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의 민족 매각설 (feat. 8조)

8조 원의 배달, 우리는 그만큼의 가치를 주문하고 있나?

by Jason Han

어느 날 아침, 포털 메인에 익숙한 이름이 올랐다. '배달의민족 매각'. 이미 몇 해 전 독일 기업인 딜리버리히어로(DH)에 안긴 배민이 다시 시장에 나온다는 소식이었다. 회사 측은 사실무근이라며 고개를 젓지만, 업계의 시선은 차갑다. 9조 원이라는 거대한 부채의 파고를 넘어야 하는 DH에게 배민은 가장 아끼는 자산인 동시에, 지금이 아니면 제값을 받기 힘든 '유통기한 임박 상품'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배민의 몸값을 7~8조 원으로 점친다. 누군가에겐 꿈의 숫자고, 누군가에겐 의문의 숫자다. 과연 이 거대한 덩치를 기꺼이 감당할 플레이어가 국내에 남아있을까.


<​익숙한 이름들, 그러나 쉽지 않은 계산기>
​잠재적 후보로 거론되는 국내 기업들의 면면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다가도, 이내 가로저어진다.

​네이버와 쿠팡: 사업적 시너지만 보면 가장 완벽한 짝이다. 하지만 '독과점'이라는 서슬 퍼런 칼날을 쥐고 있는 정부가 이들의 결합을 웃으며 바라볼 리 없다.

​신세계: 과거 지마켓과 옥션을 인수하며 이커머스의 왕좌를 꿈꿨지만, 남은 것은 삐걱거리는 재무구조와 기대에 못 미친 시너지였다. '승자의 저주'를 이미 경험한 그들에게 8조 원의 베팅은 너무도 무거운 도박이다.


​CJ대한통운: 물류의 끝단인 '라스트 마일'을 완성하고 싶겠지만, 오토바이 라이더와 택배 기사의 이질적인 단가 구조와 노무 리스크를 품기엔 리스크가 너무 크다.


<​바다 건너온 플랫폼, 그들이 꿈꾸는 동상이몽>
​우버(Uber)나 그랩(Grab) 같은 해외 플랫폼사들은 어떨까. 해외 여행지에서 이들의 '슈퍼 앱'을 써본 사람이라면 그 편리함을 잊지 못한다. 택시를 부르던 앱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결제까지 끝내는 매끄러운 경험. 막대한 자본력을 가진 그들이 한국 시장을 노크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하지만 한국은 그리 호락호락한 땅이 아니다. 촘촘한 모빌리티 규제는 우버가 꿈꾸는 '배달과 이동의 유연한 결합'을 허락하지 않는다. 결국 그들이 한국에 온들, 본인들의 성공 방정식을 그대로 대입하지 못한 채 한국식 규제에 맞춘 '반쪽짜리 서비스'에 그칠 확률이 높다.


<​성장의 끝단에서 마주한 본질적인 질문>
​냉정하게 말해, 배달 플랫폼은 이제 '성장'보다 '생존'과 '수익'을 고민해야 하는 정체기에 접어들었다. 단순히 주문을 연결해주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부가가치를 만들기 어렵다. 결국 수수료를 올리는 선택을 하지만, 이는 민생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사회적 저항과 정부의 압박을 부른다.
​어쩌면 배민은 이제 '전략적 가치'보다는 '금융적 가치'에 집중해야 하는 자산이 되어버린 건지도 모른다. 누가 인수한들, 새로운 혁신을 시도하기보다는 매달 꽂히는 현금 흐름을 챙기며 배당 잔치를 벌이는 'FI(재무적 투자자)' 같은 모습으로 남지 않을까. 실제로 딜리버리히어로 역시 배민을 인수한 뒤 보여준 모습은 혁신가보다는 철저한 관리자에 가까웠다.


​<정점에서 내려올 준비를 하는가>
​그 사이 쿠팡이츠는 무서운 속도로 1위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서울의 핵심 상권에서는 이미 배민의 깃발이 흔들리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어쩌면 DH는 지금이 가장 비싸게 팔 수 있는 '정점'이라 판단했을 것이다.


​우리는 배달 앱 없이도 잘만 살았던 시절을 기억한다. 그때보다 편리해졌지만, 우리의 삶이 그만큼 획기적으로 나아졌는지는 모르겠다. 8조 원이라는 숫자가 공허하게 느껴지는 건, 아마도 우리가 주문하는 것이 '혁신'이 아니라 '익숙함'이기 때문일 것이다.


​폭풍전야 같은 매각설 뒤에, 과연 누가 그 뜨거운 감자를 집어 들게 될까. 그리고 그 대가는 누가 치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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