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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근 Nov 15. 2016

<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

- 거절의 매너 -

날이 어두워지자 주위 학원에서 학생들이 밀려 나왔다.

공부에 지쳐 다들 표정들이 어두울 만도 하건만 친구들이 옆에 있으면 밝음의 에너지가 무한 샘솟는 나이들이어서 그런지 다들 표정들이 밝았다.


삼삼오오 모여 집으로 향하는 아이들.

거뭇거뭇 수염이 난 남자아이들은 걸걸한 목소리로 서로를 불러대며 장난을 처댔고,

수줍음 많은 여자 아이들은 지네들끼리 뭐가 그리 재밌지, 조곤조곤 이야기하다 까르르 웃어대길 반복했다.

또 커플인 녀석들은 드라마 주인공이라도 되는 양, 제법 어른들의 연애하는 모습을 흉내내고 있었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중고등학교 까까머리 시절이 떠올라 미소가 지어졌다.

학교에서 배우던 교과목 수만큼이나 꿈이 많았고,

책가방엔 희망이 가득 차 있었으며,

친구들과 함께라면 항상 웃음이 넘쳐나던 그때......

‘나도 저런 때가 있었지......’


어젯밤 내린 비로 쌀쌀해진 날씨 탓에 집으로 향하는 아이들의 발걸음은 바빴다.

개중, 집이 가까운 아이들은 방향이 같은 친구들과 어울려 함께 걸어갔고,

집과 학원 사이의 거리가 먼 학생들은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향했다.

정류장엔 이내 여남은 학생들이 모였다.

학생들 대부분은 스마트 폰을 들여다보며 버스를 기다리는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몇몇은 친구들과의 수다로 그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익숙한 모습, 익숙한 풍경들...

그 사이로 예쁘장하게 생간 여학생 한 명이 들어왔다.

고등학교 1, 2학년쯤 되어 보이던 그 여학생은 오자마자 정류장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코르셋을 감은 듯 착 달라붙은 상의와 짧은 치마.

여학생은 교복 이곳저곳을 수선한 듯했다.

‘에고... 어제 비 왔다. 날 춥다. 이 녀석아...’


여학생의 핸드폰이 울렸다.

여학생의 친구에게서 온 전화였다.

친구는 자신의 남자 친구에게서 받은 한 아름의 막대과자를 그 여학생에게 자랑하기 위해 전화를 건 듯했다.

‘아...... 오늘이 11월 11일이었구나’

여학생은 친구의 말에 진심으로 부럽다고 말했다.


대화 내용을 들어보니 여학생의 친구는 소위 킹카와 사귀는 듯했다.

키 크고, 잘 생긴......

그런 남학생과 사귀는 친구가 여학생은 무척이나 부러운 듯했다.

그렇게 친구와 수다를 떨던 여학생은 한쪽 어깨를 추켜세워 어깨와 귀로 핸드폰을 붙잡고 두 손으로 책가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콤팩트와 립 글로즈를 꺼내 이내 찍어 발랐다.

‘아이고... 안 발라도 예쁘다. 더 발랐다간 가부키 배우 되것다...’


시간이 꽤나 지났건만 그녀들의 통화는 계속됐다.

장시간의 통화 탓으로 그 여학생은 입안이 텁텁한 듯했다.

‘찍! 찍!’

여학생이 바닥에 침을 몇 차례 뱉었다.


침을 장거리 일직선으로 뱉기 위해 모은 입술의 모양.

침이 날아가는 거리와 속도.

대기를 가르는 경쾌한 침 뱉는 소리.

그리고 무엇보다 뱉은 침이 안정적으로 착지할 위치를 확인하는 여학생의 매서운 눈빛에서 예사롭지 않은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겉모습은 곱상한데, 거친 사춘기를 보내고 있나 보네...’


시간이 조금 더 흘러, 버스를 기다리던 아이들 중 절반가량이 떠났다.

여학생은 그때까지도 친구와의 통화를 즐기고 있었다.

‘요즘 학생들은 통화보다 카톡을 많이 하던데......’

그러다 여학생이 화장품을 꺼냈을 때처럼 핸드폰을 어깨와 귀로 붙들고 다시 책가방 앞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곤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는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몽글몽글 담배연기가 피어올랐다.

여학생은 길게 한 모금을 들이마시더니 또 그만큼 길게 연기를 내뿜었다.


입술 정중앙에서 약 25도에서 30도 정도 비켜간 각도로 담배를 무는 능숙함.

속눈썹이나 앞머리를 태우지 않도록 적절히 조정된 라이터 불.

한 모금을 들이마신 후 그 연기를 내뱉고, 다시 한 모금을 들이마시는 연결 동작들의 리드미컬함.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 대부 주제곡 ‘Speak Softly Love'를 배경음악으로 깔아줘야 할 것 같은, 그 여학생의 온갖 세상 고통 다 짊어진 듯한 표정과 분위기에서 ‘끽연(喫煙)의 참맛’을 아는 학생인 듯했다.

‘거 참... 맛나게도 태우네. 좀 한 대 권해보고 피우면 안 되겠니?

내가 끊은 지 한 7,8년 됐다만,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이 끊은 담배도 다시 피우고 싶게끔 만들어서 말이야...’


요즘 부쩍 전에 없이 담배의 유혹에 시달리고 있는 나에게 그 학생이 만드는 담배 냄새는 너무나도 구수했다.

‘가는 길에 한 갑을 사? 말어?’

나는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런데 그때 여학생의 언성이 갑자기 높아졌다.


“너. 그거 어떻게 알았어? 그렇지 않아도 내가 그것 때문에 창피해 죽겠어! 그 딴 녀석이 나한테 고백이라니...... 완전 정신 나간 XX 라니까!”

어떤 남학생이 막대과자 데이에 고백을 했다가 보기 좋게 차인 듯했다.

“저번 ‘고백데이(맨 밑 해설 참조)’ 때도 그러길래, 내가 보는 앞에서 편지랑 꽃다발 찢어버렸었거든... 그런데 이번에 또 그러는 거 있지!”


여학생의 말을 종합해 보자면 이랬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남학생 한 명이 그 여학생을 좋아하는 듯했다.

헌데 여학생은 그 남학생이 영 마음에 차지 않았다.

특히 평범한 외모와 그리 크지 않은 키가 결정적인 이유인 것 같았다.

하지만 남학생은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차지한다’란 말만 믿고 고백데이에 용기를 내 여학생에게 고백을 했다.

결과는 처참했다.

자신의 진심을 담은 편지와 꽃다발을 자신이 보는 앞에서 찢어버렸으니 말이다.


그렇게 당했으면 포기할 만도 하건만......

남학생은 다시 한번 용기를 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란 말을 너무 믿었던 것 같다.

그래서 막대과자 데이를 맞아 또다시 그 여학생에게 고백을 했다.

정성 들여 편지를 썼고, 고르고 고른 막대과자 바구니엔 마음을 담았다.

하지만 결과는 지난번 보다 더 처참했다.

자신이 준비한 선물들을 여학생은 길바닥에 그대로 내던져 버렸고, 거기에다 심한 욕설까지 퍼부었다.

결국 마음을 심하게 다친 남학생은 눈물을 보이며 뒤돌아섰다.


“그 찌질한 놈이 아주 약 처먹었나봐.

지가 감히 나한테 고백을 해? 아주 창피해서 누구한테 말도 못 하고, 화나 미치겠어!

크크큭...

그래도 내가 막 욕하면서 꺼지라고 하니까. 울면서 가더라. 킄킄...”


기다리던 번호의 버스가 오자 여학생이 일어섰다.

여학생은 황급히 피우던 담배의 필터 부분을 엄지와 중지로 잡고 담배 불똥 부분만 검지 손가락으로 튕겨냈다.

담배 좀 피워본 사람들만 한다는 담뱃불 끄는 법이었다.

그러자 담배 불똥이 폭죽처럼 사그라져갔다.


“야! 버스 왔어! 집에 도착해서 전화할께!”

여학생이 서둘러 버스에 올랐다.


‘그렇게 통화를 해놓고 뭘 또 집에 가서까지......


그런데 학생...

학생은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해 본 적이 있어?

그 사람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어?

좋아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한 자, 한 자 정성껏 편지를 써 내려 가본 적은?

선물을 준비하면서 받을 그 사람이 흐뭇해할 상상만으로 즐거워 본 적은?

학생에게 선물과 편지를 건넨 그 남학생은 마음속으로 수십 번 ‘이걸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했단 것을 알아?

그 수십 번의 고민을 이겨내고 용기 내 학생에게 고백한 그 마음이 순수하고 아름답지 않아?

학생은 누군가를 위해 그런 수십 번의 고뇌를 해 본 적이 있어?


적어도 남학생의 마음을 생각했다면 그런 식의 거절은 잘못됐다 생각해.

거절을 하더라도 그 남학생의 진심까지 다치게 해선 안됐었어.

거절에도 최소한의 매너가 필요한 법이니까!


콜린 퍼스가 킹스맨이란 영화에서 이런 말을 남겼지.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여학생을 태운 버스가 밤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학생이 떠난 자리엔 담배꽁초만이 휑하니 남겨 있었다.


불현듯 안도현 님의 시구(詩句)가 생각났다.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고백데이 : 그 날 고백을 하고 사귀게 되면, 크리스마스에 100일을 맞을 수 있는 날.(올해는 9월 17일). 혹은 밸런타인데이에 100일을 맞을 수 있는 날을 그 날로 정하기도 함.

*사진 : 구글 이미지 검색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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