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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비늘 Jan 16. 2022

l'Esprit Nouveau

집 정리를 하면서

방의 모습은 마음을 대변. 상쾌한 아침을 맞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낼 때는 이부자리 에 더해 책상 주변도 깔끔하게 정하게 된다. 다음날로 미뤄진 업무 인해 부랴부랴 집을 나서는 날은 이곳저곳에 던져진 옷들과 물건들로 정신이 없다. 갑과 열쇠도 찾기 어려워 이리저리 뒤지다 보면, 이미 탕물처럼 어지러운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즘은 바쁜 일정을 대신하여 청소부를 고용하는 도시 사람들이 많지만, 나는 개인적인 공간을 내가 스스로 치우겠다는 고집이 조금 있는 편이다. 마음을 추슬러야 할 때면 설거지를 하거나 가구 위치를 바꾼다.


지난 12년간  매년 어도 1명의 메이트와 다양한 공간에서 함께 했다. 기숙학교에서 4년, 군대 2년과 대학교 4년에 직장생활 2년 동안, 나는 기숙사 방, 막사 생활관, 거실에 간이벽이나 커튼을 세워 만든 방 등서 살았다. 공용화장실을 쓰고, 부엌과 가까운 거실에 살면서 이전에는 신경 쓰지 않았던 작은 요소들에 눈이 가게 되었다. 꼭 필요할 것이라고 느껴졌던 구와 물건상 들이고 나 후회가 남기도 했다. 께 사는 사람들과 맞추어나가는 일도 낭만적이지만은 않았으며, 나 또한 내가 만들고자 하는 방의 모습이 명확지 않았다.

공부와 규율에 특화된 구조의 기숙사 방이다. 출처: Dead Poets Society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고 상상했던 기숙학교 생활은 룸메이트 1명과 함께 하는 작은 방에서 시작되었다. 오래된 나무 책상과 의자가 두 개씩 놓인 방에는 이층 침대와 옷장들이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와 같은 방을 쓴다는 것은 신나면서도 두려운 일이었다. 간의 반쪽은 룸메이트 덕분에 유명 영화 포스터, 기타, 농구공 등으채워져 있었다. 미국 남부에서만 자랐던 친구와 같이 보낸 해에는 컨트리와 록 음악 포스터로 벽과 천장이 가득 차 있었고, 사진이 취미인 친구는 그동안 찍어온 풍경들로 방을 꾸며놓았다. 딱 잘라 누군가의 영역이라고 할 수 없는 이 방은 시간이 지날수록 두 명의 것으로 함께 녹아들었다. 나는 아직도 컨트리를 듣고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


군대에서는 같은 생활관에서 열댓 명 정도와 함께 생활을 했다. 같은 규격의 침대와 관물대 늘어진 방의 모습은 완벽한 대칭이었다. 돌돌 말아 정리한 침낭과 접어둔 모포는 침대 머리맡에 위치해있고, 관물대 속의 옷들은 한쪽 팔을 접은 채 나란히 틈 없이 걸려있어야 했다. 시 검사에 용이하게 전원 모두 서로의 가구와 물건을 잘 보이는 곳에 두었다. 같은 모습을 하고 같은 곳에서 생활하면서, 무나도 달랐던 우리는 점점 비슷해져 갔다. 그중 유일하게 꾸밀 수 있는 부분은 관물대 안의 공간뿐이었다. 같은 회색의 수납공간일지라도, 그 만큼 자석으로 붙인 가족이나 애인의 사진, 즐겨 읽는 책들 또는 일기로 채워졌다. 나는 이곳에 New York에서 보내준 여러 장의 편지들을 차곡차곡 모아두었다.

생활관의 모습은 항상 같았고, 같아야했다. 출처: 네이트

복학을 하고 나서는 15 남짓의 작은 아파트에 5명이 같이 살았다. 군기가 덜 빠진 복학생들이 살던 작은 공간은 막사를 연상시키듯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역할분담을 하는 곳이었다. 창문이 없는 방도 있었고, 공간이 부족해 이층 침대 밑으로 책상을 넣어야 하는 방도 있었다. 실과 연결된 부엌에서 식사 준비를 하면 다음 차례는 기다려야 했고, 설거지를 자주 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수대는 빈 적이 없었다. 는 입도 양도 많다 보니 장을 볼 때도 소고기 서너 근이 기본이었고, 냉장고에는 는 자리를 만들어 비집고 들어간 반찬 용기들이 가득했다.


래 원룸이었던 이 아파트는 개조하여 4개의 방과 2개의 화장실로 나눈 것이었다. 음이 잘 되지 않았고, 벽도 튼튼하지 않았다. 고학년이 된 우리는 학교 공부와 취업 준비를 병행했는데, 때로는 신경이 곤두선채로 이 작은 공간에서 부대끼며 살아야 했다. 누군가 면접에서 떨어진 날이면, 집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반면 누군가 좋은 결과를 가져오면, 그만큼 하해줄 사람들이 많기도 했다. 집이 항상 북적북적하고 각자 생활습관이 다르다 보니, 우스갯소리로 불침번이 따로 필요 없다는 이야기도 했다. 이렇게 족의 보호를 벗어나 성장하는 시간은 탈도 많았지만 그만큼 우리를 더 빨리 성숙하게 했다.

대학교 3,4학년 때 살았던 방이다. 팔을 뻗으면 양쪽 벽이 닿았다.

l'Esprit Nouveau(새로운 정신)라는 잡지를 창간한 건축가 Le Corbusier는 국제박람회에서 같은 이름의 건물을 전시했다. 부지 가운데에는 나무가 있었는데, 이를 베지 않고 건물을 관통하게끔 설계했다. 거스르지 않고 둥글게 그 주위를 감싸는 그 모습은 묘한 조화를 이룬다. 내 공간의 변천사는 이처럼 거창하지는 않지만, 낯선 환경과 사람들에 맞게 변화해온 듯하다.

집은 살기 위한 기계다

당시 등장한 비행기, 자동차와 같은 새로운 기술과 기계문명처럼, 건축 또한 그렇게 변화해야 한다는 그의 말이다. 란했던 르네상스 양식이 시대착오적일 수 있다.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위해서는 기존의 세계를 깨뜨리고 나와야 한다. 내 방을 돌아보니 지나온 흔적들이 산만하게 흩어진 것이 보인다. 어지러워진 방을 치우기 위해서는 버려야 할 것은 과감히 쳐내고, 포용할 것은 과감히 안아야 한다. 새로운 정신을 위하여 다시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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