없던 그 기와집에서 나는 또 얼마나 더웠을까 싶은 게, 괜스레 어린 날의 나에게 고맙고 또 미안하다.


아들 둘을 키우는 친형이 톡을 보냈다.

'낳는 건 하루지만
키우는 건 매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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