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게 혼이 났다. 삼십 여 분을 비지땀 흘려가며 아이를 재운 나는 갑작스러운 아내의 꾸지람에 당황했다. 이유인즉, 이제 막 수면교육을 시작해서 일관된 방법으로 재우고 있는데 왜 애를 괴롭혀 재워서 흐름을 깨버리냐 이거였다. 안 그래도 흔들림 증후군 때문에 여러 번 경고를 먹었는데 이번엔 옐로 카드를 제대로 먹었다.
사실 나도 처음에는 나이스 하게 아이를 재우고 싶었다. TV에 나오는 잘생긴 아빠들처럼 만면에 웃음을 짓고 아이를 요리저리 흔들면 몇 분 안되어 아이가 천사 같은 얼굴로 잠드는 상상을 한다. 그러나 현실은 훨씬 더 하드코어 하다. 나이스 하게 아이를 재우려 해도 아이는 울음의 단계를 높여갈 뿐이다. 문제는 아이의 데시벨이 높아질수록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고 반동이 더 격렬해진다는 점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이 되면
이 자식이 지금 나를 갖고 노는 건가? 반항하는 건가?
라는 말도 안 되는 감정이 나를 휘감고, 그때부터는 거의 레슬링 수준의 격투가 시작된다. 이런 나를 보고 아내는 도대체 왜 한 살도 안된 애랑 싸우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한다. 당연한 반응이다. 나조차도 머리로는 이해가 안 되니까. 그렇지만 막상 살을 맞대고 열이 나기 시작하면 사내와 사내 간의 기싸움에 말려드는 모양이다. 내가 이상한 놈인가 싶어 아들을 둔 형들에게 이런 내 마음을 토로했더니 하나같이 그런 경험이 있단다. 너무 화가 나서 엉덩이를 꼬집었다는 아빠, 애가 좀 크고 난 후 아내 몰래 침대에 집어던진 적이 있다고 고백한 아빠도 있다.
신기한 건 아내는 절대 화내는 법이 없다는 거다. 연애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지켜본 아내는 절대 화를 삭이거나 친절한 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이에게는 언제나 웃는 얼굴이다. 게다가 내 귀를 의심케 하는 그 하이톤이란! 새벽에 기저귀를 갈다 얼굴에 오줌을 맞아도, 원더 윅스로 하루 종일 찡얼대는 통에 밥 한 숟갈 못 먹어도 아내는 아이에게 한 번도 큰 소리를 내거나 거칠게 흔든 적이 없다. 아내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엄마들이 아빠에 비해 아이에게 나이스 한 걸 보면 낳은 정은 역시 무시 못하나 보다.
제발 그 십 분의 일만큼만 남편에게 친절했으면 하는 바람도 든다. 대학 때 영문학 수업을 들으면서 작품에서 부자관계가 나오면 무조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연결시키는 통에 진저리치곤 했었다. 그 정도까진 아니어도 벌써부터 아내를 뺏긴 기분이 드는 건 내가 지나친 걸까?
새벽에는 처음으로 아이가 우는 데도 내버려 두었다. 겁 없이 수면교육의 시작을 퍼버법으로 시작한 우리는 그래도 20분이라는 양호한 성적을 냈다. 20분간 아내의 몸을 잡고 버티는 데 아내를 붙잡은 손이 갈수록 뜨거워졌다. 더 울렸다가는 어디선가 초인종을 누를 것만 같아 그만 쪽쪽이(공갈)를 내주었다. 아이는 쪽쪽이를 물고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잠에 빠졌다. 허무해서 한동안 잠들지 못했다. 저렇게 쉽게 잠드는 걸. 수면교육의 목적은 아이를 잘 재우는 것임에도 그 과정에서 부모가 잠을 못 이룬다는 게 참 아이러니다.
아이를 울려 재우 건, 우는 아이 때문에 잠을 못 이루건 아침이 되면 아이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나를 보며 활짝 웃고, 그 모습을 본 나 역시 앙금이 눈 녹듯 사라져 버린다. 배냇짓이라고 흔히들 부르는 '반응적 미소'만 짓다가 이제는 좀 컸다고 내가 웃으면 따라 웃는 '사회적 미소'를 보이는 꼴이 때론 우습다. 조막만 한 놈이 꼴에 사람이라고. 내가 화내면 울고, 웃어주면 같이 웃는 게 아내 말처럼 녀석도 이제 타인의 감정을 느끼는 모양이다.
벌써 사회생활이라는 걸 시작하는구나. 이 놈아. 너도 한번 해봐라.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야. 사회생활이라는 거. 사회 속에 섞여 살아가는 거. 그래도 지금처럼 절대 기죽지 말고 매일 새로 태어난 것처럼 웃어 보자꾸나. 너도, 그리고 이 아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