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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근 Sep 23. 2016

< 이등병의 날 - Part 3 - >

- 아버지의 자존심 -

남겨진 우리들을 소대장은 다시 집합시켰다.

그리고 외출·외박 시 주의 사항에 대해 일러주었다.


- 절대 군인의 신분이라는 것을 망각하지 말 것.

- 그 군인의 신분에 맞게 어떤 장소에서건 행동과 복장 상태를 단정히 할 것.

- 위수지역(衛戍地域 : 여기서는 외출·외박 시 이동 가능 범위)을 벗어나지 말 것.

- 복귀 시간을 준수할 것.


물가에 어린아이를 내놓은 심정이었던지, 대대 내의 전 간부들이 아무 사고 없이 전원 복귀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아마 다들 오늘과 내일이 빨리 지나가길 바랬을 것이다.


나가서 사고 치면 바로 ‘영창행’이라는 겁까지 주며 우리들에게 당부에 당부를 거듭하던 소대장이 행정병으로부터 무슨 말을 듣고 난 후 우리에게 말했다.

“지금 부모님들께서 오셨다고 하니까 다들 열 맞춰 대기한다!”

아마 위병소(부대 입구)로부터 가족분들이 도착했단 소식을 행정병이 전한 듯했다.


한낮의 태양 아래 그렇게 얼마 동안 서있자니 저 멀리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였다.

삭막한 부대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형형색색의 각기 다른 옷을 입은 사람들이 ‘O중대’ 푯말을 든 한 고참의 인솔에 따라 우리 중대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옆 사람의 부축을 받으며 힘겹게 걸어오시던 어느 이등병의 할머님.

벌써 눈물보가 터져 흰 광목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걸어오시던 어느 이등병의 어머님.

아들을 조금이라도 일찍 찾고픈 마음에 맨 뒤에서 까치발로 위태위태 걸어오시던 어느 이등병의 아버님.

그리고 사랑하는 님을 만나고픈 급한 마음에 종종걸음으로 수줍게 걸어오던 어느 이등병의 애인까지......


각기 만날 사람은 다르지만 그간 그리워했던 마음만큼은 같았을 사람들이 우리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무리에서 부모님이 보였다.


나를 먼저 알아보시고 손을 들어 보이시던 아버지, 나와 눈을 맞추자마자 울상이 되어버린 어머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불과 부모님과 석 달 남짓 떨어져 있었을 뿐이었지만 감정이 요동쳤다.

단순한 슬픔만은 아니었다.

감격? 감동? 뭐 그런 비스무리한 감정들이 슬픔과 버무려져 내 안에서 회오리쳐댔다.     

하지만 감정에 취해 눈물을 보일 순 없었다.

보는 눈들이 많았고, 또 눈물 보인 이등병을 갈굴 고참들의 모습이 떠올라 그럴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순간만큼은 부모님께 군인다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그러기 싫었다.


가족 분들이 중대 입구에 다다르자, 소대장이 그분들의 앞에 섰다.

“먼 길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여기 댁의 아드님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어서 만나 보십시오”

  

우루루 사람들이 우리에게로 몰려왔다.

하지만 혼잡하거나 무질서 하진 않았다.

마치 목표물을 미리 정조준한 유도탄처럼 자신들의 아들을 찾아 품에 안으셨다.

이미 먼발치에서 자신들의 새끼를 알아본 부모님들의 그리움들이 의도치 않은 질서를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하나하나의 그리움들이 나를 몇 지나치고 나자 부모님께서 나에게 오셨다.


“잘 있었냐.”

내 어깨를 꼭 잡아주시며 무심한 듯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아이고......”

통곡과 한숨이 반반 섞인 듯한 말을 내뱉으며 어머니는 내 손을 꼭 잡으셨다. 그리곤 계속 울기만 하셨다.

“네. 잘 있었습니다.”

울렁이는 감정들을 억누르며 나는 최대한 남자답게 당당히 말했다.

하지만 감정의 너울댐이 너무 커서였는지 말끝은 약간 떨릴 수밖에 없었다.

  

두 분 다 조금 야윈 듯했다.

무더운 여름을 보내여서였는지, 아니면 하나뿐인 아들내미를 먼 곳에 뚝 떨쳐놓은 걱정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두 분의 얼굴 표정에서 기쁨과 행복을 잠시 잊고 지낸듯한 우울함이 느껴지는 건 확실했다.

 

어머니는 연신 내 몸 이곳저곳을 만지고 살피셨다.

혹 어디 고장(?) 난 곳은 없는지 계속해서 살피시는 눈치셨다.

그러다 내 얼굴을 유심히 보시던 어머니께서 놀라 내 얼굴을 부여잡으셨다.


“볼이... 볼이... 으째 볼이 이렇게 부었다냐? 맞었냐? 누가 이 지경이 되도록 때린다냐!”

기어이 전 날, 포항 고참에게 맞은 것을 어머니께서 알아채시고 말았다.


“아닙니다! 군에 오니 살이 쪄서 그렇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어이없는 핑계를 대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렇게 해서라도 그 순간을 모면하고 싶었다.


그런 어머니 옆에서 나를 유심히 보던 아버지는 속이 상하셨는지, 중대 내 시설을 관람하는 무리들 속으로 걸어 들어가셨다.

말은 하시지 않으셨지만 많이 속상하셨으리라......


아버지께서 그렇게 사라지고 나자 어머니께서는 때린 녀석이 누구인지에 대해 꼬치꼬치 물으셨다.

아니라고, 정말 살이 쪄서 부은 거라 재차 말씀드렸지만 때린 걸 따지려는 게 아니라 그 고참에게 잘 부탁한다는 말이라도 전하고 싶다며 집요하게 자백을 강요하셨다.


사실 가족분들이 중대 시설을 관람하는 동안, 중대의 모든 고참들은 밖에 나와 있던 터라 그 포항 고참 녀석이 멀지 않은 곳에 있었지만 나는 말하지 않았다. 아니 말하기 싫었다.

그건 자존심 때문이 아니었다.

다만 그 녀석에게 당부의 말을 해봤자 바뀔 것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아마 ‘이래서 전라도 XX들은......’이란 말이나 더 들었을 것이다.

또 내가 그 고참을 지목한다면, 내가 군에서 맞고 지내는 것을 자백하는 꼴이므로 걱정할 부모님 때문에라도 말해선 안 되는 것이었다.


만나면 행복할 줄만 알았는데,

만나니 걱정만 늘 뿐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걱정에 걱정을 더해가는 복잡한 시간들이 얼마간 지났을까.

우리 소대 왕고참(최고 고참, 이하 왕고)이 우리 소대 이등병들의 부모님들에게 인사를 드리러 다니고 있었다.

다른 소대 왕고들도 그랬던걸 보면 아마 간부들의 지시가 있었던 듯했다.


차례차례 인사를 마치던 왕고가 우리 쪽으로 와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O이등병과 같은 내무반을 쓰고 있는 병장 OOO입니다.”


“아이고, 그러세요. 우리 아들한테 듣기로 최고 고참이라던디, 우리 아들 좀 잘 부탁 헙니다.”

왕고의 손을 덥석 양손으로 잡고 간절하게 말하는 어머니의 모습에 나도 놀랐고, 왕고도 적지 않게 놀란 눈치였다.

군에서 맞고 지낼 아들을 생각하자니 어머니는 동아줄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신 듯했다.

“어머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O이등병 잘하고 있습니다.”

왕고는 침착하게 어머니를 진정시켰다.


하지만 어머니는 연신 허리를 굽혀가며 왕고에게 잘 부탁한다는 말을 거듭하셨다.

자신보다 스무 살 이상이나 어린 사람에게 그렇게 처절하게 부탁하셨다.


사실 그때 왕고참이었던 O병장은 전남 모 섬 출신의 전역을 몇 달 앞둔 말년 병장이었다.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한다는 말년 병장.

그래서 소대 일에는 나 몰라라 하던 때였다.

허니 어머니의 그런 부탁이 통할지 의문이었다.

나는 어머니를 다독이며 달랬다.


그때 아버지께서 돌아오셨다.

아버지는 나에게 O병장이 누구냐고 물으셨고 나는 우리 소대 최고 고참이라고 말씀드렸다.

“우리 아들 잘 좀 부탁드립니다.”

아버지는 먼저 고개 숙여 악수를 청하셨다.

누구에게도 굽히지 않고, 어느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던 아버지가 아들뻘 되는 사람에게 그렇게 부탁하고 계셨다.

단지 자신의 아들이라는 존재를 위해 스스로를 굽히고 계셨다.


민망해진 왕고는 두 손으로 아버지의 손을 잡고 “아이고, 아버님 걱정 마십시오”라며 당황해했다.

나는 서로에게 불편한 그 시간을 벗어나기 위해 “아버지, 그렇지 않아도 저에게 신경 많이 써주고 계십니다. 걱정 마십시오”라고 둘러댔다.

그러자 왕고는 애써 둘러대는 내 눈치를 슬쩍 보는 듯했고, 그제서야 아버지와 어머니는 다시 한번 잘 부탁드린다는 당부의 말씀과 함께 왕고를 보내 줄 수 있었다.


모두들 낯빛이 어두웠다.

나도, 아버지도, 어머니도 모두 표정들이 심각해져 있었다.


이 분위기를 어떻게 수습하나 싶었을 때 소대장이 가족들과 이등병들을 향해 말했다.

"주목해 주십시오. 지금 대대 연병장에서 가족분들과 함께 하는 행사가 있을 예정이오니, 가족분들과 이등병들은 대대 연병장으로 이동해 주시길 바랍니다."


소대장의 직접 인솔 하에 가족들과 이등병들은 연병장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 무리에 다들 심각한 표정이 된 부모님과 나도 섞여 들어갔다.



                                                                - Part 4. 에서 계속 -


< • 군에서의 제 개인적인 경험을 쓴 글일 뿐, 군이나 군 문화 전체를 비방하는 글이 아닙니다.

   •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글이 아닙니다.

   • 지금 이 시간에도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국군 장병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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