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던 회사 후배가 떠났다. 본인의 꿈을 위해 용감하게 유학을 택한 후배와 달리 못난 선배는 이별마저 쿨하지 못하다. 녀석이 남긴 엽서를 종일 쳐다본다. 스물 다섯 꼬맹이 때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한데, 어느 틈에 치고 나와 선배보다 먼저 회사를 졸업하다니. 내가 호랑이 새끼를 품었구나 싶다. 아직 채 치우지 않은 녀석의 책상을 등지고 나는 또 오늘의 밥값을 한다.
사내 메신저에는 온라인보다 오프라인이 더 많다. 무급휴직이 반복되면서 일도 싫고 집안 일도 싫어졌다는 직원도 있다. 대내외적으로 상황이 좋지 않다 보니 많은 직원들이 떠난다. 더러는 이직을 더러는 공부를 또 더러는 그냥 쉰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차마 손절하지 못하고 떨어지는 칼날을 우두커니 지켜만 볼 뿐이다. 존리가 그랬어. 존버하라고...
일하는 척하면서 30분 간격으로 부동산 사이트를 들어가 전세 매물 나온 게 없나 새로고침 해 본다. 명절 기차표 예매할 때 하던 짓을 집 구할 때 하고 앉았다. 어제는 오랜만에 매물이 나와 퇴근하고 내 집보다 남의 집에 먼저 들렀다. 연초에 비해 1억은 더 올랐건만 싸게 나온 매물이라며 호호호 웃는 부동산 중개인의 뒤통수를 한 대 갈기고 싶었다.
"강남에 돈 좀 있으신 분이 나중에 아들 물려주려고 이 집을 산대요. 그러면서 전세 내놓은 거라 오히려 전세 살기는 좋아요."
들어와 살 리 없는 주인이니 오히려 좋단다. 거 참 좋겠다. 나는 세 식구 몸 누일 전세방 하나 못 구해 난리인데 강남에 돈 많으신 분께서는 아직 세금도 안 내는 아들 줄 유산을 벌써부터 구매하다니. 낮에 회사 사람 A가 했던 말이 귀에 스쳤다.
"출발선이 다르더라고. 그 사람들하고 난."
괜스레 휴대폰 잠금 화면의 아들 사진을 본다. 가난의 대물림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신파가 확 몰려든다. 녀석은 이제 5kg을 넘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나는 반대로 5kg이 빠졌다. 어제 아이를 씻기면서 보니 야위었던 다리에도 살이 오동통 붙어서 이제 사람다운 태가 났다. 녀석을 씻기느라 진땀이 나서 나도 따라 씻는데 내 다리가 왜 이리 야위어 보이던지. 지금 시기에 항공사에 다니고, 갓난아이를 낳고, 전셋집을 구해야 하는 가장의 무게가 대략 5kg 즈음되나 보다. 누군가 다이어트에는 스트레스가 직방이라더니, 그 말이 영 거짓은 아닌 듯하다.
오늘이 우리 인생의 마지막이 아니라고 계속 스스로 위로해 본다. 언젠가는 전셋집을 구할 테고, 회사는 정상화될 거고, 살이 뒤룩뒤룩 쪄서 다시 다이어트를 고민할 날이 올 게다. 그때가 되면 지금쯤 영공을 벗어났을 후배 녀석도 쿨하게 보내줄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