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ech? Delivery!
IT 사관학교라 불리던 모 통신사 연구원을 시작으로, 금융기관 그리고 MBC 문화방송까지 어느덧 직장인으로 19년을 살아왔다. 특히 이명박 정권 초기 노동조합 집행부 생활은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었고, 쇼바이벌, 퀴즈마스터, 닥터스 등의 프로그램들과 이별하며 직업인이 아닌 직장인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놓기에 애정이 많았던지라 주변에서 스피치와 관련한 문의가 들어오면, 상대의 열정만 있다면 누구든 가리지 않고 재능기부를 해 왔다.
스피치 학원을 다녀야만 연설, 발표를 잘 하는 것일까?
다년간의 경험을 통한 내 대답은 'NO'이다.
편안하게 글을 읽다 보면, 왜 스피치는 기술이 아니라고 주장하는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며, 이 글들이 회사에서 하는 발표나 스피치가 필요한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준호야 혹시 000 의원님 알아?”
2014년 봄, 당시 19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한 초선의원의 보좌관을 맡고 있던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혹시 괜찮으면 우리 의원님 스피치 좀 봐줄 수 있을까?”
내게 국회는 MBC 파업 때문에 우리의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찾아가는 곳이었지 친근하지 않은 곳이었다.
“괜찮기는 한데, 몇 가지 조건이 있어. 우선 내가 돈을 받으면 할 수가 없고, 일과 중에는 진행할 수가 없어.”
방송에서 제외되어 타 부서에 나가 있던 시절, 나 스스로 단련할 기회로 삼는 셈 치며 국회에서의 재능 기부는 그렇게 우연히 시작되었다.
그렇게 국회에서 처음 만난 분은 초선의 여성 의원이었다. 젊은 시절 오랜 투옥 생활 때문인지 목소리가 상해 있었고, 톤이 높았다. 첫 만남이기도 했지만, 살짝 드는 긴장감은 국회의원실이라는 장소가 주는 압박도 한몫하는 듯했다.
“제가 목소리가 작고 말이 좀 빨라서 국회에서 질의할 때 전달이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혹시 고칠 수 있을까요?”
사실 고민이 컸다. 이미 중년을 넘어선 나이의 목소리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엄밀히 말하면 소리는 바꿀 수 있다. 하지만 소리를 내는 목도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어 그 근육을 단련하고 유지하는 데만도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바쁜 의정 활동을 쪼개 그 노력을 하실 수 있을까? 이후에도 국회에서 의원들 또는 보좌진들과 수업을 하다 보면 무엇을 바꾸고 싶다는 분들은 많았지만, 그에 대한 별도의 노력을 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던 적이 있다. 성인의 스피치 교육은 그런 점에서 더욱 현실적이어야 했다.
그런데 내게 요청을 한 것은 목소리를 바꿔 달라는 것이 아닌 전달이 잘 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었고, 나도 고민해봤던 문제이기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한준호~! 이리 와봐.”
아나운서로 입사한 초창기 나는 아직 평범한 직장인의 티를 벗지 못했다. 그런 내가 주말 아침 뉴스를 마치고 아나운서국에 들어서는 순간 주말 숙직을 하고 있던 김성주 선배가 불러 세우는 게 아닌가. TV에서 보이는 김성주라는 사람의 이미지는 선하고 친근하지만, 사실 성주 선배는 후배들에게는 말수가 적고 엄한 군기반장이었다. 그런 성주 선배가 불러 세운 건 틀림없이 무언가 한소리 들을 것이 분명했다.
“네 선배님.”
“내가 모니터 잘 안 해주는데, 너는 좀 안쓰러워서 몇 가지 알려줄 테니까 의자 가지고 이리와 봐.”
뜻밖이었다. 김성주 선배는 아나운서국에서도 모니터를 철저히 하고, 방송 준비에 남들보다 많은 시간을 쏟는 선배기도 했고, 당시 <화제집중>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에게 인지도가 높은 사람이었는데, 개별 지도라니.
“넌 뉴스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해?”
“팩트요?”
너무도 기본적인 질문이다. 그런데 나는 뉴스를 진행하며 한 번도 그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팩트는 이미 데스크에서 체크하잖아. 전달하는 앵커에게는 전달력이 중요하지.
지금도 나는 스피치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듣는 것’과 ‘전달’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날 그가 이야기했던 전달은 그 의미를 더 명확하게 했다. 즉 뉴스의 ‘전달’은 전달자도 그 내용에 대해 시청자와 함께 궁금해하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자세’를 의미했다. 이러이러한 내용입니다,라고 툭 던지는 것이 아니라, 물건을 손에서 손으로 전달하듯 세심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논지였다.
내가 그날 성주 선배에게서 배운 것은 이후 내 방송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고 그동안 푸석거리던 내 방송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지금도 내가 성주 선배를 높게 사는 이유는 그가 어떤 방송인들보다 프로그램을 이해하려는 노력이나 자신을 갈고닦는데 들이는 시간이 적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의원님 전달을 영어로 바꿔보면 ① transfer ② delivery ③send 이렇게 세 단어로 좁혀볼 수 있는데요. 저희가 해야 할 것은 ‘Delivery’라는 단어에 가깝습니다. Delivery는 상대가 받는 것을 확인하지 못하면 바닥에 툭 떨어지게 되죠. 그래서 상대가 받았는지 확인하고, 그다음 것을 Deliver 하는 것입니다.”
확실히 전달이란 상대에게 잘 전달하려는 자세와 전달 후 상대의 피드백을 잘 들으려는 자세가 무척 중요하다. 그것이 상대를 설득하고 설명해야 하는 의정 활동에 있어서는 내가 배운 전달이 정확했다고 믿었다.
"약자를 위한 정치에는 여당도 야당도 없고 보수도 진보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직 국민을 위해서 생각하고요. 박근혜 대통령도 청와대에서 생각하는 국민과 제가 현장에서 직접 뵙는 국민이 다르다, 이렇게 다른데, 어떻게 하면 같이 살까. 이 생각 좀 합시다. 피를 토한다든가, 목덜미를 문다든가, 이런 날 선 표현들 말고 어떻게 하면 화해하고 함께 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응원하고 격려할 수 있는지, 힘내게 할 수 있는지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끝으로 저의 필리버스터를 끝냅니다. “ (수업 대상 의원님의 필리버스터 연설 중)
사실 나의 국회 첫 수업 대상이었던 당시 초선의원은 바쁜 일정으로 끝까지 수업을 진행할 수 없었지만, 자신의 전달 방법을 바꾸고자 했던 노력 덕분인지 국정원의 권한을 강화하려던 박근혜 정부의 테러방지법 국회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진행했던 필리버스터에서 12시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논리적인 연설을 이어갔다. 마지막 ‘약자를 위한 정치’라고 남긴 말은 지금도 뇌리에 강하게 남았다. ‘정치란 무엇이며, 누구를 위해 행해져야 하는가.’
스피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달'이며, 언어의 전달은 'Delivery'다
언어의 Delivery는 상대에게 잘 전달되었는지 확인해(Listening) 가며 진행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