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mm짜리 신세계

[5주] 그 또는 그녀와의 첫 만남

by 제이선

처음 맞는 결혼기념일에 해외 출장을 떠나고 있다. 혼자 남은 아내는 앞으로 언제 다시 여행을 떠날 수 있을지 기약이 어렵자 풀이 죽었다. 바로 전 여행길에서 아이와 고군분투하던 맘들이 생생하여 더 엄두가 안나는 모양이다. 아내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이유로 잠이 더 늘었고, 밥 먹다 말고 자주 소화불량을 호소한다. 냄새에 민감한 여자인데 임신 중기가 되면 입덧이 심해질 것 같아 걱정이 크다. 벌써 라면에 탐을 내고 파인애플을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을 부정하려 든다. 임신 사실을 모르고 승낙한 출장이라 하필 이럴 때 집을 비우는 게 아내에게 많이 미안하다. 내가 없는 동안 처가에 가서 엄마 사랑을 많이 받고 왔으면 좋겠다. 왜 많은 집의 모녀 관계가 애가 생기면 좋아지는지 이제 좀 이해가 된다. 동병상련, 선후배, 어른으로의 인정 이런 개념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출산과 육아를 군생활에 비교하는 것이기도 하고.

어제는 초음파를 찍으러 강남을 갔다. 주말 오전 도로는 부자의 만남을 모질게도 밀어냈고, 아내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병원을 코 앞에 두고 길을 잘못 들어 영동대교로 들어서면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한강을 건널 수밖에 없는 나의 운명과, 예약 마감 시간을 훌쩍 넘긴 시계 숫자열과, 2시간이 지나며 깊은 한숨만 쏟아내는 아내가 나를 절망케 했다. 얼마나 당황했던지 "잘못했어요. 정말 잘못했습니다."라고 아내에게 울먹이기까지 했다. 거의 울다시피 차를 몰아 병원에 도착했지만 주차가 문제였다. 뭔 놈의 병원에 차가 이리도 많은지. 대한민국 출산율은 여기서 다 올리나 싶었다. 아내를 먼저 들여보낸 후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병원 앞에서 한참을 엉거 주춤대고 있으려니까 그제야 주차 대리인이 와서 안 들어갈 거냐고 묻는다. 어이가 없었지만 죽어라 병원 계단을 뛰어올랐다. 아내는 다행히 예약 없는 의사에게 진료를 받았지만, 나는 2mm짜리 내 아이가 가쁘게 내쉬는 심장 소리를 놓치고 말았다. 나오면서 주차 대리비를 내는데 어찌나 아쉽고 짜증이 나던지 이래서 아이가 개입된 일에 어른들이 물불 안 가리는구나 싶었다. 그래도 5주 5일 정도 된 (실제 나이는 알 수 없었다) 내 아이가 104 bpm이나 되는 심장을 벌써 갖고 안전하게 착상하고 있다니 대견했다. 어린 녀석이 벌써 안 떨어지려고 안간힘을 쓰며 버티고 있구나. 역시 내 새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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