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휴가의 마지막 날이다. 출근을 하루 앞두고 마지막으로 아내의 손을 붙잡고 지하철 역까지 출근길을 함께 했다. 차로 태워준 적은 많아도 걸어서 출근을 같이 해준 적은 처음이라 미안함과 애틋함이 들었다. 날은 제법 쌀쌀해져 슬리퍼를 신은 맨발이 얼얼하였다. 생리가 며칠 째 없다는 아내의 말이 못내 마음에 걸려 테스트해보라고 재촉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걱정 많은 그녀를 안심시킬 요량으로 테스트해보라 성화를 부린 것이지 어떠한 기대도 하지 않았음을 미안하지만 밝혀둔다.
소파에 늘어져 정기 예금 금리를 찾아보고 있었다. 갑자기 은행 금리가 뚝 떨어져 돈을 넣으나 마나 한 수준이었다. 제 1금융은 2%가 채 되지 않았고, 신협도 잘해야 2.3%였다. 이렇게 경제가 힘든데 애를 어떻게 낳아 키우란 말인가! 그래도 돈을 놀릴 수는 없으니 집 근처 신협을 갈까 말까 하는데 톡으로 아내가 나를 불렀다. 말은 잇지 않고 부르기만 여러 번 불렀다. 그리고는 사진 하나를 떡 하니 보냈다.
"두 줄이야. ㅡㅡ;"
순간 심장이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뭐랄까 감탄사로 치자면 '앗!'도 아니고 '헐!'도 아닌 '하아' 정도 될까? 거짓말일까? 날 놀리려는 걸 거야. 조금만 지나면 "속았지?!" 하며 승자의 웃음을 짓겠지. 그러나 아내는 몇 분이 지나도 진지하다. 초조해졌다. 진짜인 모양이다. 기분이 묘했다. 대학 합격의 기쁨과는 다르다. 그때처럼 방방 뛰며 좋아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입사 탈락 때처럼 절망하지도 않았다. 절대로 절망하거나 후회해서는 안된다. 내가 뭐라고 이 아이의 생을 두고 절망하거나 후회한단 말인가. 수 십 가지 생각이 머리를 가득 메웠다. 이 동네에서 애를 키울 수 있을까? 이사를 그냥 바로 갈까? 애는 누가 키우지? 다른 건 몰라도 정기예금 따위는 한동안 내 인생에 의미가 없어졌다. 그러더니 또 멍하니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호흡만 가빠지기를 반복했다. 그대로 있기가 너무 두근거려서 설거지라도 해야겠다 싶었다. 그러나 설거지를 하다 말고 세 번을 앉아 쉬었다.
한 차례 막연한 두려움이 나를 휩쓸고 간 후 조심스럽게 기쁨이 찾아왔다. 두려움과 설렘 그리고 기쁨이 한데 엉키어 이제껏 겪어 본 적 없는 감정의 앙상블을 만들었다. 계획보다 조금 이르긴 했지만 먼저 찾아와 준 생명이 고맙고 대견하다. 아비로 산 시간보다 한 남자로 산 시간이 아직은 훨씬 많다 보니 이기적이 될 수밖에 없다. 앞으로 내 인생이 어떻게 달라지고, 또 얼마나 힘이 들지 그것부터 걱정이 들었다. 그렇지만 기쁘지 않은 것은 절대 아니다. 그저 준비가 안되어 당황했을 뿐이지. 사실 왜 아이를 낳아야 하는지, 부모가 되기 위한 준비는 어떤 것인지 전부터 궁금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이 나름대로 실마리를 찾은 후에 아이를 갖고 싶었던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나 시계 추는 이미 움직임을 시작했고, 나는 가능한 한 빨리 아비가 되어야 하겠다.
반면, 아내는 계속 요 며칠 맛나게 먹은 회와 즐겁게 마신 술을 걱정했다. 앞날이 걱정인 나는 그런 아내가 존경스러웠다. 엄마는 정말 날 때부터 엄마인 것인가. 내가 충격과 환희의 설거지를 하는 동안 아내는 이미 병원에 가서 혈액검사도 끝냈다고 한다. 좀처럼 볼 수 없던 적극적인 행보이다. 집중도 안될 텐데 사무실에 넋 놓고 앉아있을 아내가 너무 안쓰러워졌다. 오늘 아침 눈을 떴을 때 왠지 계속 입 맞추고 싶더라니, 휴가지에서 그렇게 유아 용품만 둘이서 찾더라니, 나는 계속 복선 아닌 복선만 생각해내며 빙긋 웃고 있다. 포탈에 벌써 '임신', '임산부'로 시작되는 최근 검색이 한가득이다. 아마 아내는 나보다 더 많이 찾아보고 있으리라. 분명 미간이 찌푸려져 있을 아내를 빨리 안아주고 싶다. 그리고 토닥이며 괜찮다고, 우리 이제 행복해질 일만 남았다고 말해 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