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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비늘 Nov 28. 2021

뉴욕에서 멀지만, 한국보다 가까운

Arizona의 Phoenix를 다녀오며

3년 전 봄에 찾았던 Arizona를 회사 연휴 겸 다시 찾았다. 영하의 온도에 다다른 동부의 대도시를 벗어나 찾은 Phoenix의 따뜻한 겨울은 반가웠다. 조금 더웠던 그때와 다르게 이제섭씨 20도 안팎의 신선한 날씨다. 대부분이 사막이 일교차가 크다 보니 금방 10도로 내려가기도 하고, 그늘진 곳에 있다 보면 추울 때도 있다. 그래서 얇은 겉옷을 두르고 나가야 하지만, 물에 가려질 것 없이 능선 위로 비추는 햇빛은 여전히 포근한 느낌을 준다. 마당 앞에 있는 선인장과 연갈색의 집들도 자칫하면 비어 보일 수 있는 이 땅에 색감을 채운다.


나는 10년 가까이 Massachusetts와 New York에서 생활을 했지만, 북미 반대편 Arizona에서 삼촌 가족이 있다는 것은 은연중에 든든한 힘이 되었다. 미국 땅에 혼자 있지 않다는 생각이 Phoenix를 찾을 때 설렘을 더 하는 요소가 된 것 같기도 하다. 추수감사절을 맞아 오랜만에 방문한 삼촌 댁은 여전히 반갑고 따뜻했다. 그리고 그 3년 동안 모두 조금씩 바뀌어있었다. 삼촌은 코로나가 터질 즈음 인수한 새 식당들로 새롭게 적응해나가고 계셨다. 숙모가 꾸미신 거실의 크리스마스 장식은 눈이 내리지 않는 Arizona의 성탄절 분위기를 한껏 냈다. 초등학생 때 꼬마 같던 육촌 동생은 이제 고등학생이 되어 공부와 입시 준비로 바빴다.

삼촌 집 마당에서 찍은 사진이다. 조용한 아침의 Arizona는 평온하다.

첫날 비행기로 도착해 함께 한 점심은 오랫동안 못 뵈었던 이모할머니와 함께 했다. 할머니 세 자매의 형용할 수 없는 특이한 유머가 있는데, 신이 나신 막내 모할머니의 뒤바뀐 순서의 이야기들과 육촌 동생들의 근황은 저절로 웃음이 나게 했다. 말씀하시다가도 나를 보고 돌아가신 맏언니가 생각나셨는지, 종종 눈물을 감추지 못하셨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말투와 모습을 닮은 모할머니를 보고 나 또한 가슴이 먹먹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전화를 주고받고 어머니처럼 생각했었다고 하시니, 그 아픔이 나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크게 찾아왔을 것이다. 친손자처럼 대해 주시는 모할머니의 꼭 쥔 두 손은 그 무엇보다도 힘이 되었던 것 같다.


숙모가 해주신 진수성찬과 함께 할머니가 가져오신 반찬들도 맛이 정말 좋았다. 앉히는 게 귀찮아 먹지 않았던 쌀밥과 직접 만드신 반찬들은 조미료 맛에 지친 나에게 반가운 음식들이었다. 숙모가 야심 차게 구입한 고급 커피 기계의 에스프레소는 후식과 마무리하기에 어울렸다. 테이블에 앉아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했던 것이 몇 년 전이니, 이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식사를 마칠 때 즈음 운동을 좋아하는 동생이 마당에 나가서 배구를 하자고 했다. 배구선수이셨던 할머니와 삼촌 그리고 동생이 마당에서 배구공을 주고받는 장면은 가족의 울타리 안에 잠시나마 들어온 듯한 기분을 들게 했다.

3년 전 5월에 찾은 Sedona의 풍경이다. 푸른 하늘과 붉은색의 협곡이 어울린다.

초밥집 여러 곳을 운영하는 삼촌 덕분에 나는 Arizona를 방문할 때마다 맛난 초밥을 먹을 기회가 있다. 집으로 돌아가면 한동안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배가 터질 만큼 먹는 음식들도 좋지만, 삼촌과 대화하면서 얻는 지식이 나는 정말 좋다.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도표로 이해는 숫자들이 대부분이지만, 삼촌이 자영업자로서 현장에서 피부로 느끼는 경제는 이를 몇 달은 앞선다. 회사 임원들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회의를 소집하는 사이에, 자영업자는 그 대책을 실행에 옮겨야 하니까 말이다. 신문에서 읽고 시사 정도로 넘기는 정부 정책의 영향이 삼촌에게는 좌지우지하는 큰 결정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대학교에서 최저임금에 대한 통계 공부는 많이 했지만, 삼촌이 직원들을 통해 듣는 팁 문화와 주급에 대한 의견은 책으로 배울 수 없었다. 양적완화로 심해진 인플레이션과 높은 집값이 나에게는 심각한 영향이 없었기에 더욱이 그랬다. 금리를 올리겠네 하는 다소 불분명한 이야기를 하며 주식시장에 대한 큰 흐름을 어림짐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식당 직원들에게는 삶이 달린 이야기다. 배달이 잦아지고 공급이 부족한 요즘, 줄어든 팁 그리고 늘어난 재료값과 인건비는 직원들과 자영업자들에게 큰 부담이 된다. 내가 별생각 없이 즐기는 초밥이었지만, 삼촌과의 대화는 이 모든 것이 고된 노동의 결실이었음을 잊지 않게 했다.

삼촌이 운영하시는 초밥집의 메뉴 중 하나다. 오랜만에 먹은 초밥 맛이 정말 좋았다.

많아봐야 4차선이 전부인 Mahattan과 달리 뻥 뚫려있는 남서부의 도로는 시원시원하다. 교통체증이 별로 없으니 경적소리도 적어 쾌적하다. 나는 여행객 티를 내며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담으려 쉴 새 없이 두리번거린다. 저 멀리 보이는 지평선과 산맥을 보니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여유가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New York의 바쁜 삶을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때로는 나는 이런 마음가짐이 부럽기도 하다. New York에서는 멀지만 한국보다는 가까운 거리에 사는 가족과의 대화는 이 잠깐의 여유를 선사했다. 많은 것을 내려놓는 것과 동시에 많은 것을 얻고, 다시 나는 New York으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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