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동근 Nov 10. 2016

< 이등병의 날 -Part 5->

- 아버지의 자존심 -

젊은 시절 건각(健脚)이셨던 아버지는 내 손을 놓칠세라 꼭 잡으시고는 달리기 시작하셨다.

아버지의 돌발행동에 당황한 나는 상황을 살필 여유도 없이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덩달아 뛰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사열대 앞에까지 이르게 됐다.

그렇게 아버지와 나는 대대장 앞에 섰다.


‘아버지, 갑자기 왜 그러세요?’

그제서야 정신이 들어 아버지께 조용히 물었다.

물론 대대장이 위에서 지켜보고 있었으므로 거의 복화술 수준으로 말해야만 했다.

‘휴가증이 걸렸다고 안 그러냐. 한번 해보자. 너도 한동안 나가서 바람이라도 쐬면 좋지 않것냐.’


그랬다.

아버지의 돌발행동은 날 부대 밖으로 내보내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아마 아버지는 이런 악의 구렁텅이(?)에서 나를 단 하루만이라도 빼내 주고 싶은 그런 생각을 하셨을 련지도 몰랐다.

아버지의 표정은 자뭇 비장해 보였다.


아버지의 빠른 스타트(?) 덕분에 우린 선착순 첫 번째로 안착했다.

그리고 우리 뒤로 네 팀이 더 줄을 섰다.

먼저 와있던 세 팀과 나와 아버지를 포함한 선착순 다섯 팀을 보태 총 여덟 팀이 사열대 앞에 모이게 되었다.


그러자 대대 간부가 입을 열었다.

“이번 게임은 미션 게임입니다. 지금부터 상자에 든 종이를 한 장씩 뽑으시고 그 종이에 적힌 미션을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완수하면 되겠습니다.”


사병 한 명이 쪽지가 든 상자를 들고 나와, 우리들이 한 장씩 뽑도록 차례대로 각 팀들의 앞을 돌았다.

“뽑으신 쪽지는 아직 열어보지 마시고, 그대로 가지고 계십시오”

차례가 돌아와 사병이 아버지와 내 앞에 섰다.

나는 상자에 손을 넣어 쪽지 한 장을 뽑아 손에 쥐었다.


모두가 미션이 적힌 종이를 한 장씩 뽑게 되자 대대 간부는 우리를 각각 두 팀씩 짝을 지었다.

그리고 짝이 된 팀이 상대팀이라고 일러주었다.

그러니 우승은 총 네 팀이 되고, 휴가증도 총 네 장이 주어진다는 말도 덧붙였다.


처음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정신없이 나왔지만, 막상 4박 5일의 휴가증이 주어진다니 욕심이 생겼다.

더군다나 100일 휴가 전의 이등병들이 행사 후 외박증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몰랐던 상황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그래, 아버지 말마따나 나가서 바람도 쐬고 친구들도 만나고...... 무엇보다 한동안 저 고참놈 갈굼을 안 당할 수 있으니......’


욕심이 생기자 긴장이 됐다.

휴가증을 받아서 부모님과 함께 집으로 가고 싶었고, 단 며칠이라도 이 부대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종이를 쥔 손이 축축이 젖어드는 것 같았다.


아버지와 나는 게임에 두 번째로 참가했다.

그래서 앞서 하는 팀들의 하는 모양새를 유심히 살폈다.

미션은 크게 어려운 것들은 없는 듯했다.

어찌 보면 유치한 그 미션들을 ‘휴가증’이라는 큰 목적 때문에 참가자들은 죽기 살기로 수행하려 했고, 관람하는 사람들도 내 자식, 내 가족 일인 양 도와주고 있었다.


첫 번째 팀의 경기가 끝났다.

약속대로 우승팀에게 ‘4박 5일 휴가증’이 수여됐다.


눈 앞에서 휴가증을 받는 이등병을 보니, 4박 5일의 휴가가 불가능해 보이지 않았다.

‘그래! 잘만하면 나도......’

마음은 이미 휴가증을 받은 듯 부대 밖을 나서고 있었다.


드디어 아버지와 내 차례가 되었다.

사회를 보던 대대 간부는 나와 상대편 이등병에게 마이크를 건네며 쪽지에 적힌 미션 내용을 크게 말하라고 했다.

상대편 이등병의 미션은 ‘행사에 참석한 가족 분들에게서 모자 20개 빌려 아버지 머리에 씌우기’였고, 나의 미션은 ‘머리핀 20개를 빌려 아버지의 머리에 꽂고 오기’였다.


미션을 확인하자마자 얼른 연병장 뒤쪽 가족분들이 관람하는 곳을 슬쩍 보았다.

아무래도 머리핀을 얻어야 하는 미션이기에 여자분들이 많은 쪽을 확인해 두기 위해서였다.


“자! 준비하시고...... 출발하세요!”


대대 간부의 출발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모두 각각 모자와 머리핀을 얻기 위해 뛰기 시작했다.

나는 미리 봐 둔 쪽으로 달렸고, 아버지는 일단 어머니 쪽으로 가시는 듯했다.


미리 봐 둔 덕에 여자분들이 많은 곳으로 달려는 갔지만 곧 난감해졌다.

생각보다 머리핀을 하고 온 분들이 적었던 것이다.

‘어쩐다......’

한 분 한 분 찾아다니며 머리핀을 빌리는 내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거기 계시던 여러 여자분들이 자신들의 머리핀을 직접 건네주셨지만 스무 개를 채우기엔 턱없이 모자랐다.


답답한 마음에 아버지 쪽을 보았다.

아버지도 어머니가 하고 계시던 실핀 몇 개를 얻는 것 말고는 별다른 소득이 없는 듯 난처해 보이긴 마찬가지였다.


나도 아버지도 별 소득 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상대편 이등병 팀의 모자 수거는 순조로운 듯 보였다.

여름의 끝자락, 가을을 막 맞이하던 철이었던 터라 아직은 강한 햇빛을 피하려 모자를 쓰고 온 분들이 꽤 되었던 것이다.


이대로 휴가증은 포기해야만 할 것 같았다.

이 사람, 저 사람이 건네는 모자를 차곡차곡 모으는 상대편 이등병과 아버님이 부러웠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꽤 많은 모자를 모아, 앉아서 하나 둘 모자 개수를 세고 있는 아들과 그것들을 하나씩 머리에 얹기 시작하는 그의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초조해졌다.


군중 속을 아무리 헤집고 다녀봐도 손 안에든 대여섯 개의 머리핀은 더 이상 늘지 않았다.

어머니도 아버지를 돕는 듯했지만 내 형편과 별반 다르지 않은 듯했다.

이대로 손을 들고 기권을 외치고 싶었다.

그만큼 상황은 난감했고, 불리했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한 아가씨가 나에게 다가오더니,

“저... 제 꺼라도 가져가 보실래요?”라며 자신의 머리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리고 그녀가 가리킨 그녀의 머리엔 엄지손톱만한 나비 모양의 머리핀들이 세 갈래로 땋은 머리를 따라 많이도 꽂혀있었다.

마치 대추나무에 대추 영글 듯 잔뜩 꽂혀있던 핀들은 족히 스무 개 이상은 되어 보였다.

정말이지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왔다는 표현은 그때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네. 감사합니다.”

인사를 건네고 아가씨의 머리에 있던 핀들을 풀기 시작했다. 그녀도 자신의 손이 닿는 부분의 핀들은 직접 풀어 나에게 건네주었다.

순식간에 스무 개 넘는 머리핀을 얻을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어서 가보세요. 휴가증 얻으셔야죠.”

정말 난감하고 절망하던 때에 날개에 큐빅이 박힌 나비 떼(?)를 몰고 온 그녀가 너무너무 고마웠다.

하지만 그녀의 말대로 휴가증을 얻으려면 바삐 움직여야 했다.

나는 그 아가씨에게 재차 고마움을 표하고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 다 됐어요!”

아버지가 오셔서 내 두 손 가득 모인 머리핀을 보셨다.

“수고했다. 얼른 머리에 꽂자.”

머리핀을 들고 있느라 손이 자유로울 수 없는 나를 대신해 아버지가 직접 자신의 머리 아무 데나 머리핀을 마구 꽂기 시작하셨다.

그리고 내 손에 든 머리핀이 다 없어지자, 날 끌고 달음박질쳤던 것처럼 또다시 내 손을 잡고 뛰기 시작하셨다.


“안 늦었다. 빨리 뛰자!”

우리는 상대팀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뛰었다.



                                                              - Part 6. 에서 계속 -


< • 군에서의 제 개인적인 경험을 쓴 글일 뿐, 군이나 군 문화 전체를 비방하는 글이 아닙니다.

   •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글이 아닙니다.

   • 지금 이 시간에도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국군 장병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 이등병의 날 -Part 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