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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준호 Jun 10. 2018

5화. 싸움의 기술

면접 편_02, 독서의 기술 

네 안의 두려움, 맞아본 자의 두려움 그걸 깨 부숴야 해               -싸움의 기술 중- 

초등학교 시절 7번이나 전학을 다녔던 나는 늘 왕따가 두려웠다. 사투리를 못쓴다고 받는 차별, 운동을 여자들보다 못한다고 받는 무시 등. 아버지를 따라 경기도와 전라도 등을 오가며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의 이사와 1년도 채우지 못하고 다니는 전학은 지금도 혼자 식당을 가거나 혼자 차를 마시러 다니는 혼자 놀기의 근간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초등학교를 넘어서니 중학교에서는 왕따와 폭력이 함께 따라왔다. 소심했던 나는 힘으로야 밀리지 않았겠지만, 싸우고 나서 선생님께 혼나야 하는 일이나 부모님을 실망시키는 일이 더 싫었던 것 같다. 결국 싸움은 뒤를 생각하지 않을 때야 할 수 있다는 것을 고등학교에 진학해 알게 되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기’를 겨루는 면접에서의 언어가 그렇다. 상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취하는 자세는 이미 싸움을 할 자세가 아니다. 면접에서 붙으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자기를 다 놔버리고 면접관들이 원할 것이라고 믿는 답을 내놓는 것은 결코 현명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장담할 순 없지만, 지금까지 수많은 면접을 치러 본 입장에서 면접을 보기 전 거울을 보며 나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이 하나 있는데 ‘배 째라’이다. ‘어차피 떨어지면 다시는 얼굴 볼 사람들도 아니니 잘 보이려 하지 말고, 떨지 말자. 배 째라 배 째라 배 째라.’  늘 이런 주문을 스스로에게 걸고 면접에 임하곤 했다.


SK 집단면접, 희망이란 무엇입니까?    


“오늘 면접은 6명씩 진행합니다. 호명하는 분들은 대기 좌석으로 이동해 주세요” 40대 중반이 되고 나니 드는 생각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늘 몰려다닌다는 것이다. 대학 4학년, 그렇게 힘들던 이력서 통과라는 과제를 풀고 나니 면접 풍년이었다. 지원한 국내 대기업들 대부분 서류와 필기시험을 통과하고 면접에까지 이른 것이다. 그런데 그중 가장 먼저 면접을 보게 된 곳은 당시 학생들이 선망하던 SK계열이었는데, 다른 회사들과 다르게 중간 면접으로 집단면접을 진행했다.    


“모두들 반갑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에게 주제를 하나 드릴 텐데요. 그 주제에 대해 서로 토론을 하시고, 저희는 중간 개입 없이 토론을 지켜보며 평가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께 드릴 주제는 ‘희망’입니다.” 처음 보는 다른 다섯 명의 학생들과 면접을 보기 위해 들어간 방은 작은 회의실 같았다. 회의실 앞쪽에는 책상 세 개를 이어 붙여 다섯 분의 평가관이 계셨고, 그중 한 분이 사회를 맡아 익숙하고 빠르게 주제를 던져주었다. 거의 자리에 앉자마자 진행되다 보니 ‘희망’이란 익숙한 단어의 주제가 막막했던 것 같다.


“오늘 같이 면접을 보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는 한준호라고 합니다. 희망이라는 주제는 익숙하지만 사람들에 따라 갖고 있는 생각이 다를 것이라 생각합니다. 판도라 상자 속에 남겨진 이 희망이라는 주제에 대해 같이 이야기해 보시죠. 많지 않은 시간이니 혹시 먼저 이야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무엇인가 말은 해야 했고, 선점하고 싶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사회를 보고 말았다. 그리고 제일 눈에 띄었던 내 맞은편 학생에게 질문을 던져버린 것이다. 무척 당황한 그 친구는 주저리주저리 무엇인가 말하며 나를 원망하는 눈빛이었다. 일이 그렇게 되니 모두 바빠진 듯 보였다. 순서가 처음 말한 학생 오른쪽으로 돌지 왼쪽으로 돌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를 지목할지, 분위기는 이상하게 내게 집중되는 듯싶었다. “네 말씀 잘 들었습니다. 혹시 다른 의견이 없으시면 한 분씩 돌아가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데요. 오른쪽에 계신 분부터 해도 될까요?” 면접을 시작하기 전까지도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한 사람씩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나는 그 사람의 이야기를 정리해주며 면접을 이끌어갔다.


그리곤 마지막 사람의 이야기가 끝나자 마자 그의 말을 받아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저자이자 미래학자였던 ‘아서 C. 클라크’의 작품 ‘유년기의 끝’이라는 작품을 통해 ‘희망’에 대한 토론을 정리했다. "많은 분들이 말씀하시는 희망에 대해 오늘 유익한 토론을 진행했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잘 아시는 수학자이자 미래학자였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라는 작품의 저자였던 아서C.클라크는 '유년기의 끝' 이라는 작품을 통해....."


지금도 학생들을 가르치거나 특강을 진행할 때 독서의 중요성을 들며 자주 드는 예인데, 독서는 지식을 채워주는 역할로서도 중요하지만, 스피치 영역에서는 어떠한 주제에도 인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내가 인용했던 ‘유년기의 끝’이라는 작품은 남자들이라면 친숙한 ‘스타크래프트’ 속 캐릭터와 이름이 같은 ‘오버르드’라는 거대 비행접시들이 지구 전역을 덮으며 시작된다. 특히 이 장면은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에서 차용하고 있기도 한데, 처음에는 이 존재들에 대한 두려움이 컸지만, 오버로드들로 인해 지구에서 기근, 전쟁 등이 사라지는 평화의 시대 속에서 마지막 세대인 새로운 인류가 태어나고, 이 세대들로 인해 초래되는 인류의 마지막 모습을 한 기자가 지켜보며 겪게 되는 갈등을 다루고 있다. 그렇다 보니 책이 정확하게 ‘희망’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 집단면접에 참여했던 여섯 명 중 나를 포함해 두 사람이 합격을 했고, 이후 최종 면접을 통해 둘 다 SK 계열사에 최종 합격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두 사람은 데이콤 계열회사 신입사원 연수에서 만나게 되었다. 지나고 나니 그 친구 이름이 ‘김성주’로 방송인 ‘김성주’ 선배와 동명이었다.


독서는 지식을 채워주는 역할로서도 중요하지만, 스피치 영역에서는 어떠한 주제에도 인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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