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재계 5위였던 거대 그룹의 몰락과 생존의 기록
90년대 말, 2000년대 초를 기억하는 분들이라면 '대구동양오리온스'라는 농구팀을 떠올릴 수 있을 겁니다. 매직핸드라 불리던 김승현 선수의 화려한 플레이와 함께 KBL 최고의 인기팀이었죠.
그런데 이 농구팀의 이름에 숨겨진 이야기를 아시나요?
농구단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가 잘 아는 초코파이 회사 오리온은 원래 동양그룹과 한 식구였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현재 오리온그룹은 한때 재계 5위까지 올랐던 거대 동양그룹의 유일한 유산이기도 합니다.
도대체 동양그룹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 함흥에서 온 소년, 제국을 세우다
이 이야기는 1916년 함경남도의 작은 농가에서 시작됩니다.
이양구. 부친을 일찍 여읜 이 소년은 15세에 학교 대신 일본인이 운영하는 식료품 도매상으로 향했습니다. 남들이 책상에 앉아 공부할 나이에 그는 '정직과 신용'이라는 상도를 몸으로 배우고 있었죠.
1947년 월남 후, 그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습니다. 바로 '외상거래제'.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이 방법으로 과자 판매업에서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1956년, 그는 적산기업 풍국제과를 인수하며 본격적인 사업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이듬해에는 모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삼척시멘트를 사들였죠. "시멘트는 앞으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것"이라는 그의 예측은 적중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재건 붐을 타고 동양시멘트는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고, 1960년대에는 재계 순위 10위권에 진입했습니다. 1970-80년대 부동산 활황기에는 무려 재계 5위까지 올라가며 전성기를 맞았죠.
## 사위들에게 물려준 제국
이양구 창업주에게는 아들이 없었습니다. 대신 두 딸이 있었고, 그는 사위들에게 자신의 제국을 물려주기로 결심했습니다.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결정이었죠.
첫째 사위 현재현은 시멘트와 금융을 맡았고, 둘째 사위 담철곤은 제과와 엔터테인먼트를 담당했습니다. 1984년부터 현재현 주도로 금융업에 본격 진출하기 시작했죠. 일국증권(동양증권), 동양생명, 동양카드...
하나둘 금융계열사를 늘려가며 동양그룹은 종합금융그룹으로 변모했습니다. 2012년 기준 그룹 매출의 75%가 금융 부문에서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 첫 번째 경고: 1970년의 눈물
하지만 성공 가도에도 위기는 있었습니다.
1969년 시멘트 공급과잉으로 동양시멘트는 3년 연속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은행 대출이 막히자 이양구 창업주는 사채에 손을 댔고, 어느덧 30억원(현재가치 560억원)의 빚더미에 앉게 되었죠.
1971년 9월 23일, 55세의 이양구는 일기장에 이렇게 썼습니다.
*"사랑하는 딸들아! 이 무거운 십자가를 너희에게 넘기지 않기 위해 기도드린다."*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채권자들을 피해 숨어 지내던 그에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1972년 8월 2일, 박정희 대통령이 '8·3 사채 동결 조치'를 발표한 것입니다.
이때 이양구는 깨달았어야 했습니다. 빚으로 위기를 넘기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 돌이킬 수 없는 실수들
하지만 그룹은 같은 실수를 반복했습니다.
1980-90년대 현재현 회장은 자금력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무리하게 금융업으로 확장했습니다. 차입으로 출자금을 마련하고, 순환출자 구조를 만들어가며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는 제국을 건설했죠.
그리고 2002년, 결정적인 실수가 일어납니다.
현재현 회장은 동양시멘트를 둘로 쪼개면서 페이퍼컴퍼니인 (주)동양에 1조원의 부채를 떠넘겼습니다. 연 이자만 1000억원에 달하는 이 시한폭탄은 그룹 전체를 서서히 좀먹기 시작했습니다.
"계열사 지분을 일부 팔고 배당금을 받으면 이자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그의 계산은 너무나 안이했습니다.
## 2008년, 모든 것이 무너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동양그룹의 부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 부채 비율 1,200%
- 연 이자 부담 2,000억원
- 총 부채 3조원
은행들이 등을 돌리자 동양은 마지막 수단에 매달렸습니다. 동양증권을 통해 연 8% 고금리 회사채를 개인투자자들에게 판매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정보에 취약한 일반인들, 심지어 취약계층까지도 동양의 '돌려막기' 희생양이 되었죠. 2013년 9월까지 5년간 이런 식으로 연명했지만, 더 이상은 버틸 수 없었습니다.
## 뿔뿔이 흩어진 제국의 조각들
2013년 동양그룹이 무너지면서 계열사들은 모두 다른 그룹에 매각되었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잘 아는 브랜드들이지만, 원래는 모두 동양그룹 소속이었죠.
*SK매직 - 원래 '동양매직'이었습니다. 2016년 SK네트웍스가 6,100억원에 인수해 지금의 SK매직이 되었죠.
*롯데카드 - 2002년 '동양카드'에서 롯데그룹으로 넘어갔습니다.
*삼표시멘트 - 동양그룹의 뿌리였던 '동양시멘트'는 2015년 삼표그룹에 7,943억원에 매각되었습니다.
*바이더웨이(편의점) - '동양마트'가 운영했던 편의점 브랜드로, 2010년 롯데그룹에 매각되어 지금은 세븐일레븐과 합병되었습니다.
*포스파워(발전소)- '동양파워'가 2014년 포스코에너지에 4,311억원에 매각되었습니다.
한때 하나의 거대한 그룹이었던 동양의 자산들이 이렇게 각각 다른 주인을 찾아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매각 소동을 피할 수 있었던 회사가 하나 있었으니...
## 미리 떠난 현명한 사위
2001년, 담철곤은 중요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동양제과 등 16개 계열사를 이끌고 동양그룹에서 분가한 것입니다. 새로운 그룹의 이름은 '오리온'이었죠.
2003년 '대구 동양 오리온스'가 '대구 오리온스'로 팀명을 바꾼 것도 바로 이 시점이었습니다. 농구팀 이름 하나가 그룹 분리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셈이었죠.
2013년, 위기에 몰린 동양그룹이 마지막 카드로 오리온에게 SOS를 요청했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담철곤 오리온회장과 이화경 부회장이 보유한 오리온 주식 15~20%를 담보로 5,000억원~1조원 규모의 자산유동화증권(ABS)을 발행하자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리온은 "경영 안정성과 주주 불안을 고려해 지원하기 어렵다"며 13일 만에 거절했습니다.
만약 오리온이 가족간의 정에 못 이겨 이 요청을 받아들였다면? 1조원에 달하는 담보 제공으로 오리온그룹의 경영권까지 위태로워졌을 것이고, 결국 동양그룹과 함께 나락으로 떨어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냉정하지만 생존을 위한 현명한 판단이었죠.
## 유일한 유산
2013년 10월, 동양그룹의 5개 핵심 계열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갔습니다. 4만여 명의 투자자가 1조 7천억원의 피해를 입었고, 60여 년간 이어져 온 동양그룹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오리온그룹은 살아남았습니다.
동양그룹의 CI와 서남재단(현 오리온재단)을 계승하며 동양그룹 60여 년 역사의 유일한 살아있는 증인이 되었죠. 농구팀 '대구 동양 오리온스'라는 이름 하나에 담긴 것은 단순한 스포츠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 재벌사의 흥망성쇠와 생존 전략의 모든 것이었던 셈입니다.
##에필로그: 감정과 이성 사이에서
이 이야기에서 가장 인상 깊은 건 오리온의 선택입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1조원을 요구받았을 때, 그들은 감정보다 이성을 택했습니다. 냉정해 보일 수 있지만, 그 덕분에 지금 우리는 여전히 초코파이를 먹을 수 있고, 수많은 직원들이 일자리를 지킬 수 있었죠.
때로는 냉정한 판단이 더 많은 사람을 구하는 법인가 봅니다.
오늘도 편의점에서 초코파이 하나를 집어들 때, 그 작은 과자 속에 담긴 거대한 역사를 떠올려보세요. 그것은 한 기업가의 꿈과 야망, 그리고 생존을 위한 선택들이 만들어낸 우리 시대의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