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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근 Sep 19. 2016

< '정'이 넘치는 나라 >

- 명절이 불편한 사람들 -

“새댁! 소식은 있나?”

아버지께서 23세, 어머니께서 22세에 나를 보셨으니 결혼은 그보다 훨씬 일렀을 것임에도 시골 시집의 주변 어르신들은 어머니를 볼 때마다 저렇게 물으셨다.

젊다 못해 어린 나이였던 어머니는 이웃 분들의 임신 여부를 묻는 질문을 들으실 때마다 부끄러우셨단다.


“아들인가, 딸인가? 태몽이 뭐여?”

결혼 후 어머니의 배가 점점 불러오자 이웃 어르신들의 궁금증은 더해갔다.

어머니의 몸에 무슨 초음파 검사기가 장착돼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아들인지 딸인지를 물으셨고 심지어 태몽으로 성별을 점치는 무속(巫俗)의 영역까지 넘보셨다.

하지만 어머니의 태몽으로 내가 아들임을 맞추신 것들을 보면 그분들의 영역 침범(?)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었던 듯하다.

다만 대부분의 여성들이 임신해서 나온 배를 부끄러워하던 시대적 분위기(어머니의 말에 따르면)와 아들이길 바라는 시댁 어른들의 바람 때문에 어머니를 향한 그런 궁금증들은 어머니에게 적지 않은 피로와 부담을 주었다 한다.


“공부는 잘 하니? 반에서 몇 등 하니?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

내가 태어나고 자라, 8살이 되어 학교라는 곳에 처음 발을 디디게 되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12년간, 주변 분들에게서 저 질문을 줄곧 들어야 했다.

친척, 이웃, 그리고 잠깐잠깐 만났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지인 분들 모두, 만나기만 하면 저 질문과 당부는 빼놓지 않고 말하셨다.

자신의 자식에 대한 학업 걱정도 모자라 나의 학업까지 걱정해주신 분들의 넘치는 관심과 사랑이었다.

  

“학교는 어디로 갈거니? ‘과’는 무슨 ‘과’로 정했니? 군대는 언제 갈거니?”

대학에 들어갈 무렵부터 내 주위분들은 나의 진학에까지 관심 가져 주셨다.

그리고 친절하시게도 나의 ‘국방의 의무’까지 염려해 주셨다.

혹여나 병무청에서 영장 안 보내줘서 군대 못 갈까 봐.


“직장은 어디니? 연봉은 얼마니?”

학교를 졸업할 무렵부터 주위분들의 관심사는 나의 직장과 연봉에 맞춰졌다.

무슨 보험회사의 플래너나 컨설턴트처럼 나의 직장과 한 달 수입을 집요하게 물으셨다.

자신들의 가계 수입과 지출을 걱정하기도 벅찬 힘든 시기에 내 걱정까지 해주시는 것을 보면 아마 다들 살림살이가 넉넉하신 분들 같았다.


“결혼은 언제 할 거니? 결혼할 사람은 있니?”

“빨리 아이 낳아서 얼른얼른 키워야지.”

“요즘은 둘 키우기 힘드니까, 하나만 낳아서 잘 키워라.”

내가 나이 서른을 넘어설 무렵부터 마흔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주위 분들에게 줄곧 들어온 말들이다.

내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를 걱정해 주시는 것도 모자라 자식 계획까지 미리 잡아주시는 관심과 사랑이 나는 너무 부담스럽다.

아니 그런 질문들을 대할까 싶어 그분들을 만나는 자리마저 피하고 싶을 때가 많다.


하지만 내가 결혼을 하게 된다고 해서 그분들의 관심이 그칠까?

아마 내 아내가 될 사람에 대한 신상과 호구 조사를 시작으로, 내 어머니가 겪었던 관심들을 내 아내가 그대로 받게 될 것이다.

관심의 ‘뫼비우스 띠’라 해야 하?

마치 끝이 없는 관심의 굴레 속에서 사는 것 같다.


‘정(情)’......

타인에 대한 관심을 넘어선 간섭......

그것을 우리는 에둘러 ‘정’이라 표현한다.

그리고 “다, 널 위해서 그러는 거야”라며 피하고 싶은 질문들을 돌직구로 날려주시는 ‘정’들이 참 마음 불편케 한다.


이번 명절에도 나는 주위 분들의 ‘정’이라는 관심과 사랑을 담뿍 받아내야만 했다.

그리고 그분들이 주신 넘치는 관심과 사랑은 내 안에서 스트레스로 녹아내렸다.

  

그 사람에게 사랑이 있으니 관심이 가는 것이고  관심이 있으니 사랑을 주시는 것일 것이나, 어떤 면에서는 ‘사랑은 곧 관심(사랑 = 관심)’이 아니라 ‘사랑은 곧 지켜봐 주는 것’이란 생각을 한 번쯤은 해주셨으면 한다.


모 건강식품 광고가 기억에 남는다.

아무 말 없이 가볍게 미소 지으며 엄지를 들어 보임으로써 상대방을 흐뭇하게 했던 모습.


감당하기 힘든 ‘정’들을 남발하기보다는 가벼운 ‘엄지 척’만으로도 그 진심이 전달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혹 이 글을 읽으신 분들 중 지나친 관심으로 상대방을 불편케 한 명절을 보내신 건 아닌지 생각해 보셨음 한다.

그리고 그러신 분들이 계시다면 상대방이 감당키 힘든 ‘관심’보다는 말없이 지켜봐 주는 ‘느긋함’을 다음 명절에 보여주심이 어떨지 싶다.


지나친 관심은 간섭이 되고, 그 간섭은 상대방에게 ‘정’이 아닌 ‘불편함’으로 받아들여질 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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