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비늘 Dec 03. 2021

색안경 벗고 세상 읽기

Susan Sontag의 에세이들을 읽고

독자들은 작가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찾는다. 보통 던지는 질문들은 이런 것이다. “이 이야기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혹은 “이 단어가 암시하는 뜻은 무엇인가?”와 같은 분석적인 질문들이다. 몇 번 언급되지 않은 모티프를 바탕으로 쓰인 논문들은 사람들이 얼마나 문학에 대하여 탐구하고 공유하고 싶어 하는지를 잘 나타낸다. “Faulknerian"와 "Kafkaesque"는 말 그대로 Faulkner와 Kafka 작가의 문체를 의미한다. 독자들이 정의 내린 작가들의 스타일이다.


우리는 Vladimir Nabokov의 에서 Franz Kafka의 “K"를 보고, Marcel Proust의 작품들 속에서 Gustave Flaubert의 부르주아 향기를 맡는다. 작가들이 어떻게 다른 이들에게 영향을 받았는지, 그리고 어떤 면에서 선후배들과 달랐는지 비교한다. 읽을 뿐만 아니라, 고전문학과의 비교와 대조를 통해 상징이나 주제들을 보다 더 자세하게 분석하려고 노력한다. 작가의 방식을 다른 이와 비해 이렇더라 하고 결론 내리는 것이다. 작가가 글을 쓰는 방식은 곧 그가 존재하는 방식이기에, 섣불리 내놓는 읽는 이의 해석은 작가의 개성을 해칠 수 있다.

Against Interpretation으로 잘 알려진 Susan Sontag의 생전 모습이다. 출처: LA Times

해석은 문학의 본질적인 내용보다 겉모습으로부터 먼저 자라난다. 개념을 나타내기 위하여 쓰인 단어가 되려 그 원래 의미에 족쇄를 채우고, 도리어 왜곡하기도 한다. 언어의 설명 한계는 미술 작품들에서도 나타난다. 예술 작품은 각각 고유의 콘텐츠를 간직하고 있지만, 그 작품명과 주석은 이들을 완전히 나타내지 못한다. "Mona Lisa"는 Leonardo Da Vinci의 작품 속에 나온 여인 이름일 뿐이지, 그 그림이 뿜어내는 풍채나 아우라를 담아내지 못한다. 설명을 위해 쓰인 언어 또한 예술의 원본을 표현하는데 한계가 있다.


언어뿐만 아니라 다른 소통의 방식도 마찬가지다. 인쇄술이 발전하고 카메라가 등장하면서 예술가들은 위기를 맞. 복제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유일무이했던 원본의 제의가치는 전시가치로 순식간에 옮겨갔다. 검색 한 번만으로도 그림을 볼 수 있게 되었고, 원하는 만큼 복사 붙여넣기가 가능해졌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Louvre 박물관을 가기 위해 비행기 표를 구하고 줄을 선다. 최근에 등장한 NFT 아트는 가상 자산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고윳값이 부여된 본에 큰 값을 지불한다. 결국 기술의 발전에도 원본을 현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Louvre 박물관에 전시된 Mona Lisa와 7,500만 달러에 낙찰된 CryptoPunk 7804라는 작품이다. 출처: Sotheby's, NY Times

해석하고, 표현하고, 재현하는 데에 문학과 예술만이 어려운 것이 아니다. 증강과 가상현실의 발전도 가속화되고, 어느 때보다 교류가 많아지면서 기존의 생활방식 가치관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부동산 값뿐만 아니라 가상자산의 가치도 잇따라 늘어나는 것을 보면 그 경계가 점점 허물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완벽한 줄만 알았던 경제모델은 불황 때마다 수정을 거듭하고, 새로운 교과서는 오래된 지식을 재정비한다. 우리는 세상의 본질적인 이치를 파악하려 노력하지만, 제각각 다르게 이해하고 가장 적합다고 생각되는 근댄다.


절대적인 의미란 없다. 병합이 불가능해 보이는 거시적, 미시적 이론들을 연결하는 초끈이론처럼, 물과 불 같은 테마들이 혼합된 것이 현실이다. 개인의 감정조차 모순적인 경우가 많은데, 그들이 모여 이루는 세상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금까지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혹은 남의 시선의 영향을 받아, 색안경을 끼고 정체된 시선으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오즈의 성이 안경 때문에 에메랄드 빛으로 보였던 것처럼, 새로운 색 칠해진 세상을 안경 때문에 보지 못하는 것일도 모른다.

오즈의 성은 에메랄드 색이 아니다. 출처: Storynory

나이가 드는 것의 장점이자 단점은 경험이다. 보고 듣는 일이 많아지고 이에 대해 타인 의견을 공유하면서 대처하는 방법을 배운다. 하지만 이 경험은 되려 우리로 하여금 과장, 왜곡 그리고 속단에 속박되게 한다. 비슷한 견해를 가진 사람을 가까이하게 되고, 기존의 생각을 굳건하게 하는데 능숙해지기 때문이다.

A work of art encountered as a work of art is an experience, not a statement or an answer to a question

하지만 해석은 경험 없이는 불가능하다. 모두가 조금씩 다른 색안경을 맞춰나가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색깔은 다를 수밖에 없다. 다만 각자 나름의 시선을 가지고 세상을 대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필요한 것 같다. 해답이 없는 세상을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겸허한 태도를 가지려 노력해본다.

이전 17화 다시 태어난 폐광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