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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준호 Jun 06. 2018

3화. 함께 써 본 내 딸의 첫 이력서

면접 편, 예상질문은 자신만이 알고 있다.

“아빠 저 꿈이 바뀌었어요.” 남들보다 조금 이른 나이에 결혼한 나에게는 세 명의 아이가 있다. 1월생인 올해 고등학교 1학년의 딸, 2월생인 중학교 2학년인 아들 그리고 3월생의 초등학교 2학년 막내아들이다. 그중 큰딸이 중학교 3학년에 진학하던 시기, 평소 디즈니에서 일하고 싶다던 자신의 꿈이 바뀌었다며, 인권운동가로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딸아이가 인권운동을 한다는 말이 그리 달갑지는 않았지만, 40대 중반에도 못 찾고 있는 꿈이 언제든 바뀔 수 있을 것이라는 걸 잘 알기에 쿨(Cool)한 아빠가 되어 보기로 했다. “아빠는 네가 좋아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찬성이야. 우선 거기에 맞게 진로를 짜 보자” 그렇게 큰아이와 나는 집 근처에 있는 국제고등학교 진학을 목표로 삼게 되었다.


“자기소개서, 교사추천서, 면접..  와~ 여기 준비할 것이 하나 둘이 아니네”, “아빠 우리 학교에서 거기 준비하는 아이들은 전부 학원에 다닌데요.” 막상 학교 진학을 준비하려니 이제 몇 개월 남지 않은 기간에 해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았고, 이럴 바에는 학원을 보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유혹도 잠시나마 있었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둘 다 어렵게 자란 탓인지 사교육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있었고, 공부는 집에서 하는 것이라는 우리만의 고집 같은 것이 있었다. 특히 글을 쓰고 면접을 보는 것이라면 아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내가 직접 지도하는 것이 맞는다는 생각에 아이에게는 걱정하지 말라는 큰소리를 치곤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특목고 진학 관련 내용을 이틀에 걸쳐 꼼꼼하게 살펴봤다. “다혜야. 어차피 자기소개서든 면접이든 네 이야기이니까 편하게 준비하자. 시간은 충분해! 다른 아이들은 학원에서 준비하지만, 너는 MBC 아나운서와 준비하니 네가 더 유리한 거 아냐?” 우스개 소리였지만, 왠지 할 수 있을 것이란 자신도 있었다.



자기만의 자기소개서 어떻게 준비할 수 있을까요?



“다혜~ 글은 써봤어?” 입학요강이 공지되고 난 후 딸과 나 사이에는 약간의 긴장 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아니요” 딸아이 대답이 조금 퉁명스러웠다. “학교 공부도 정신없어서 글 쓸 시간이 많지 않아요. 주말에나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자기소개서 2,000자 내에 자신이 왜 이 학교에 지원하려는 지와 자신이 얼마나 이 학교에 알맞은 사람인지를 써야 하는데서 오는 부담감에 고민은 많지만 글로 옮기질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다혜야. 우선 질문지를 만들자. ‘왜?’ 로 시작하는 질문지인데, 왜 이 학교를 선택하게 되었는지, 왜 그런 사람이 되려는지, 왜 그런 봉사활동을 해 왔는지, 왜 그런 책들을 읽게 되었는지 너는 한마디로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같은...”


대학 특강을 나가게 될 때면 학생들에게 물어보는 질문이 하나 있다. “20여 년의 시간을 살아온 여러분 인생에 혹시 ‘타이틀(Title)’을 달아볼 수 있습니까?” 여기에 대답할 수 있는 학생이 거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것이 누군가의 이론이어도, 또는 좋아했던 책의 구절이어도 좋습니다. 오늘 이후 여러분 인생을 돌아보며 ‘타이틀’을 하나 만들어 보세요” 사실 이 방법은 대학시절 몇 번의 서류전형을 떨어져 보다 문득 ‘나는 왜 아무것도 아닌 사람처럼 느껴지는 것인가?’라는 자책에서 시작되었었다. 그리고 새로운 무엇인가를 시작할 때 버릇처럼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시작하려는 무언가에 제목을 달곤 했다. 지금의 내 인생에 단 제목이 ‘비긴 어게인(Begin Again)’인 것처럼.


딸에게 질문지를 만들어보라는 제안을 하고 3주 가까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아빠 제가 너무 길게 쓴 것 같아요.” 평소 신중한 성격 때문인지 아이가 내민 원고의 양이 제법 되었다. “다혜야! 글쓰기에는 주제를 풀며 길게 쓰는 글이 있고, 긴 이야기를 좁혀가는 글이 있는데, 지금 우리가 할 작업은 너의 긴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줄이는 거야” 대학생들과 수업을 하다 보면 모든 시험에서 자기소개서와 면접을 따로 준비하려는 경향이 보인다. 하지만, 내가 보았던 수많은 시험들에서도 늘 빠지지 않는 질문은 ‘우리 회사에 왜 지원하게 되었습니까?’  ‘왜 우리가 당신을 선택해야 하는지 설명해 보세요’와 같은 기본 질의였다. 그런데, 이런 기본 질문에 대다수 수험생들이 비슷한 대답을 한다는 점이 늘 아쉽다. 시험 준비는 자신에게 질문을 시작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이런 관점에서 자기소개서 준비는 시험의 시작이자 끝인 것이다.



[다혜의 지원서 질문지, 나는 왜 국제 인권가가 되려 하는가? 중]

* 자기소개서 준비는 시험의 시작이자 끝이다. 자신에 대한 질문지를 만들어보자.



질문지에 답을 달아보았지만,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딸의 특목고 입학을 준비하며 느낀 점은 회사의 입사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집중할 수 있는 자기소개서와 그 자기소개서에 기반한 면접 준비. 말로 하면 너무 깔끔하지 않은가? 그런데, 문제는 집중할 수 있는 자기소개서다. 아나운서 시절, 신입 응시자들의 입사원서를 검토하다 보면 자신을 잘 담아내는 자기소개서를 만나기가 쉽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변별력이 떨어져서 자기소개서가 중요하게 사용되지 않겠네요?’라고 질문할 수 있겠지만, 반대로 변별력 있는 자기소개서는 우선 선별해 놓을 수 있다고 답변할 수 있겠다.


딸아이의 질문지들이 완성되고, 질문지에 따른 답변들이 작성되어갈 때 가장 고심한 부분은 자기소개서의 첫인상이었다. 앞서 자기 인생에 ‘타이틀(Title)’을 달아보라는 조언은 이런 점에서 유용하다. 자신의 인생에 달린 타이틀로 짧은 자기소개서 안에서 이목을 끄는 첫인상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다혜가 처음 적어 본 자기소개서]

[다혜의 지원동기 초안 중]


“다혜야 네 질문에 대해 잘 풀어쓴 것 같은데, 나열식이라 한눈에 확~ 들어오는 느낌이 없거든? 너의 학습 특징은 한마디로 뭐라고 생각하니?” 글을 쓰는 사람들은 한마디를 긴 글로 풀어내지만, 우리와 같이 말을 하는 사람들은 긴 글에서 한마디를 찾아내기 위해 훈련을 해온다. 그런 점에서 나는 딸아이가 쓴 긴 글에서 본인의 특징을 한마디로 끌어내고 싶었다. “저는 늘 잘하는 데까지 시간이 걸렸던 것 같아요. 그래도 게으르지 않게 꾸준히 해가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었어요.” 


나는 딸아이의 이야기를 좀 더 명확한 한마디로 끌어내고 싶었기에 이 아이가 평소 즐겨 읽던 책들에서 답을 찾고 싶어 졌다. “너는 평소에 철학책을 많이 읽었다고 했는데, 혹시 철학자들 중에 이렇게 느리지만, 꾸준히 하면 성공한다는 말을 한 사람이나 유명한 격언 같은 것은 없을까?” 순간 딸은 책 제목으로도 쓰였던 괴테의 말을 생각해냈다. ‘삶은 속도가 아닌 방향이다.’ 이런 질문과 대답을 통해 우리는 자기소개서의 ‘타이틀’을 찾은 것이다.



[다혜의 지원동기 완성본]


* 자기소개서에 ‘타이틀(Title)’을 달아보자, 짧은 자기소개서에도 첫인상이 존재한다.



면접은 어떻게 하면 잘 볼 수 있을까요?

예상 질문은 만들어야 할까요?


“아빠 이제 면접은 어떻게 준비하죠?” 사립으로 설립된 1개교를 포함해 전국에 국제고등학교는 총 7개가 있고, 전국단위 모집이라 실제 경쟁률은 2:1 정도였다. 서류에서 2 배수를 합격시키기 때문에 자기소개서를 포함한 서류 불합격은 거의 없으니 당락은 보통 면접에 달려있다. “다혜야, 너무 조급하게 생각할 것 없어. 이미 생활기록부를 중심으로 자기소개서 쓰면서 우리가 질문지를 만들고 답을 달았으니 이제 네가 읽었던 책들 리스트만 작성하고, 그중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 것들만 확인하면 될 거야” 면접에 대해서는 이 책의 다른 파트에서 나의 경험담을 다양하게 이야기하겠지만, 내 지론은 면접에 예상 질문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지원하는 곳과 나에 대해 질문을 던져보고 답을 해봤다면, 오히려 머리를 비우고 자기소개서에 생각 없이 쓴 부분은 없는지 살펴보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면접관으로 들어갔던 두 번의 면접에서 느낀 것이지만, 처음 만난 사람에 대해 호기심을 느끼며 할 수 있는 질문보다 그 사람이 작성한 자기소개서와 이력사항들에 근거할 수밖에 없으니 결국 예상 질문은 자기 자신만이 알고 있는 것이다.


“아빠 어디 계세요?” 아이를 홀로 면접장인 학교로 들여보내고 인근 커피숍에서 기다리길 두어 시간, 면접을 마친 큰아이의 전화가 무척 반가웠다. 아니 솔직히 안에서 어떤 질문과 대답이 오고 갔는지, 대답은 잘 했는지를 확인해 보고 싶었고, 우리가 했던 준비가 옳았는지 알고 싶었다. “오늘 면접은 잘 본 것 같아?” 약간 기분 좋게 상기되어 있는 아이의 얼굴을 보니 내심 기대가 되었다. “아빠, 정말 준비한 것에서 그대로 나온 건 하나도 없고요. 전부 응용해서 대답해야 했는데, 질문을 듣고 조금 생각하니 대답하는 게 어렵진 않았어요”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이 학원 선생님과 수백 개의 질문을 준비하고 답을 달아본다고 한다. 그리고 그 양고 들이는 시간, 비용이 지나치다고 느껴져서이지 방법이 틀리다고 볼 순 없다. 그럼에도, 면접의 기본은 첫째는 나에 대한 질문에 충실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면접장에 있는 모든 이의 말을 잘 듣는 것이 전부다. 대부분 답변의 아이디어는 그 안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면접장에서 준비한 질문이 안 나온다고 초조해할 필요는 없다. 당신을 시험하는 자리에 예상 질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답은 늘 스스로에게 있다. 





요즘은 가끔 새벽 1시 무렵 딸아이에게서 전화가 오곤 한다. “아직도 안 자고 있어?” “과제가 너무 많아요” 기운 빠진 딸아이의 목소리를 들을 때면, 이렇게 준비해 들어간 학교가 원망스럽기도 하고, 특히나 주말에 면회라도 마치고 돌아올 때면 아직은 아이티를 벗지 못한 딸의 얼굴이 떠올라 가끔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앞으로 커가며 겪어야 할 많은 시험이란 관문 중에 하나를 성공해 본 경험은 분명 아이에게는 큰 자산이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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