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이라도 기름진 음식을 먹은 날은 더부룩한 속을 달래려고 애쓴다. 예전에는 그래도 반나절이면 괜찮아졌던 것 같은데, 이제 매일같이 찾아오는 소화불량은 다스리기는커녕 이에 굴복하게 된 듯하다. 혀와 소화기관이 따로 노니 이렇게 고통스러울 수가 없다. 유행하는 매운 라면이나 떡볶이를 먹는 날이면 그다음 날은 화장실에서 고생할 것을 감수해야 한다. 입 주변에 올라오는 염증은 덤이다.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할 때는 달라진 환경에 물갈이를 하고, 별미라며 먹게 된 새로운 요리 앞에서는 호되게 신고식을 치른다.
어렸을 때부터 소화기관이 약했던 것 같다. 체한 날이면 찬장 위 약통 안에서 어머니가 아끼는 까스활명수를 찾아 마셨다. 달콤하면서도 씁쓸하고 화한 맛은 곧 가라앉을 것이라는 기대에 더 신비하게 느껴졌다. 그마저도 소용이 없으면 할머니 댁으로 찾아가 바늘로 따는 것이 마지막 해결책이었다. 소독한 바늘로 찌른 손끝에 맺힌 검붉은 핏방울은 "나쁜 피"라고 알았다. 정말 나았는지 위약효과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나았다고 믿고 싶었다. 주삿바늘을 지독하게 싫어했던 어린 나에게 소화불량은 훨씬 더 무서운 상대였다.
미국에서의 1인분은 한국의 2인분 같다. 출처: Pixabay 미국 유학을 오고 나서부터는 평소에 먹지 못했던 기름지고 소금간이 센 음식들을 자주 접하다 보니, 자제력을 잃고 과식하는 경우가 많았다. 집에서야 가족과 함께 밥을 먹고 과일도 자주 챙겨 먹으니 영양이 불균형 할리가 없었지만, 학교 식당에서는 입맛에 맞는 튀김과 고기만을 담아 먹는 게 일상이었다. 식욕이 왕성하다 보니 밤늦게 피자를 먹기도 하고, 큰 봉지에 담긴 과자를 혼자 몇 분 만에 다 먹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몸도 무거워지고 피부도 벌겋게 올라왔다. 몰래 술을 마셨냐는 선생님의 웃지 못할 추궁도 있을 정도였으니까.
절제 없이 먹고 잤던 생활습관은 가족의 품을 떠나 통제를 잃은 나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미식축구를 한다는 핑계로 나보다 2배는 큰 몸집의 친구들과 같은 양을 먹으려 했다. 그리고 스트레스가 쌓일 때면 목구멍까지 욱여넣는 음식들로 풀고는 했다. 곧 배탈이 날 것을 알면서도 미련한 행동을 반복한 것은 그때만의 쓸데없는 오기와 반항이었을 것이다. 같은 팀 선수들처럼 새벽 운동을 따로 하지 않으면서 몸집은 그처럼 키우고 싶었고, 별다른 취미 없이 힘들다는 하소연만 반복하며 먹는 양을 늘리는 일은 결과가 뻔한 어리석은 짓이었다.
가끔 즐기는 술은 즐겁다. 그러나 필요한 즐거움 이상의 어리석음은 조심하려 한다. 출처: 인사이트 대학생이 되고 나서도 크게 바뀌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에 술을 자주 즐겼고, 높은 도수의 술을 음료수 마시듯 벌컥 들이키는 것이 멋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다음 날 반나절 동안 침대 위에서 축 늘어진 채 후회하던 모습은 어느 순간부터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름 고안해낸 것이 저녁 8시 이후에는 먹지 않는 것이다. 축배를 같이 들 자리가 아닌 이상 술을 마시지 않고, 하루에 대여섯 잔은 마셨던 커피도 이제는 하루에 한잔으로 맞추기로 했다. 그리고 식사 후에는 몸을 가볍게 할 겸 강가를 따라 산책을 한다. 어떻게든 먹이려 했던 친구들도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우스갯소리로 "골든타임"이라고 부르는 이 습관을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일은 더 이상 어색하지 않다.
먹고 취하는 즐거움을 덜으면서 무슨 재미가 있을까 하겠지만, 오히려 이런 규칙은 활기를 더해준다. 자극적인 음식의 첫 술은 매력적이지만, 혀끝에 남는 조미료 맛은 쉽게 질리기 마련이다. 반면 할머니의 슴슴한 곰국은 뼈를 고아 만든 흰 국물이 전부다. 그러나 먹었던 기억은 희미해질지언정 지워지지 않는 여운이 남는다. 무료한 하루를 달래기 위해 마셨던 술과 늦게 잠을 청하여 생긴 피로를 미루기 위해 마시는 커피 대신, 이제는 느리게 우려낸 차의 향을 즐긴다. 거친 언어와 빠른 템포의 예능과 영화를 즐기더라도, 결국은 마음의 결이 부드럽고 따뜻한 사람과 함께 하고 싶은 소망도 같은 이치일 것이다. 가끔은 순수한 본질로 회귀하기 위해 잠시 물러서 "골든타임"을 두어야 할 때가 있지 않은가 한다.
친구 가족과 함께 한 새해 식사다. 음식의 맛뿐만 아니라 나눴던 대화를 기억하고 추억한다. 나는 故 피천득 작가의 시 중 "맛과 멋"을 제일 좋아한다. 맛을 극대화한 삶 속에서 멋을 잃지 않고 살아갈 것을 작가는 조언한다.
맛과 멋은 리얼과 낭만이 같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나 맛과 있으면 그만인 사람도 있고, 맛이 없더라도 멋만 있으면 사는 사람이 있다.
맛은 몸소 체험을 해야 하지만, 멋은 바라보기만 해도 된다.
맛에 지치기 쉬운 나는 멋을 위하여 살아간다.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처럼 덧없고 가벼운 즐거움은 경험할수록 더 갈구하게 된다. 흐트러진 삶의 태도는 터진 둑에서 걷잡을 수 없이 새어 나오는 물과 같이 불어난다. 부를 더 쌓기 위해, 명예로운 사회 지위를 얻기 위해 그리고 이로 인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찾게 되는 자극적인 삶의 요소들은 내 안에서 소화되지 못하고 부담을 더한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처럼 맛을 철저히 배제하여 살아가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맛이 넘치는 세상에서 멋을 위한 삶을 추구하려 노력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