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은 여러 가능성이 있지만, 디지털 자산을 만들어낼 수 있는 인프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이전 회사에서 기술 스타트업 투자하면서 세상의 본질적인 문제를 푸는데 목말랐었는데, 특히 세대간 부의 불평등에 관심 많았습니다. 블록체인 환경으로 인해 이전엔 쓸모없던 개인의 디지털 데이터 조각들이 자산화 될 수 있습니다. 비트코인 같은 가상자산이 디지털 자산의 포문을 열었고, 크립토키티 같은 NFT(Non-Fungible Token)이 디지털 자산화의 무궁한 가능성을 증명했습니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디지털 자산의 영역은 더욱 넓어질 것이고, 이는 젊은 세대에게 새로운 부의 가능성을 열어줄 것입니다. 아래는 블록체인과 디지털 자산이 어떻게 젊은 세대에게 새로운 무기가 될 수 있는지 작년초 회사 멤버들에게 보낸 메일입니다.
이전 회사에서 20대 동료들과 얘기를 해 보면, 저같은 X세대와 세상을 보는 뷰가 많이 다른 것을 느꼈습니다. 특히,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별로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에 충격이었죠. 내집을 가질 수 있을거란 희망도 없고, 결혼이나 자녀에 대한 희망도 없더군요. 그런 기본적인 삶조차 제법 비용이 들어가는데 자신들이 벌어들이는 소득으로는 가망이 없다는 것이죠. "왜 열심히 일해야 하는데요?"라는 질문에 말문이 막혔습니다. 지금 청년세대가 유일하게 부모세대보다 가난해지는 세대라는 얘기도 있죠?
저는 X세대로서 경제발전기의 혜택을 받은 세대라 생각합니다. 그만큼 이후 세대들에게 더 나은 환경을 물려줘야 하는 책임이 있다 생각하구요. 지금 젊은 세대의 문제, 특히 부와 기회의 재분배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저는 기술을 하는 사람이므로 기술로 풀 수 있지 않을까 희망해 봅니다. 하지만 퓨처플레이에서도 다양한 기술의 스타트업을 투자하면서 근본적으로 드는 질문이, 도대체 그 기술들이 세상의 근본적인 문제점들을 해결해 주는 것이냐는 점입니다. 더 편하게는 해줄거 같은데 그거랑 세상의 문제를 해결해주는건 다른거니까요. 오히려 이미 시장을 장악한 기업들의 지배력을 더욱 높여줄 무기가 되어 불평등의 간극을 더 넓힐 수도 있다는 회의도 들었습니다. 그러다 만난 기술이 블록체인인데, 블록체인에는 사람이 배제되어 있지 않고 오히려 사람이 무대의 주인공이었습니다. 저는 블록체인에서 희망을 보았습니다.
블록체인은 게임의 룰을 바꾸는 기술입니다. 대부분의 IT 기술이 자동화와 아웃소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블록체인은 참여자들 사이의 신뢰와 프로세스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참여자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여기서 참여자는 소규모 그룹이 될 수도 있고 대규모 사용자들이 될 수도 있겠죠. 중요한 것은 상호간 신뢰없이도 특정 프로세스를 완결성있게 구동하는 것을 보장해 준다는 것입니다. 비트코인은 상대방이 누군지 몰라도 안전하게 거래하는 프로세스를 보장합니다. 브레이브 브라우저는 유저가 선택한 광고를 보면 광고비의 일부를 유저에게 제공하는 프로세스를 보장합니다. 이 과정에서 운영자의 역할은 약화되고 과실이 참여자에게 골고루 돌아갈 수 있도록 설계할 수 있습니다. 이 방향으로 극단적으로 설계하면 완전 탈중앙화된 서비스가 되겠죠. 하지만 운영의 주체가 탈중앙화되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건 참여자들에게 과실이 분배되느냐입니다. 탈중앙화라는 키워드는 문제의 핵심을 운영주체의 유무로 집중시켜 버립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중요한건 참여자들에게 기술/서비스의 과실이 돌아 가느냐 마느냐입니다. 블록체인은 기술의 구조상 참여자에게 과실이 돌아가도록 설계하기 용이합니다.
이야기를 다른 측면으로 전환해 봅시다. 앞에서 젊은 세대의 이슈를 얘기했는데, 그들이 가진 최고의 자산은 무엇일까요? 저는 소비자로서의 관심(Attention)이라 생각합니다. 10년전인가 웹 2.0 한참 뜰때 Attention Economy라는 개념이 등장했었습니다. 현재의 가장 희소한 자원은 유저의 관심/주목(Attention)이라는 것이고 이를 어떻게 잘 모으고 활용하느냐가 서비스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것이죠. 사실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모두 유저의 Attention을 잘 모아서 엄청난 수익을 얻고 있는 것이죠. 빅데이터를 활용하고, 추천이나 예측에 AI를 도입하는 것도 결국 가장 희소한 자원인 유저의 Attention을 알아내고자 함입니다. 이를 위해 무료 검색을 제공하고, 무료 동영상과 SNS 서비스를 제공하는거죠. 하지만 유저의 관심이 그런 서비스를 무료로 사용하는 대가로 넘길 정도의 자산일까요? 10년전에는 그랬을지 모르겠으나 지금은 유저의 관심이 훨씬 비싼 자산입니다. 또한 밀레니얼/Z세대(MZ세대)가 경제 활동의 중심으로 떠오르면서 그들의 관심은 더욱 가치가 높아졌습니다. 지금 젊은 세대에게는 소비자로서의 관심이 최대 무기라고도 할 수 있죠.
MZ세대의 유저 관심과 블록체인의 참여자 리워드를 연결해 볼까요? 지금까지 그냥 제공했던 유저 관심을 자산화 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그리고 그 자산을 유상으로 제공하거나 거래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젊은 세대들에게 지금까지 가지지 못했던 권력이 생기지 않을까요? 그런데 유저 관심을 자산화한다는게 무슨 뜻일까요? 가장 기본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유저가 쌓아둔 디지털 발자취를 자산화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디지털 자산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아이디와 데이터가 되겠죠. 구글이나 페북이 소유하고 있는 아이디와 데이터에 대한 소유권이 유저에게로 옮겨간다는 것이죠. 소유권이 옮겨가면 제어권도 옮겨가고, 이를 자산화할 수 있습니다. 블록체인은 이를 가능하게 할 수 있습니다.
이미 아이디 영역에선 자기주권 아이디(SSI, Self-sovereign identity)이란 개념이 시도되고 있습니다. 웹 표준 단체인 W3C는 DID(Decentralized Identifiers)를 표준화하기 시작했죠. 이러한 시스템은 개인의 아이디를 특정 서비스의 소유에서 해방시켜 줄 수 있습니다. 데이터 관점에서는 이미 EU GDPR에서 보듯이 Data Privacy 이슈로 인하여 데이터 통제권을 사용자에게로 넘어오는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앞으로 Data Privacy는 Data Protection을 넘어 Data Controlability가 중요해 질 것입니다. 개인 정보를 보호하면서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데이터의 주인이 100% 통제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해 집니다. 데이터 주인이 원한다면 비식별화된 상태로 자신의 데이터를 상업적으로 팔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그러면 이런 개인 데이터를 안전하게 누구의 소유도 아닌 형태로 어떻게 저장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어떻게 개인의 선택에 따라 활용 및 거래할 수 있게 할 수 있을까요? 맞습니다. 정확히 블록체인의 분산 원장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물론 좀 더 암호학적인 기술의 발전이 필요하지만요.
자, 그럼 이렇게 자산화할 수 있는 디지털 발자취를 더 찾아 볼까요? (물론 광범위하게는 모두 데이터겠지만요) 게임 아이템은 어떨까요? 예전에 Clash of Clan 처음 나왔을 때 저도 6개월인가 공을 들여 성 만들고 했는데, 결국 그만두면서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허무했죠. 만약 내가 모으고 육성했던 아이템들이 자산화될 수 있는 용이한 경로가 있다면? 게임하면서 얻는 만족감뿐 아니라 금전적인 보상을 얻을 수 있겠지요. (리니지가 그런 세계를 구축한 셈이겠죠?) 가상 아이템은 어떨까요? 이모티콘, 아바타 등 가상 아이템은 자산화할 수 없을까요? 요즘 Z세대에게나 어울릴법한 ZEPETO라는 앱을 해보고 있는데, 나와 닮은 가상의 아바타와 이를 꾸미는 가상 세계의 미래를 엿볼 수 있습니다. 약간의 돈을 써가면서 꾸며보고 있는데 한두달후 느껴질 허탈감이 벌써 예상되네요. 소셜 네트워크의 친구 리스트는 어떨까요? 정말 중요한 자산이겠죠? 블로그 포스트나 유튜브 영상 같은 디지털 컨텐츠는 말할 것도 없겠죠. 이들은 더욱더 자산화가 가능할 것입니다. 만약 이런 디지털 개체들을 유저의 소유로 저장하고 통제할 수 있게 해서 자산화할 수 있다면 그 기반에서 나올 수 있는 비즈니스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형태가 될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이건 탈중앙화랑 상관없습니다. 디지털 자산의 소유권을 유저에게 돌려주는 것이고, 이를 사업화하는 방법은 중앙화든 탈중앙화든 관계없습니다. 당연히 여기에도 미들맨이 생기고 또 다른 구글, 페이스북이 나올 수 있겠죠. 하지만, 지금 구글, 페이스북이 가져가는 과실의 상당 부분은 유저가 가져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디지털 자산을 활용하는 새로운 형태의 서비스가 나오고 이들을 소개하는 마켓플레이스, 즉 앱스토어가 생기면 기존 모바일 환경과 무엇이 다를까요? 스마트폰 등장과 함께 앱스토어가 앱 제공자에게 만들어 준 가치는 명확합니다. 이전까지 없었던 글로벌 유통망을 만들어 준 것이죠. 여기에다가 단일화된 결제 시스템을 제공해 준 것입니다. 그래서 스마트폰 초기 시절 선두주자들은 모바일 시대 새로운 지배자로 부상하게 되었죠. 하지만 아시다시피 지금은 소규모 회사가 모바일앱 하나로 세상을 흔들 수 있는 시절은 아닙니다. 아무리해도 모바일의 선두주자를 따라잡기 힘듭니다. 그들의 물량공세에 대응할 수도 없구요. 특히 더 어려운 점은 초기 사용자와 데이터의 획득입니다. 바로 콜드 스타트 문제죠. 지금의 앱스토어는 콜드 스타트 문제를 해결해 주진 못합니다. 하지만, 유저의 모든 디지털 자산이 특정 서비스의 소유가 아니라 유저에 의해 다른 서비스에게 제공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신규 모바일 서비스를 런칭하면서 100만 유저의 아이디와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구글, 페이스북과 한번 붙어 볼만 하지 않을까요? 디지털 자산의 통제권이 유저에게 넘어가는 시대의 앱스토어는 콜드 스타트 해소라는 또 엄청난 가치를 제공해 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어내는 동력이 될 수 있고 기존 판을 재편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디지털 자산의 가능성을 얘기했는데, 이 논의를 경제적인 관점으로 격상시켜보면, 디지털 재산권이라는 개념을 얘기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까지 우린 디지털에서의 흔적이나 활동을 재산이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죠. 하지만 앞서 언급한대로 가장 희소한 자원이 유저 관심인 시대에 충분히 재산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을거라 봅니다. 디지털 재산권과 대응되는 것으로 물리적 재산권이 있을 것입니다. 부동산, 동산, 전통 금융 자산 등이 되겠죠. 하지만 이들도 이미 디지털 세상에서 표현되고 거래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디지털 재산권이든 물리적 재산권이든 모두 블록체인에 담기고 개인에 의해 통제되고 거래될 수 있는 세상이 올 수 있습니다. 이것이 주는 궁극적인 가치는 유저가 무대의 주인공이 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디지털 자산을 잘 다룰 수 있는 젊은 세대들에게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만들어 보고 싶은 세상이기도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