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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준호 Jun 04. 2018

2화. 눈으로 배우는 스피치

발성연습 편

스피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나는 아직도 이 분야에 대해 잘 안다고 자부하지 못한다. 분명 나는 수줍음이 많고, 사교적이지 못하며, 말 수가 적다. 말을 잘한다는 것과 말을 많이 한다는 것에 혼동이 있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을 잘한다는 의미를 나는 전달을 잘한다로 해석한다. 이것이 내가 수학이라는 이과적 학문을 전공해서가 아니라 말이란 때론 자신에게 칼날이 되어 돌아올 수 있는 것인 만큼 필요한 양을 사용해야 한다고 믿는다.

특히 개인의 스피치 훈련에 있어서 '가갸거겨'식이나 볼펜이나 나무젓가락을 입에 물고 하는 훈련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도 스피치 훈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달력'과 '개성'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접하는 모든 분들이 규격화된 목소리와 스피치보다 자신만의 목소리와 스피치 방법을 찾기를 바란다.



국회에서 만난 사람들_02


평생 말을 하며 살아온 모두는 언어의 전문가다

말하기 수업은 토론을 통해 그간의 습관을 조금 다듬는 과정이다.


국회를 오가며 재능 기부 형태의 수업을 하고 있던 시기, 한 지인으로부터 강원도 출신의 초선 의원님을 소개받게 되었다. 공무원 출신으로 재정 분야 전문가로서 영입된 분이셨는데, 팔과 어깨 등이 운동을 많이 한 듯 단단한 느낌을 주었다. 말투에서는 강원도 출신의 느낌은 많이 없었지만, 발음과 발음 사이 표준어에 섞여버린 사투리 습관이 조금 남아 있었다.


“저희 의원님께서 이론적인 건 강하신데, 워낙 소리가 약하시고 사람들 앞에 나서시면 좀 떨려하시는 것 같아요.”

사실 이런 문제들은 연단에 서는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는 문제이기도 하고, 약간의 기술과 경험만 있으면 쉽게 극복되는 문제라 어려운 과제는 아니었다. 다만, 소리를 키우는 문제는 조금 달랐다.

“의원님, 저와 수업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차 한잔하시며 어려운 것들을 편하게 말씀해 주시면 저도 제 경험을 토대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내 대부분 수업이 그렇지만, '아~ 해보세요.”라거나, “가, 갸, 거, 겨 해보세요.' 식의 수업은 가급적 지양한다. 평생 말을 하며 살아온 모두는 언어의 전문가이다. 다만, 대중 앞에서 구사하는 언어의 방식이 조금 다를 뿐이라 그 차이를 알려주고 그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식을 알려주기에 나는 스피치 수업을 ‘토론’이라고 부른다. 


수업을 진행하며 자신의 소리 찾기를 할 때면 같이 참여하는 분들에게 소리가 보이냐는 질문을 할 때가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서너 번의 수업을 진행했을 때 대부분 사람은 소리가 보인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겠다는 답변을 한다. 소리는 분명 물리력을 갖고 있으며, 중량도 갖고 있다고 믿게 된다. 그 느낌을 알게 되면 자신의 소리를 입의 어느 위치에서 찾아야 하는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대중 앞에 설 때의 언어는 다른 언어라기보다 방식이 조금 다를 뿐이다.

이제 그 차이를 느끼고, 방식을 알아가 보자.



녹음한 내 목소리가 낯설게 느껴질 때.

자기 목소리를 찾고 싶으신가요?


“아나운서님! 궁금한 게 있는데요. 제가 국회 질의를 한 것을 영상으로 돌려볼 때면 목소리가 너무 어색해요. 원래 그런가요?” 순간 웃음이 나왔다. 이 고민은 내가 방송사에 입사해 가장 많이 했던 고민이기 때문이다.  


“의원님, 보통 남성들은 자신의 소리를 몸에서 울리는 소리로 듣다 보니 실제 입 밖으로 나와 귀를 타고 들어가는 소리를 잘 듣지 못합니다. 의원님 목소리를 들어보려 노력해 보시면 소리가 자연히 입 앞으로 빠지게 됩니다. 


입사 2년 차이던 시절, 나 역시 마이크 목소리와 육성 차이로 고민이 많았다. 선배들은 소리가 입 앞으로 빠져야 한다고 하는데, 도무지 방법을 몰라서 볼펜도 물어보고, 소리도 많이 질러보았다. 그때 한 선배가 건넨 '연극인들을 위한 소리 훈련'이라는 얇고 오래된 책을 통해 소리에 대한 작은 해답을 얻었다. 소리 훈련을 할 때 소리를 보려고 노력하고, 내 소리를 귀로 들으려 애쓴 것이다.


그래도 실천을 해 보려는 분들에게 요가의 ‘고양이 자세로 읽기’를 권하고 싶다. 이 자세로 읽을거리를 바닥에 놓고 소리 내 읽되, 소리는 바닥을 살짝 칠 정도의 느낌으로 던지는 연습을 꾸준히 몇 주만 해본다면 누구든 자신의 소리가 보이게 되리라 확신한다. (그림출처 : http://notefolio.net/dmeryungb/20798 )


자신의 소리를 보고 싶은 분은 요가의 고양이 자세로 읽기를 권한다. 이때 소리는 바닥을 살짝 칠 정도로 던진다는 느낌으로 낭독하면 된다.



대화할 때 시선처리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서로 부담이 가지 않는 시선처리 노하우가 있을까?


“의원님, 의원님께서는 누군가와 단둘이 마주 보고 있을 때 상대의 어디를 보십니까?”

“저요? 음… 눈을 보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이 질문에 내가 만난 대부분 사람은 ‘눈’이라고 답을 한다. 내 생각이 절대적이라 할 수 없지만, 상대와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를 하는 대상은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연인 사이이거나, (그것도 아직 불이 꺼지지 않은 연인이지 않을까 싶다) 싸워야 하는 상대에게 기가 꺾이지 않을 때 정도이지 않을까 싶다.


“의원님, 저와 서로 눈을 바라보며 대화를 한번 해 보시죠.”

순간 방안에 웃음이 번졌다.

“굉장히 어색하네요.”

서로가 눈을 바라보며 대화를 시작하기도 전에 눈이 마주치는 순간 뻘쭘하게 된 것이다.


눈을 바라보며 하는 대화는 사실 난이도가 높은 대화의 기술이다. 특히 눈은 대화에서 목소리보다 더 굉장한 무기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각을 표정이나 말에 실을 때보다 눈에 실린 상대의 생각이 읽힐 때 가끔 전율이 일기도 하니 말이다.


“오늘 무대에 올라와 인터뷰하시는 분들에게서 어느 정도의 이야기를 끌어내야 할까요?” 

백혈병 환우들을 돕는 재단의 홍보대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어려운 성인 백혈병을 이긴 환우 가족들과 환우들이 초청되어 무대에 올랐다.

그분들과 인터뷰를 하기 전 재단 측에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이분들을 왜 무대 위에 모셨는지에 대한 목적성 때문이었다. 완치 사례로 다른 분들에게 힘을 주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이분들의 이야기를 통해 더 많은 골수 기증 환자들의 기증을 유도하려는 것인지는 인터뷰를 하기 전 진행자가 반드시 생각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재단 측에서 이분들을 초청한 것은 기증예정자들에게 기증의 중요성을 공유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이 겪은 고통은 치유 기간이 길어서 힘들었던 것보다 병을 앓고 있는 자신의 가족에게 맞는 골수가 찾아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기인했다. 결국, 나는 그 짧은 인터뷰 시간 동안 환우나 환우 가족으로부터 그 감정이 압축적으로 올라오도록 할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를 이어가던 순간 백혈병을 앓았던 남편과 함께 올라온 젊은 아내의 모습이 보였고, 눈이 마주쳤다. “000 씨 아내분,”하고 말을 건넨 나는 그 아내 분의 눈을 잠시 바라보다 수 초간 말을 멈췄다. 그리고 이내 “많이 힘드셨죠?”라며 진심어린 위로의 말을 건넸다.


내 질문은 사실 질문이 아닌 공감이었던 것 같다. 그 질문에 젊은 아내분은 한참을 눈물을 흘리다 이내 남편을 끌어안았다. 그 젊은 아내를 바라보던 내 눈빛에는 내 가족사로 인한 동질감이 묻어 있었다. 아버지의 직업으로 인해 우리 가족은 중학교 전까지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했고, 대학 시절 어머니마저 집을 나가셨다. 다시 돌아오신 어머니는 2013년 여름, 나와 함께 있던 중에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가족들과 인사도 없이 세상을 떠나셨다. 나는 그 젊은 아내의 모습에서 잠시 가족을 잃는 슬픔에 공감했었고, 그 공감은 내 시선과 잠시의 침묵을 통해 전달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의원님! 대화하려는 상대와 마주할 때는 상대의 인중을 바라보십시오. 그렇다고 상대의 인중을 너무 뚫어지라 보게 되면 뭐가 묻었나 할 수 있으니, 인중을 바라보되 그 방향으로 시선만 던지셔야지 뚫어지라 보시지는 마세요.”


나는 상대를 눈으로 설득하는 중요한 단계가 아닌 일반적인 대화에서는 인중으로 시선을 던지기만 해도 상대가 본인의 이야기에 집중하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여러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그리고 그렇게 시선을 던지는 것이 서로에게 부담스럽지 않다고 생각한다.


눈을 바라보며 하는 대화는 난이도가 높은 대화의 기술이다. 대화하려는 상대와 마주할 때는 상대의 인중을 바라보되 그 방향으로 시선만 던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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