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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근 Sep 20. 2016

< 죽음을 품지 못하는 도시 >

- 비에 젖은 어린 고양이의 주검 -

비 오는 저녁.

긴 연휴로 집안에 쌓인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


밤을 향해 달리는 시간들 속에서 우울하고 음산한 비는 내리고 있었고, 빌딩들과 길 위 아스팔트는 그 우울함과 음산함을 한껏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렇게 이 도시는 하루를 마감하고 있었다.


무채색의 습한 공간을 슬리퍼 신은 발에 물이 튈까 물 웅덩이진 곳을 피해가며 걸어갔다. 그러다 저만치 길 한가운데 놓인 우산이 보였다.

버린 우산이라기에는 너무 새 것 같은 우산은 아스팔트 바닥에 놓인 체 내리는 비를 그렇게 맞고 있었다.  

그러려니 하고 그 우산 옆을 그냥 지나치려 할 때, 우산 아래 하얀 털 뭉치 비슷한 것이 보였다.


‘뭐야?’

궁금증이 일어 우산을 살짝 들춰 보았다.


“허억!!!”

나도 모르게 순간 숨을 멈추게 하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서게 만든 그것은 처참히 죽은 고양이 사체였다.


차에 치었을까?

그 녀석의 머리는 뭉개져 있었고, 뇌수(腦髓)들은 그 주변에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끔찍했다.


어그러진 턱뼈, 함몰된 눈, 뻣뻣하게 굳은 사지......

살아생전 하얀 털이 무척이나 매력적이었을 아직 어린 그 녀석은 그런 모습으로 한참이나 비를 맞았는지 축축이 젖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처참한 주검을 본, 마음 따뜻한 어떤 사람이 그 녀석에게 우산을 씌워주고 간 듯했다.


참혹했다.

놀라는 것에 무덤덤해진 나이라 생각했건만, 그 처참한 죽음 앞에 소름이 돋고 욕지기가 올라왔다.

하지만 막연하게 이대로 가면 안될 것 같은, 뭔가 해야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쩐다.....’     

냉정하게 차근차근 준비해야 할 것들을 생각했다.

‘우선 위생장갑을 끼고, 깨끗한 종이로 녀석을 싼 후, 모종삽으로 땅을 파고......’

그렇게 해야 할 일들을 차분히 생각해가던 어느 순간, 생각이 멈추고 말았다.


‘땅?... 땅?... 어디에 묻지?’


그랬다.

회색 건물과 아스팔트로 둘러싸인 이 도시에선 저 어린 죽음 하나 품어줄 한 뼘 땅뙈기조차 있질 않았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고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그 작은 주검 하나 품어줄 대지는 검은 아스팔트 밑에서 잠자고 있을 뿐이었다.


태어나 살고, 살다가 죽고, 죽으면 땅에 묻혀 흙이 되고, 흙은 다시 생명을 틔우는 그 기본적인 자연의 순환을 이 도시는 원천적으로 막고 있었다.

그리고 주검을 땅에 묻고 애도할 수 있는 감정적 본능조차 허락하지 않는 것이 이 도시였다.


그래서였을까?

아마 죽은 고양이에게 우산을 씌워주고 돌아서야 했던 그 사람의 생각도 나와 같았으리라 짐작됐다.

‘묻어줄 수 없으니, 우산이라도 씌워줄 밖에......’


자신의 털 색깔만큼이나 하얀 우산 밑에서 잠들어 있던 그 녀석을 내려보며 한참이나 자리를 뜨질 못했다.

“미안하다. 다음 생엔 축생(畜生)의 업을 벗길 바라마.”

그리고 조용히 돌아섰다.


비겁하게 그렇게 돌아섰다.


비 나리는 이 회색 도시는

그 작은 주검을 묻어줄 한 뼘의 땅도,

그 작은 죽음을 묻어줄 한 줌의 마음도 없었다.


빌어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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