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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준호 Jun 07. 2018

4화. 추락한 조종사의 꿈

입사지원서 편, 내 인생에 타이틀을 달아보자.


“혹시 질문 있으신가요?” 모교에서 진행했던 각 진로분야별 선배들의 특강시간에 언론사에 근무한다는 이유로 엉겁결에 초대를 받아 후배들과의 대화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신입생을 위한 캠퍼스가 별도로 마련되어 1학년들은 모두 기숙사 생활을 하도록 규정이 바뀌어서인지 늦은 저녁시간인데도 학생들이 많이 모였고, 강의를 듣는 모습도 여느 학교 강의 때와 느낌이 달랐다. ’이런 것이 뭐라도 하나 더 알려주고 싶은 강의라는 것이구나‘ 하고 느꼈던 날이었다. 유독 질문이 많았던 그 날 강의를 마치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계단식 강의실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 앉아있던 남학생이 강의 내내 눈에 들어왔었는데, 바로 그 학생이었다. “선배님께서는 꿈을 이루셨다고 생각하십니까?” 뜨끔했다. 좋은 회사들을 다닌 것도 확실하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이력도 쌓은 것임에는 틀림없는데, 꿈을 이루었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목표를 이룬 적은 많았지만, 내 꿈을 이룬 적은 없었다'


대학시절 내 꿈은 대형항공사의 조종훈련생이 되어 파일럿이 되는 것이었다. 고학을 하며 매 학기 서너 개의 과외와 매달 고민하는 학비와 하숙비 그리고 생활비에 쪼들려 친구들에게 맥주 한 잔 살 수 없었던 내 형편은 결혼이나 여유 있는 삶이 목표가 아닌 독신으로 살며 세계를 여행할 수 있는 조종사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학 3학년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준비한 조종훈련생 시험에 실패했고, 기회가 많지 않았던 시험 실패에 대한 충격과 좌절로 학교를 휴학한 뒤 고시원으로 들어가 모든 것을 단절하고 살던 과거가 있다. 솔직히 조종사를 제외한 다른 직업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 막막했기 때문이다. (사진출처 : Jetphopos.net)



합격하기 위한 스펙은 어떻게 쌓아야 할까?

스펙은 정말 필요한 것일까?


“준호야, 나랑 회사 시험 같이 보러 다니자”

잘 자라지 않는 수염도 길러보고, 컵라면과 햇반으로 초췌한 삶을 살며 패배자 코스프레를 하고 살던 어느 날 고시원 옆방에 살던 동갑내기 대학원생 친구가 원서 몇 장을 들고 방문을 두드렸다. 단 한 번도 일반 회사에 들어가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없었고, 유학까지 다녀온 그 친구와 달리 나는 토익점수조차 없었다. “욱상아 나 조종훈련생 준비하느라 토익을 본 적이 없어” “괜찮아, 그냥 한 번 보는 거지, 너 아직 한 학기 더 남았으니까 모자란 건 다음에 준비하면 되잖아” 이런 걸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표현하는 것인지 대학시절 내 취업의 시작은 꿈의 실패 뒤에 찾아왔다.    


매일 PC방에서 ‘인크루트’ 라는 취업정보 사이트를 뒤지고, 입사원서라는 것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막막한 것은 나를 어떻게 소개해야 하는지였다. 첫 원서는 LG그룹 계열의 한 금융회사였는데, 채워야 하는 칸들을 채울 수가 없었다. 자격증도 없었고, 영어점수도 없었다. 학교를 다니며 한 활동은 과외가 전부였던 내가 내세울만 한 것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결국 서류전형에서 보기 좋게 떨어졌다. 그 해는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조종훈련생 시험에 떨어지고, 첫 서류전형이라는 것에서도 떨어졌다. 곧 졸업은 다가오는데 세상이 끝난 것처럼 막막했다. ‘어떻게 하지?’


하루하루가 처참해도 어떻게 그 당시처럼 처참할 수 있었을지 지금 생각해도 암담했던 나날이었다. 봄은 봄이었는데, 내 마음에는 봄이 오지 않고 있었다.


“한준호씨?, 00화재입니다. 서류합격 축하드립니다.” 지금 생각하면 서류합격이라며 전화오는 것이 이상할 만도 한데, 당시는 합격이라는 단어에 목이 말라 있던터라 정신이 없었다. “네 고맙습니다.” 

그렇게 들뜬 마음을 안고 면접을 보러 간 곳은 잠실에 있는 한 빌딩이었다. 분명히 00화재로 면접을 보러 간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생각한 것보다 규모가 너무 작았다. 면접까지 쉽게 합격을 하고 연수를 받던 중 보험설계사 시험을 보고 나서야 내가 보험설계사를 뽑는 시험에 합격한 것을 알았던 것이다. 요즘 같이 인터넷이 발달한 시절이었으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지만, 연수를 받던 우리 대부분은 우리가 새로 생긴 금융업종 연수를 받는다고만 생각했었다. 특히 조종훈련생만 준비하던 나는 취업정보 문외한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00화재에 합격한 이후 내게 큰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합격을 통해 나를 증명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 것이다. 지금도 우리 아이들이나 학생들과 수업을 할 때면 작은 성공을 먼저 해 보라는 조언을 하곤 하는데, 내 스펙이 크게 달라진 건 없었지만 내 안에는 합격을 해 보았다는 느낌이 생겼던 것이다. (사진 : 드라마 신입사원 中, 출처 : iMBC)


* 100점도 받아본 사람이 받는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작은 성공을 통해 자신감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입사 원서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모 보험사 일을 겪고 나니 본격적으로 대기업들의 입사시험이 시작되었다. 당장 내 스펙을 업그레이드 시킬 수는 없는 일이었고, 다른 친구들과는 차별점을 두어야 했다. 이 두 가지를 해결할 방법은 결국 원서에서 튀는 수 밖에는 없었다. 그 회사가 나를 뽑아야 할 이유를 내가 만들어 줘야 했던 것이다.


당시 내가 만들었던 것은 지금으로 따지면 SWOT분석 같은 것인데, 내가 살아온 인생에서 내세울 만한 것과 입사해서 만들어 가야 할 것들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내가 내세울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 학비를 벌었던 것’ ‘대학시절 장사했던 경험’ ‘신문배급소에서 숙식하며 일했던 경험’ 등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데 두려움이 없고 늘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왔다는 점이었다. 이런 정리들을 해가다 어느 날 자기소개서에 ‘한준호’라는 사람 앞에 붙일 타이틀을 하나 만들어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신도 포기한 불모지의 삶, 그 삶에서 꾸여꾸역 농사짓는 사람’ 그것이 나였다.


그 이후 내 이력서는 ‘저는~’으로 시작하던 일반적인 양식을 버리고 첫 구절에서 나를 알 수 있도록 바꾸었다. 가끔은 시의 구절을 인용하기도 했고, 에세이 형식을 빌려 화두를 띄우기도 했다. ‘없는 영어점수와 스펙을 과연 이력서로 뚫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은 이렇게 바꾼 첫 이력서부터 결과를 가져오기 시작했다.


[LG-EDS 서류전형 합격 메일]


[삼성 SDS 서류전형 합격 메일]


 

연이어 도착하는 서류 전형 합격메일, 그야말로 진검승부를 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은 느낌이었다.


그 많은 이력서를 다 읽고 판단하는 경우는 없다. 자신을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도록 자신 인생에 ‘타이틀(Title)’을 달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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