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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근 Nov 10. 2016

< 이등병의 날 -Part 4->

- 아버지의 자존심 -

넓은 대대 연병장이 사람들로 꽉 차기 시작했다.

제식 교육이라곤 받아본 적 없는 사람들이 태반이었지만, 워낙 줄 세우고 각 잡는 데는 도가 튼 군인들이다 보니 그 수많은 사람들을 각 맞춰 세우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러다 간부들이 보기에 흡족할(?) 수준의 각이 잡혔을 때, 대대 간부 한 사람이 마이크를 잡았다.

“OO대대 이등병 및 이등병 가족 여러분 대대장님께서 나오십니다. 박수로 맞아 주십시오.”

  

대대 중앙 건물에서 대대장이 모습을 보였다.

작은 키에 넉넉한 살집, 볼록한 배......

군인보다는 동네 고깃집 주인이 더 어울릴 것 같은 사내가 대대 중앙 건물과 직선으로 연결된 사열대를 향해 느릿느릿 걸어 나왔다.

그리고 거드름을 피우며 연단에 섰다.


“전체 차렷!”

이등병들만을 대상으로 했는지 아니면 함께 있는 가족들에게도 해당이 됐는지 모르겠지만, 스피커를 통해 나온 대대 간부의 명령에 다들 긴장하는 듯했다.


“대대장님께 대하여 경례!”


“충! 성!”

이등병들이 큰 소리로 거수경례를 했다. 그리고 가족 분들 중 일부 현역 시절의 군기가 남아있는 몇몇 남성들도 우리들과 같이 경례를 했다.

그런 모습들을 사열대 위에서 내려다보던 대대장은 손을 올려 우리들의 경례에 답했고, 연병장에 있던 사람들을 스윽 한번 훑어보고 난 후 손을 바로 했다.


“바로!”

이등병들과 현역 군기가 살아있던 몇몇 남성들이 절도 있게 손을 내렸다.


“이어 대대장님의 말씀이 있겠습니다.”

“아! 아! 에...... 오늘 OO대대 이등병의 날을 맞아 먼 길을 찾아주신 가족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에...... 제가 이런 행사를 준비하게 된 이유는......”

국민학교 조회 시간, 교장 선생님 말씀보다 더 지겨운 말들이 이어졌다.


결국 이런 행사를 주최한 자신의 공치사를 침 튀기며 하는 지루한 말들이었지만, 이등병들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옆에 가족들도 있으니 잡담이라도 나눌만하건만, 모두 부동자세를 유지했다.

아마 군기가 바짝 든 때인지라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어리게만 보았던 자식에서 늠름한 군인으로 변해버린 아들들의 모습을 보며 옆에 있던 가족들도 덩달아 경직됐다.

마치 장내의 모든 사람들이 대대장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듯 보였다.


“...... 오늘 하루, 자녀 분들과 가족 분들 모두 행복한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이상!”

길고 긴 지루한 말들이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 대대 간부가 재빠르게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전체 차렷! 대대장님께 대하여 경례!”

“충! 성!”

“바로!”


행사 시작 때, 그랬던 것처럼 이등병들과 몇몇 민간인들의 경례를 대대장은 동시에 받았다.

그리고 대대장이 경례를 마치기가 무섭게 사병들 몇이 사열대로 위로 올라가 재빠르게 연단을 치웠고, 대신 그 자리에 큼지막한 의자를 내려놓았다.


붉은 비로드 천으로 안감을 대고 의자 머리와 손잡이에 황금 장식을 한, 마치 고대 로마시대의 황제나 앉을 법한 큰 의자가 사열대 중간에 놓였다.

그리고 그 의자에 대대장이 황제처럼 거만하게 앉았다.


대대장이 앉자, 대대 간부가 행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부대원들 나름대로 준비한 여러 가지 게임과 이벤트를 이어갔다.


원체 획일과 통일을 강조하는 분위기 속에서 사는 게 군인들이다 보니, 생각해낸 게임들이 이렇다 할 재미도 참신함도 없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부대원들의 어리숙함 속에서도 가족분들은 웃어주셨다.

그게 부대원들의 노력에 대한 보답으로써의 웃음이었는지, 아니면 그리웠던 아들들이 옆에 있어서 마냥 즐거웠기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모두가 웃고 즐기는 듯했다.

그리고 그런 웃고 즐기는 속에서 우리 가족들만이 웃고 즐기질 못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계속 우시며 부은 내 볼만 만지셨고, 아버지는 진행되는 행사를 보시는 듯했지만 그 뒷모습에서 분노와 슬픔이 함께 묻어나는 듯했다.


내가 잘못한 것은 없었지만, 죄송하기 그지없었다.

‘차라리 오시지 마시지......’

행사가 진행되는 내내 그 말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때였다.

대대 간부의 한껏 고조된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자, 여러분 이번 게임은 4박 5일 휴가증이 걸린 게임입니다!”


“휴가증?”

“4박 5일짜리?”

“어머! 어머! 휴가증이래 휴가증!”

휴가증이란 말에 장내가 일순 술렁였다.


그러자 이런 반응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대대 간부가 말을 이어갔다.

“이번 게임은 아버지와 아들, 아버지와 이등병이 함께 하는 미션 게임입니다! 참가를 원하는 아버지와 이등병은 지금 사열대 앞으로 모여주십시오!”


휴가증이란 큰 미끼에도 사람들은 나갈 듯 말 듯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느 가족은 아버지가 나가자고 하면 아들이 만류했고,

어느 가족은 아들이 나가자고 하면 아버지가 주춤하는 듯했다.

심지어 아버지가 함께 오지 못한 집의 한 어머니께서는 자신이 대신 나갈 거라고 우기자, 아들이 어머니를 붙잡고 말리는 웃지 못할 상황도 연출되고 있었다.


한 두 가정에서만 아버지와 아들이 나갔을 뿐, 이렇다 할 반응이 없자 대대 간부는 그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번엔 목소리가 더 커졌다.

“자! 휴가증을 받으시면 행사가 끝나는 대로 바로 고향 앞으로 가시면 되겠습니다. 시간 관계상 선착순 다섯 팀만 더 모시겠습니다!”


그때였다.

나보다 한 발짝 앞에서 행사를 지켜보시던 아버지가 뒤에 서있던 내 손을 덥석 잡으며 말하셨다.

“나가자!”

그리곤 나를 끌다시피 하며 달리기 시작하셨다.



        

                                                        - Part 5. 에서 계속 -


< • 군에서의 제 개인적인 경험을 쓴 글일 뿐, 군이나 군 문화 전체를 비방하는 글이 아닙니다.

   •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글이 아닙니다.

   • 지금 이 시간에도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국군 장병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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