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비늘 Dec 01. 2021

다시 태어난 폐광촌

Arizona의 Jerome을 돌아보며

영원한 것은 없다는 다소 진부한 말은 정작 그 황금시대를 살고 있는 이에게는 와닿지 않을 것이다. 장이 없는 듯한 주식시장의 상승곡선에 올라탄 사람들처럼, 요를 누리는 동안에는 호황이 계속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기에 큰 낙차로 떨어지는 기분은 더 끔찍할 것이다. 누리게 된 부는 당연하게 여기더라도 포기해야 하는 일은 견딜 수 없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이다. 20세기 초중반 전성기를 구가  마을 Jerome 또한 그러했다.


Phoenix를 벗어나 북쪽으로 운전하는 길에는 골드러시와 금속광산으로 번성했던 마을들이 다. 댐으로 막혀 이제는 말라버린 강의 흔적들과 함께 대지를 붉게 물들인 사암들이 그 주위를 감싼다. 2시간 정도 가다 보면 굽이굽이 산비탈에  치한 광산 마을이 보이는데, 이곳이 Jerome이다. 서부개척시대에 성장하기 시작한 이 마을은 구리 광맥이 발견되면서 전쟁 동안 큰 부를 벌어들다. 하지만 종전과 불경기 구리 가격 폭락했고, 마을은 쇠락의 길을 다.

옛날 광부들이 자주 찾았던 술집이다. 벽에 붙어있는 화려한 그림은 일을 마치고 난 그들이 보낸 여가시간을 짐작하게 한다.

풍요로웠던 도시도 잘못된 방향에 들어서면 쉽게 돌이킬 수 없다. 자동차 산업으로 번성했었지만 얼마 전 파산을 신청한 Detroit가 그 예다. 미국 빅 3 자동차 회사들이 떠받쳤던 도시 경제는 70년대 오일쇼크 이후 구 감소를 겪었다. 도시를 벗어나는 기업과 인구를 막지 못하고, 줄어드는 세수와 함께 인프라는 점점 낙후되었다. 불안한 치안과 심해지는 빈부격차 및 인종간 갈등은 새로운 산업의 유입을 막다.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찬란했던 "Motor City"가 몰락하게 된 이유는 아니러니 하게도 그 이름 안에 있다. 미국 자동차 산업을 이끌었던 Detroit는 이 산업에 과도하게 의존했다. 다른 산업이 충분히 성장하지 못했고, 자동차 인프라에 집중한 나머지 대중교통수단 투자에 소홀했다. 도시인구를 감당할 대중교통은 지연이 잦고 수가 부족한 버스와 "People Mover"라 불리는 지상열차가 전부다. 오로지 구리 광맥 따라가며 위태롭게 절벽 끝에서 버텼던 Jerome겹쳐 보이는 듯하다.

멀리서 바라본 Jerome의 모습이다. 가파른 길을 따라 늘어진 집들이 보인다. 출처: The CE Shop

한 때 Arizona의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였던 Jerome의 모습은 많이 달라졌다. 입구에 들어서면 유령마을이라는 별명답게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사람이 살고 있으니 함부로 들어오지 말라는 팻말의 주택은 예전보다 팍팍해진 마을의 삶을 대변한다. 기만 덩그러니 남은 옛 호텔의 자리는 상상만을 자극할 뿐이다. 하지만 물어져가는 폐가가 이 마을의 전부는 아니다. 저곳에서  작은 마을이 꾀한 변화가 조금씩 보였다.


입구를 지나 마을 중심부에 들어서니, 멀리서 기타 연주와 함께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어지는 길가를 따라서 낡은 지붕 아래 인과 공예품을 파는 상점들이 새로 자리 잡고 있었다. 좁은 건물 안의 카페에서 커피를 사들고 들어선 음반 가게는 산 아래로 보이는 전경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작은 주차장은 줄지어 들어온 차들로 가득 찼고, 옛 술집은 광부나 도박꾼 대신 여행객들로 분주했다. 산 위의 이 작은 마을은 오랫동안 붙잡고 있던 광산을 두고 새 길을 찾은 듯했다.

Jerome과 가까운 Prescott에 위치한 150년 된 술집이다. 개척시대를 연상시키는 복장의 종업원들이 있다.

서부개척시대는 미국인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오래전 유럽인들이 정착한 동부와 다르게, 척박한 환경에서 무법자들과 싸우며 살아남은 시대이기 때문이다. 금광과 석유로 엄청난 부를 쌓았지만, 원주민 학살로 물든 시대이기도 하다. 과도기를 거치면서 크고 작은 남서부 도시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했다. 그리고 지나온 자리에 조금씩 다시 문화가 꽃피운다. 잊혀가던 Jerome 이곳을 찾은 예술가들과 연주자들 의해 다 태어나고 있다.


이전 16화 뉴욕에서 멀지만, 한국보다 가까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